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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실 불을 끄려면 스위치를 껐다 켜기를 여덟 번 해야 해요. 여섯까지 셌는데 아이가 ‘엄마’ 하고 부르면 처음부터 다시 세요. 여덟 번을 못 채우고 방에 들어가면 가슴이 벌렁거리고 목덜미가 뻣뻣해져서 새벽까지 잠이 안 와요.”
상담 전날 밤에도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밤 열한 시가 넘은 거실에서 그분은 스위치 앞에 서서 입술만 달싹이며 수를 세었습니다. 여섯 번째로 불을 껐다 켰을 때, 방에서 일곱 살 아들이 물을 달라고 불렀습니다. 그분은 “잠깐만” 하고 날카롭게 소리쳤고, 아들 방문은 조용히 닫혔습니다. 하나부터 다시 여덟까지 센 뒤 물컵을 들고 들어가 보니 아이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보험회사 인사팀에서 일하는 서른여덟 살 여성입니다. 여덟 번을 채우지 않으면 밤사이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 것만 같았습니다. 스위치를 누르는 횟수와 아들의 안전이 아무 관계가 없다는 것을 본인도 잘 알았습니다. 그래도 세지 않고 돌아서면 목덜미부터 굳었습니다. 남편이 스위치가 고장 났느냐고 물었을 때는 뻑뻑해서 그렇다고 둘러댔습니다.
숫자를 세는 일은 집 밖에서도 이어졌습니다. 사무실이 있는 5층까지 계단을 오를 때면 여덟 칸씩 끊어 세었습니다. 동료가 인사를 건네 수가 흐트러지면 층계참까지 내려가 처음부터 다시 올라갔습니다. 누가 볼까 봐 요즘은 다른 직원들보다 이십 분 일찍 출근한다고 했습니다.
정해진 숫자나 횟수를 채워야 불안이 가라앉는 모습을 흔히 숫자강박이라고 부릅니다. 강박증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강박행동의 하나로, 같은 행동을 정해진 절차처럼 되풀이하게 됩니다. 여덟 번을 채워야만 마음이 놓이는 이분의 반응은 어디서 시작되었을까요? 상담 중 그분의 입에서 새어 나온 것은 숫자가 아니라 나지막한 노랫가락이었습니다.
여덟 번을 채운 밤에는 아무 일도 없었으니까
“여덟 번 채운 날은 정말 아무 일도 없었거든요. 그러니까 멈출 수가 없어요.” 그분은 스스로도 우습다는 듯 웃었지만, 무릎 위의 손가락은 무언가를 세듯 까딱이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행동 뒤에 불안이 줄어들어 같은 행동이 더 굳어지는 과정을 ‘부적 강화’라고 합니다. 여덟 번을 다 채우고 나면 벌렁거리던 가슴이 몇 초 동안 가라앉았습니다. 그 짧은 안도를 얻기 위해 다음 날 밤에도 스위치 앞에 서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가 더 붙습니다. 여덟 번을 채운 밤에 아무 일이 없으면, 그분은 여덟 번을 채운 덕분에 무사했다고 느낍니다. 한 번도 세지 않고 지나 본 적이 없으니, 세지 않아도 괜찮았을지 확인해 볼 기회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안도는 수를 끝까지 채웠을 때만 찾아오기 때문에, 중간에 끊긴 셈은 아예 세지 않은 것처럼 느껴져 하나부터 다시 세게 됩니다.
경기 날마다 같은 티셔츠를 챙겨 입는 팬을 떠올려 볼 수 있습니다. 그 옷이 점수를 내 주지 않는다는 것은 알지만, 입은 날 이기면 티셔츠 덕분인 것 같고 입지 않은 날 지면 역시 챙겼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분이 스위치를 여덟 번 눌러야 안심하는 마음도 이와 닮아 있었습니다.
세다가 끊기면, 이어서 세나요 처음부터 세나요
세다가 누가 말을 걸거나 전화가 울려 끊겼을 때, 이어서 셀 수 있나요? 아니면 그때까지 센 것이 없던 일처럼 느껴져 하나부터 다시 세야 하나요? 끊겨도 이어서 세거나 멈출 수 있다면 단순한 버릇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반면 처음부터 다시 세지 않으면 불안이 가라앉지 않는다면, 숫자 세기가 불안을 달래는 강박행동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분은 한 번도 멈춘 숫자 다음부터 이어서 세지 못했습니다. 여섯에서 끊기든 일곱에서 끊기든 늘 하나로 돌아갔습니다. 아들의 부름에 셈이 끊기는 일이 잦아지자, 거실에서 아이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불을 끄는 날이 많아졌습니다. 그사이 잠자리에서 동화책을 읽어 주는 일은 어느새 남편 몫이 되었습니다.
일곱에서 일부러 손을 떼 본 밤도 있었습니다. 세고 싶은 마음을 따르지 않고 버텨 보는 연습은 다니던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권한 것이었고, 처방받은 약 덕분에 가슴이 벌렁거리는 정도도 전보다 덜했습니다. 강박행동을 바로 하지 않고 불안을 견뎌 보는 이런 연습은 강박증 치료에 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날은 침대에 누워서도 목덜미가 풀리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넘게 뒤척이던 그분은 결국 거실로 나가 하나부터 다시 셌다고 합니다.
“머리로는 괜찮다는 걸 아는데, 몸이 먼저 굳어요.” 약을 먹고 불안을 견디는 연습을 하면서 가슴 두근거림은 전보다 줄었습니다. 그래도 셈이 끊기는 순간 목덜미부터 굳는 반응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최면상담에서는 괜찮다는 설명을 되풀이하기보다, 그 순간의 몸감각과 함께 떠오르는 경험을 살펴보고 당시의 감정과 반응을 다룹니다.
천둥 치는 밤, 처음부터 다시 불러 달라던 아이
최면이 충분히 깊어지자, 그분은 스위치 앞에서 여섯 번째로 불을 켠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아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대목에서 목덜미가 굳고 무릎 위 손가락이 까딱였습니다. 잠시 뒤 소리 없이 수를 세던 입술에서 낮은 흥얼거림이 새어 나왔습니다.
“노래가 끊겼어요. 처음부터 다시 불러 달라고 하고 있어요.”
우르릉, 쾅. 창밖이 번쩍 하얘지고 천둥소리에 방바닥까지 떨립니다. 장맛비가 쏟아지는 밤, 여자아이가 엄마 옆에 누워 있습니다. 노래 가사는 아직 몰라 끝소리만 따라 웅얼거리는 아이입니다. 아이는 엄마 잠옷 소매를 움켜쥐고,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발가락을 잔뜩 오므립니다.
엄마는 아이 가슴을 토닥이며 늘 부르던 짧은 자장가를 부릅니다. ‘자장자장’으로 시작해 아이 이름을 부르며 끝나는 노래입니다. 그런데 노래가 중간쯤에 이르렀을 때 천둥이 다시 크게 울리자, 엄마도 움찔하며 노래를 멈춥니다. 노래는 끊겼지만 가슴을 토닥이던 손은 그대로입니다.
아이는 소매를 잡아당기며 “다시, 다시” 하고 조릅니다. 엄마가 첫 소절부터 다시 부르고 마지막에 아이 이름을 불러 주고 나서야, 소매를 움켜쥔 손이 풀리고 숨이 길게 나옵니다. 그 밤 천둥은 몇 번 더 울렸고, 노래가 끊길 때마다 아이는 처음부터 다시 불러 달라고 했습니다.
“스위치랑 자장가가 무슨 상관이에요?” 최면 상태에서 그분이 물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왜 하필 여덟 번인지가 아니라, 중간에 끊기면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마쳐야 안심하는 반응이었습니다. 곧바로 설명을 덧붙이지 않고, 먼저 그 방에 있는 어린 자신에게 다가가 보도록 안내했습니다.
그분은 이불 발치에 앉아 잔뜩 오므린 아이의 발을 손바닥으로 감쌌습니다. 천둥이 잠잠해진 틈마다 짧게 말을 건넸습니다.
“천둥은 창밖에서 나는 큰 소리야. 엄마도 깜짝 놀라 노래를 잠깐 멈춘 거야. 그래도 엄마는 계속 네 곁에 있고, 손으로 네 가슴을 토닥이고 있어. 네 이름까지 다 못 들어도 너는 엄마 옆에 있어. 노래가 중간에 끊겼다고 지금까지 들은 것이 없어지는 것도 아니야. 처음부터 다시 하지 않고 멈춘 자리에서 이어 가도 괜찮아.”
필요한 말을 전한 뒤, 천둥 치던 밤을 처음부터 다시 경험했습니다. 번개가 창을 하얗게 밝히고 천둥에 엄마의 노래가 끊겼습니다. 아이는 그때처럼 소매를 당기며 “다시, 다시” 하고 졸랐고, 엄마도 첫 소절부터 다시 불렀습니다. 달라진 점은 노래가 멈춘 동안에도 가슴을 토닥이는 엄마 손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름을 듣기 전부터 소매를 쥔 손에 힘이 빠지고, 오므렸던 발가락도 하나씩 펴졌습니다.
그날 아이의 몸은 노래가 끝나 제 이름을 들은 뒤에야 풀렸습니다. 천둥이 언제 다시 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늘 듣던 노래를 끝까지 들어야 안심했고, 노래가 끊기면 처음부터 다시 들어야 했습니다. 상담에서는 이 대표 장면뿐 아니라, 순서가 끊기면 처음부터 되풀이해야 마음이 놓였던 관련 경험들도 최면 중 이어서 다뤘습니다. 중간에 멈춰도 지금까지 한 일이 사라지지 않고 다음 행동으로 갈 수 있다는 이해를 되짚었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는 밤사이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불안해질 때, 노래 대신 스위치를 여덟 번 누르며 끝까지 마쳐야 안심하는 반응이 되풀이되고 있었습니다.
여섯에서 손을 내리고 아들 방으로
현장학습을 하루 앞둔 밤이었습니다. 거실 스위치 앞에서 여섯을 세고 있을 때 아들이 또 “엄마” 하고 불렀습니다. 목덜미가 잠깐 뻣뻣해졌지만, 그분은 스위치에서 손을 내리고 “왜, 무슨 일이야?” 하며 아들 방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아들은 다음 날 어떤 모자를 쓰고 갈지 물었고, 그분은 곁에 누워 노란 모자와 파란 모자 이야기를 한참 들어 주었습니다.
아이가 잠든 뒤 거실로 나온 그분은 스위치를 한 번 내리고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여덟이라는 숫자가 머리를 스쳤지만, 돌아가 하나부터 다시 세지는 않았습니다. 그날 밤은 목덜미가 굳지 않아 그대로 잠들었다고 합니다.
그 주부터는 남편에게 넘겼던 잠자리 동화책 읽기를 다시 맡았다고 합니다. 책을 읽는 동안 아들이 끼어들어 질문하면 대답한 뒤, 멈췄던 줄부터 이어서 읽었습니다. 회사 계단에서도 동료가 말을 걸면 층계참으로 내려가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며 5층까지 올라갔다고 합니다.
천둥 치던 밤 처음부터 다시 불러 달라고 조르던 아이가, 이제는 아들의 질문에 답한 뒤 멈춘 줄부터 동화책을 이어 읽어 줍니다. 지금도 불을 끄거나 계단을 오를 때 정해진 수를 채워야 발이 떨어지는 분이 계실 겁니다. 셈이 끊길 때마다 하나로 돌아가야 마음이 놓인다면, 숫자를 정확히 세는 일보다 그 순간 몸에서 먼저 시작되는 불안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