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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책은 반납함에 넣어 주시겠어요? 제가 이따 정리할게요.”
구립도서관에서 일하는 스물아홉 살 남성 사서가 대출대 앞에서 한 말입니다. 이용자가 방금 기침을 막은 손으로 책을 내밀던 참이었습니다. 책 모서리가 손끝 가까이 다가오자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손바닥이 따끔거렸습니다. 그분은 두 손을 대출대 아래로 내린 채 웃는 얼굴로 반납함을 가리켰습니다.
이용자가 돌아가자 그분은 직원 화장실로 향했습니다. 손가락 사이와 손톱 밑까지 비누 거품을 내고 몇 번이고 헹궜습니다. 갈라진 손등에 물이 닿을 때마다 따가웠습니다. 비누 냄새가 코끝까지 올라오는데도 손바닥에는 여전히 무언가 끈끈하게 남은 듯했다고 합니다. 대출대로 돌아와서는 이용자가 짚었던 모서리를 물티슈로 거듭 닦았습니다.
동료들은 사서라서 역시 깔끔하다며 웃었습니다. 그분도 한동안은 남보다 조금 유난한 성격 탓이라고만 여겼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주말마다 헌책방 골목을 돌 만큼 책을 좋아했습니다. 좋아서 고른 일인데, 이제는 책 한 권을 건네받는 순간이 하루 중 가장 겁났습니다.
사람들은 결벽증을 흔히 깔끔한 성격쯤으로 넘깁니다. 하지만 더러움이나 세균이 무서워 씻고 닦기를 멈추기 어렵고, 그 일에 많은 시간을 빼앗겨 생활이 흔들린다면 강박장애의 한 형태인 오염강박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분명히 씻었는데도 손은 왜 여전히 더러운 것처럼 느껴질까요?
수도꼭지를 잠그는 순간
언제 수도꼭지를 잠그느냐고 묻자, 그분은 한참 자기 손을 내려다보다가 답했습니다.
“손을 보고 잠그는 게 아니에요. 가슴이 좀 가라앉아야 잠가요. 손은 처음 헹굴 때부터 깨끗해 보였어요.”
이 말에는 결벽증을 가늠해 볼 단서가 있습니다. 손이 깨끗해 보일 때 물을 잠근다면 평범한 청결 습관에 가깝습니다. 반면 눈으로는 깨끗한데도 가슴의 불편함이 가라앉을 때까지 계속 씻는다면, 씻기가 더러움을 없애는 일보다 불안을 달래는 일이 되었을 수 있습니다. 이것만으로 진단할 수는 없지만, 진료나 상담에서 자신의 상태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마실수록 목이 타는 바닷물
씻으면 잠깐 마음이 놓이고, 그 때문에 다음에도 다시 씻게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불편함이 줄어든 직전 행동을 점점 더 자주 하게 되는 이런 학습을 ‘부적 강화’라고 합니다.
목이 마를 때 바닷물을 마시는 일과 닮았습니다. 한 모금 넘길 때는 목이 축여지는 듯하지만 곧 갈증이 심해져 다시 물을 찾게 됩니다. 씻기도 비슷합니다. 안심이 이어지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고, 다시 씻게 되는 간격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불안할 때마다 씻기로 마음을 달래다 보면 ‘이만하면 깨끗하다’고 느끼는 감각도 약해질 수 있습니다.
그분도 이 흐름을 끊어 보려고 애썼습니다. 두 번까지만 씻자고 정한 날도 있었고, 소매로 손을 감싼 채 반납 도서를 정리한 날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꾹 참은 날이면 퇴근해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욕실로 가서 한참 나오지 못했습니다.
“책 한 권 만졌다고 탈 나는 게 아니라는 건 알죠. 근데 손이 닿는 순간 가슴이 먼저 내려앉아요. 생각은 한 박자 늦게 와요.”
강박 증상 때문에 하루하루가 버겁다면 정신건강의학과에서 먼저 평가받는 편이 좋습니다. 강박장애에는 약물치료와 함께 인지행동치료의 한 방법인 노출 및 반응방지가 널리 쓰입니다. 두려움을 일으키는 상황을 단계적으로 접하되 씻거나 확인하는 행동을 바로 하지 않고, 시간이 지나며 불안이 낮아지는 과정을 경험하도록 돕는 치료입니다.
“생각은 한 박자 늦게 와요.” 그분의 말처럼 손이 닿자마자 가슴이 내려앉는 반응은, 깨끗한지 판단하기도 전에 먼저 일어났습니다. ‘괜찮다’는 생각은 가슴이 철렁한 뒤에야 떠올랐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그 순간의 몸 느낌에 주의를 기울이며, 비슷한 놀람과 반응이 함께 나타났던 옛 경험을 살펴봤습니다.
모래 위로 굴러간 과자
상담실 의자에 앉아서도 그분은 두 손이 팔걸이에 닿지 않도록 살짝 들고 있었습니다. 최면이 깊어지는 동안, 책을 건네받을 때 손바닥에 번지던 따끔거림에 다시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잠시 뒤 그분이 고개를 기울이며 말했습니다.
“놀이터예요. 모래 냄새가 나요. 제가 과자를 떨어뜨렸어요.”
엄마가 과자 봉지를 뜯어 주어야 먹을 수 있던 남자아이가 모래밭 가장자리에 서 있습니다. 봉지에서 동그란 과자를 꺼내다 하나를 놓칩니다. 과자는 모래 위로 굴러가 멈춥니다. 아이가 쪼그려 앉아 손을 뻗는 순간, 엄마가 손목을 확 붙잡습니다.
“안 돼! 땅에 떨어진 거 만지면 병균 옮아서 배 아파.”
아이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엄마는 아이를 일으켜 세우고 그네 쇠줄과 미끄럼틀 난간도 만지지 말라고 합니다. 아이의 손끝은 모래에 닿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는 손가락을 쫙 편 채 두 손을 몸에서 떼어 들고, 아무것도 묻지 않은 손바닥을 계속 들여다봅니다. 집으로 걸어가는 내내 손이 옷에 닿을까 봐 팔을 벌린 채 걷습니다.
그분은 최면 속에서 팔을 벌리고 선 아이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들린 두 손이 눈앞에 보이도록 쪼그려 앉았습니다.
그분은 갑자기 손목을 잡혀 놀랐을 아이의 마음을 알아주었습니다. 손은 모래에 닿지 않았고, 흙이 조금 묻더라도 집에 가서 한 번 씻으면 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가슴이 철렁한 것은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에 놀랐기 때문이지 손이 이미 더러워졌다는 증거가 아니며, 놀란 느낌이 가라앉을 때까지 손을 몸에서 떼어 들고 있을 필요도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 말을 전한 뒤, 그분은 다시 아이가 되어 같은 오후를 처음부터 경험했습니다. 과자는 그대로 모래 위로 굴러갔고, 엄마는 똑같이 손목을 붙잡으며 만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이번에도 손바닥을 들여다보며 팔을 벌린 채 집으로 걸었습니다. 다만 철렁했던 가슴은 금세 진정됐고, 쫙 펴져 있던 손가락에도 힘이 빠졌습니다. 이번에는 손바닥에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는 사실도 눈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그 장면을 다시 경험한 뒤 그분은 눈을 뜨며 “과자 하나 떨어뜨린 일이 왜 나와요?” 하고 웃었습니다.
최면 중 떠오른 장면에서 아이는 눈에 보이는 흙보다, 갑자기 붙잡힌 손목과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에 먼저 놀랐습니다. 가슴이 철렁하자 닿지도 않은 손을 몸에서 떼어 들었습니다. 지금도 손이 깨끗해 보여도 가슴이 먼저 내려앉으면 더럽다고 느꼈고, 몇 번을 씻어도 끈끈함이 남았습니다. 상담에서는 이 대표 장면뿐 아니라, 놀란 몸의 느낌을 오염 신호로 받아들여 씻고 피했던 관련 경험들도 최면 중 이어서 다뤘습니다. 눈으로 확인한 청결과 몸의 놀람을 구분하면서, 철렁한 느낌이 남아도 필요한 만큼 씻고 다음 일을 계속하는 반응을 함께 살폈습니다.
맨손으로 받아 든 반납 도서
상담 뒤 어느 오후, 한 이용자가 기침한 손으로 책을 내밀었습니다. 가슴이 잠깐 철렁했지만, 그분은 두 손으로 책을 받아 바코드를 찍었습니다. 손바닥이 잠시 따끔했어도 대출대를 떠나지 않고 다음 이용자의 책을 받았다고 합니다. 점심 전에 손을 씻을 때는 한 번 헹군 뒤, 손이 깨끗해 보이자 바로 수도꼭지를 잠갔습니다.
주말에는 몇 년 만에 헌책방 골목에 갔습니다. 누렇게 바랜 문고본 한 권을 서가에서 꺼내 맨손으로 책장을 넘겼고, 오래된 종이 냄새도 맡았습니다. 그 책을 사서 돌아오는 버스에서 끝까지 읽었다고 합니다. 갈라졌던 손등도 조금씩 아물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책장을 넘긴 손에는 오래된 먼지가 묻었을 것입니다. 그래도 가슴은 곧 잠잠해졌고, 손은 세면대가 아니라 다음 장으로 향했습니다.
씻은 손에도 끈끈함이 남는 날이 이어진다면, 비누를 바꾸거나 횟수만 줄이려는 노력으로는 충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씻고 나서 찾아오는 짧은 안도 때문에 같은 행동이 반복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례처럼 무언가가 손끝에 스치는 순간 가슴부터 내려앉는다면, 손의 청결 여부와 함께 그보다 먼저 일어나는 불안과 회피 반응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