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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두 시의 응급실이었습니다. 왼쪽 가슴이 칼로 찌르는 듯 아파 와서, 119를 부를까 망설이다 택시를 잡아탔다고 합니다. 심전도를 붙이고 피검사까지 마친 뒤 돌아온 말은 이번에도 같았습니다. 심장에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쉰을 갓 넘긴 자영업자분이셨습니다. 새벽 응급실행이 그날로 세 번째라고 했습니다. "검사가 정상이라는데 왜 이렇게 아픈 걸까요. 혹시 검사에 안 잡히는 협심증도 있다던데, 그건 아닐까요. 자다가 갑자기 심장이 멈추면 어쩌나, 그 생각만 하면 식은땀부터 나요."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왼쪽 가슴, 그러니까 심장 쪽의 통증은 심장 질환과 연관이 많아서, 병원 검사부터 받으신 것은 정확한 순서였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검사가 거듭 깨끗한데도 통증이 계속되면, 사람들은 안심하는 대신 기계가 못 잡는 병이 있을 거라는 더 깊은 불안으로 들어갑니다.
검사에 안 잡히는 진짜 통증
검사가 깨끗한데도 아픈 데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불안과 긴장이 만드는 가슴 통증은 주로 왼쪽 가슴 아래쪽에서 칼로 찌르듯, 쿡쿡 쑤시듯 왔다가 수초에서 일 분 남짓이면 가라앉는 모습을 보입니다. 숨이 가빠지고 손끝이 저릿해지기도 합니다. 심장이라는 기관이 아니라 잔뜩 긴장한 근육과 신경이 만드는 통증이라, 심전도에는 잡히지 않으면서도 아픔 자체는 실제입니다.
그런데 같은 통증이라도 사람마다 무게가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결렸나 보다' 하고 지나가는 통증이, 어떤 사람에게는 그대로 죽음의 예고가 됩니다. 차이는 통증이 아니라 그것을 읽는 쪽, 그러니까 뇌에서 위험을 판정하는 '편도체'가 쥐고 있는 돋보기에 있습니다. 공포의 돋보기 아래에서는 바늘 끝도 칼날처럼 보입니다.
'정상'을 알아도 가시지 않는 공포
통증이 죽음의 신호로 읽히는 순간 몸은 더 굳고, 숨은 더 가빠지고, 아픔은 더 또렷해집니다. 그분도 이 악순환을 알고 있었습니다. '정상'이라고 적힌 검사지를 지갑에 넣고 다니며 통증이 올 때마다 꺼내 읽었지만, 글자가 공포를 이기지는 못했다고 합니다. 돋보기를 쥔 손이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이기 때문입니다. 머리로 아는 '정상'이, 가슴의 공포에게는 끝내 전해지지 않는 것입니다.
불안을 가라앉히는 약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느슨하게 해 주기도 합니다. 공포가 줄어드는 만큼 통증도 덜 커지니, 분명한 도움입니다. 다만 편도체가 애초에 왜 죽음의 돋보기를 쥐게 되었는지, 그 뿌리까지 바꿔 주지는 못합니다.
죽음을 처음 알게 된 어느 날로
그래서 최면상담에서는 질문을 바꿉니다. 심장에 무슨 문제가 있느냐가 아니라, 이 마음은 언제부터 죽음을 이토록 가까이 느껴 왔느냐를 묻습니다. 의식이 기억하지 못하는 무의식 속에서 그 출발점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분이 깊은 최면 속에서 닿은 자리도, 심장과는 아무 관련이 없었습니다.
네 살이 채 되지 않았을 무렵, 늘 등에 업어 주던 할머니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습니다. 집 안에는 흰 옷을 입은 어른들이 가득했고, 사방에서 울음소리가 났습니다. 어른들은 어린아이에게 무슨 일인지 일러 주지 않았고, 아이는 영문도 모른 채 그 울음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사람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 아이는 그렇게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통증보다 공포가 먼저 자라 있는 경우를, 공황장애나 불안을 겪는 분들에게서 자주 만나게 됩니다. 묻지도 이해하지도 못한 무서움은 그대로 가슴에 남았습니다. 그 뒤로 이 마음에게 죽음은 예고 없이 닥치는 것이 되었고, 편도체는 몸의 작은 신호 하나까지 그 예고로 읽기 시작한 것입니다. 정작 본인은 까맣게 잊은 시절의 일이니, 수십 년이 지나 가슴이 찌릿할 때마다 영문 모를 공포에 휩싸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할머니는 너를 두고 떠난 게 아니라고
깊은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이 울음소리 가득하던 그 집의 아이에게 다가갔습니다. 할머니는 너를 두고 떠나 버린 게 아니라는 것, 그리고 죽음은 그렇게 아무 때나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천천히 일러 주었습니다. 아이가 수십 년 동안 혼자 안고 있던 무서움을 내려놓는 동안, 상담실의 그분은 길고 깊은 숨을 몇 번이나 내쉬었습니다.
몇 주 뒤에 들려주신 근황은 이랬습니다. 한번은 일하다 가슴이 살짝 찌릿했는데, 어제 무거운 걸 들어서 그런가 보다 하고는 하던 일을 마저 했다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맥부터 짚었을 일입니다. 요즘은 잘 때 왼쪽으로 돌아누워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고, 통증 자체도 어느 틈엔가 뜸해졌다고 하셨습니다.
왼쪽 가슴이 아플 때 심장부터 확인하는 것은 언제나 옳은 순서입니다. 다만 검사가 거듭 깨끗한데도 통증과 공포가 함께 반복된다면, 이제는 심장이 아니라 그 공포의 나이를 살펴볼 차례입니다. 죽음이 너무 일찍, 너무 크게 새겨졌던 까닭을 찾아 풀어 가면, 오래 반복된 통증도 보통 한 달 안팎이면 한결 뜸해지시곤 합니다.
수십 번의 검사가 알려 줄 수 있는 것은 '심장은 건강하다'까지입니다. 남은 질문은 하나입니다. 그 통증에 그토록 큰 공포가 따라붙게 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요. 그 답은 검사지가 아니라 마음 안쪽에 적혀 있고, 그곳은 혼자가 아니라 함께 들어가 볼 수 있는 자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