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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제가 널어 놓은 빨래를 다 걷어서 다시 널어요. 수건은 탁탁 털어 끝을 맞춰야 빨리 마른대요. 그걸 보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관자놀이가 욱신거려요. 빨래집게를 쥔 손까지 떨리고요. 수건 한 장에 이러는 제가 이상한 줄 알면서도, ‘그럼 당신이 다 하든가!’라는 말이 먼저 나와요.”
문화센터에서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는 서른아홉 살 여성분의 이야기입니다. 회계사무소에 다니는 남편과 결혼한 지 아홉 해가 됐습니다. 그날 빨래로 시작한 말다툼은 밤이 되자 명절에 시댁에서 서운했던 일로, 결국 결혼 준비 때의 이야기로 번졌다고 합니다. 이튿날 두 사람은 말 한마디 없이 각자 출근했습니다.
부부갈등의 원인을 물으면 많은 분이 “성격이 안 맞아서”라고 답합니다. 하지만 이 부부는 연애할 때부터 달랐습니다. 그분은 약속 시간은 물론 영수증 한 장까지 챙기는 남편의 꼼꼼함에 끌렸다고 합니다. 그때 좋았던 차이가 왜 이제는 수건 한 장으로도 큰 싸움이 될까요?
실마리는 빨래 건조대가 아니라 외할머니 집 식탁에 있었습니다. 작은 차이가 어떻게 큰 싸움으로 번졌는지 그분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다른 방식보다 견디기 어려웠던 순간
첫 상담에서 그분은 남편과 다른 점을 줄줄이 꼽았습니다. 남편은 치약을 끝에서부터 밀어 짜고, 신발장에는 신발 코끝을 맞춰 넣고, 여행 전에는 시간표를 짭니다. 그분은 치약을 손에 잡히는 대로 누르고, 신발은 벗은 대로 두며, 여행은 가서 정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남편이 출장 간 주에는 욕실 수납장의 수건이 남편 식으로 각을 맞춰 개어져 있어도 아무렇지 않았다고 합니다. 얼굴이 달아오르는 때는 남편이 눈앞에서 그분이 한 일을 다시 할 때였습니다. 수건을 어떻게 개느냐보다 자신의 방식이 바로 고쳐지는 순간이 견디기 어려웠던 것입니다.
배우자와 성격이 안 맞는다고 느낄 때는 두 가지를 나눠 볼 수 있습니다. 다른 방식 자체가 불편한지, 내가 한 일이 눈앞에서 고쳐질 때 유독 화가 치미는지 말입니다. 후자라면 다툼을 키우는 것은 방식의 차이만이 아닐 수 있습니다.
두 사람은 인터넷 성격 검사 결과를 나란히 비교했고, 서로 다름을 인정하자며 부부 대화법도 배웠습니다. 상대의 성향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됐습니다. 그러나 남편 손이 빨래 건조대로 향하면 그 이해보다 먼저 얼굴이 달아올랐습니다.
수건 너는 요령이 ‘틀렸다’로 들릴 때
그분에게 남편의 행동은 단순한 빨래 요령으로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 비슷한 일을 겪으며 익힌 해석이 눈앞의 일에 먼저 떠오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어떤 일을 익숙한 뜻으로 받아들이는 틀을 심리도식이라고 합니다. 배우자의 행동을 무시나 통제로 느끼는 순간, 작은 일에도 쌓인 감정이 따라 나올 수 있습니다.
외국 영상의 자동 번역 자막이 평범한 말을 엉뚱하게 옮길 때가 있습니다. 남편은 “끝을 맞춰야 빨리 말라”고 했지만, 그분에게는 “당신이 하는 건 다 틀렸어”로 들렸습니다. 수건을 너는 요령보다 그 말에 화가 난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은 내가 하는 건 뭐든 마음에 안 들지!” 하고 쏘아붙였습니다. 도와주려던 남편은 억울해 “수건 하나로 왜 이렇게까지 해?” 하고 맞받았습니다. 그분에게는 화내는 마음마저 틀렸다는 말로 들려 목소리가 더 커졌습니다. 빨래에서 시작된 싸움은 명절과 결혼 준비 때의 서운함으로 번졌습니다.
“남편이 저 골탕 먹이려고 그러는 게 아닌 건 알아요. 빨래가 잘 마르라고 그러는 거죠. 근데 남편 손이 건조대에 닿으면 얼굴부터 뜨거워져요.”
수건쯤 넘기자고 여러 번 다짐했습니다. 하지만 남편이 빨래를 다시 널기 시작하면 얼굴이 먼저 달아올랐습니다. 그때 올라오는 반응을 다짐만으로 늦추기는 어려웠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이렇게 먼저 올라오는 감정과 몸의 반응을 살펴봅니다. 최면 상태에서 그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관련된 오래전 경험과 당시의 감정이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 경험에 얽힌 감정을 다루면서 지금의 일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반쯤 비벼진 밥그릇
최면이 깊어진 뒤 그분은 남편이 건조대에서 수건을 걷던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얼굴이 다시 화끈거리자 그 열기에 주의를 두었습니다. 잠시 후 고개를 갸웃하더니 말했습니다. “밥그릇이 보여요. 제가 뭘 막 섞어 놨어요.”
숟가락을 제 손으로 쥐기 시작한 무렵의 여자아이가 외할머니 집 식탁 앞에 앉아 있습니다. 밥그릇에 계란찜을 떠 넣고 시금치나물도 손가락으로 집어 얹은 다음, 숟가락으로 휘휘 섞습니다. 밥이 반쯤 노랗게 물들었을 때 외할머니가 아이 손에서 숟가락을 빼 갑니다. “그렇게 먹는 사람이 어딨니.”
외할머니는 아직 섞이지 않은 흰밥을 떠서 나물 한 가닥을 얹고 아이 입에 넣어 줍니다. 아이는 빈손을 쥐었다 폈다 하다가 볼이 빨개진 채 입을 벌립니다. 밥을 씹으면서도 제 숟가락을 쥔 할머니 손을 흘끔거립니다. 아이가 섞어 먹으려 할 때마다 숟가락은 할머니 손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분은 최면 속에서 식탁 맞은편에 앉아 아이와 눈높이를 맞췄습니다. 반쯤 노랗게 비벼진 밥그릇을 함께 들여다보며 말했습니다.
“계란이랑 나물을 같이 먹고 싶었구나. 그렇게 먹어도 맛있어. 할머니는 할머니가 오래 먹어 온 방법만 알아서 숟가락을 가져간 거야. 네가 고른 것도 밥을 먹는 한 가지 방법이야.”
그 말을 전한 뒤 그분은 아이가 되어 그날의 식탁에 다시 앉았습니다. 외할머니는 이번에도 “그렇게 먹는 사람이 어딨니” 하며 숟가락을 가져갔고, 아이는 할머니가 떠 주는 밥을 받아먹었습니다. 섞어 먹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지만 볼은 달아오르지 않았습니다. 숟가락 쪽을 흘끔거리지 않고, 밥을 씹으며 할머니 얼굴을 올려다보았다고 합니다.
빨래 이야기를 할 때마다 높아지던 그분의 목소리는, 식탁 장면을 다시 지나온 뒤 낮고 느려져 있었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고른 방식이 바로 고쳐질 때 볼이 달아올랐습니다. 어른이 된 그분도 남편이 수건을 다시 널면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남편의 빨래 요령이 ‘네 방식은 틀렸다’는 말처럼 들린 것도 이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방식이 바로 고쳐질 때마다 무시당한 듯 화가 났던 다른 경험들도 최면 중 이어서 살피고, 서로 다른 방법이 곧 누가 틀렸다는 뜻은 아니라는 이해로 소화해 나갔습니다.
건조대에 두 가지 모양으로 널린 수건
상담 후 어느 일요일, 남편이 또 그분이 넌 수건을 걷어 끝을 맞춰 다시 널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빨래 바구니를 든 채 바라봤지만 얼굴이 달아오르거나 관자놀이가 욱신거리지는 않았습니다. “당신은 끝 맞춰 너는 게 좋구나. 나는 빨리 너는 게 좋아서 그래.”
남편은 수건을 든 채 잠깐 멈칫하더니 “하긴, 마르는 건 똑같지” 하고 나머지 수건은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날은 명절 이야기도, 결혼 준비 이야기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여름휴가를 앞두고는 남편이 짠 시간표를 함께 들여다봤습니다. 예전 같으면 “여행을 무슨 숙제처럼 가”라며 시작부터 날을 세웠을 일입니다. 이번에는 오전은 남편의 시간표대로 다니고, 하루 오후만 계획 없이 비워 두자고 부탁했습니다. 바닷가 골목을 발길 닿는 대로 걷던 그 오후, 남편은 시간표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고 합니다.
그분 집 베란다 건조대에는 요즘도 모서리를 맞춘 수건과 대충 걸친 수건이 나란히 있다고 합니다. 방식은 여전히 다르지만, 그 앞에서 목소리가 높아지는 날은 드물어졌습니다.
배우자와 성격이 안 맞아 지치셨다면 지난번 싸움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떠올려 보셔도 좋습니다. 수건이나 치약 같은 작은 차이가 오래된 서운함까지 불러온다면, 상대의 말을 ‘내가 틀렸다’로 받아들이는 반응이 끼어 있을 수 있습니다. 서로 맞춰 보려 해도 같은 싸움이 반복된다면, 그 순간 마음과 몸에서 무엇이 먼저 일어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