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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 방 불이 꺼지고 아내가 안방 문을 닫으면서 ‘우리 얘기 좀 해’ 하면, 그 순간부터 귀가 먹먹해져요. 아내 목소리가 물속에서 듣는 것처럼 멀어지고 입안이 바짝 말라요. ‘왜 대답이 없어? 내 말 듣고 있어?’ 소리가 세 번째쯤 나오면 머릿속이 하얘져요. 할 말이 없는 게 아닌데, 결국 입에서 나오는 건 ‘알았어, 그만하자’ 한마디예요.”
마흔여섯 살인 이 남성분은 자동차 정비소에서 손님을 맞고 수리 내용을 설명합니다. 하루에도 수십 명에게 고장 난 곳과 수리비를 막힘없이 설명하지만, 집에서는 아내의 질문 몇 개에 말문이 막혔습니다. 결혼한 지 열여섯 해가 되었고 중학생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지난봄 정비소 사장님이 가게를 정리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그분에게 가게를 넘겨받을 생각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그분은 그 이야기를 아내에게 꺼내지 못한 채 한동안 밤잠을 설쳤습니다. 아내는 시장에서 사장님 부인을 만나 그 소식을 먼저 들었습니다.
그날 밤 아내는 안방 문을 닫고 물었습니다. “왜 나한테 말 안 했어? 언제 들었어? 이제 어떻게 할 건데?”
대답을 고르는 사이 질문은 점점 빨라졌고, 그분은 방바닥만 내려다보았습니다. 끝내 아내는 울면서 “당신이랑은 정말 대화가 안 돼”라고 말했습니다.
아내에게 남편의 침묵은 무심함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남편에게는 대답을 재촉받는 순간 귀가 먹먹해지고 입안이 마르는 반응부터 시작됐습니다.
손님 앞에서는 막힘없던 말
상담 예약은 아내가 했고, 첫 상담에는 두 사람이 함께 왔습니다. 아내는 싸우자고 묻는 게 아니라고 먼저 말했습니다. “대답이 없으면 이 사람 마음이 저한테서 멀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서 자꾸 더 묻게 돼요.”
옆에 앉은 그분은 한참 뒤에야 입을 열었습니다. “저도 대답하고 싶어요. 그런데 질문이 쌓이면 말이 목에서 안 나와요.”
평소 말수가 적은 분은 아니었습니다. 정비소에서는 까다로운 손님에게도 고장 난 부품을 차근차근 설명했고, 집에서도 아들 축구나 뉴스 이야기는 곧잘 했습니다. 하지만 아내가 서운함을 말하며 대답을 재촉하면 달랐습니다. 첫 질문에는 답을 찾다가도 두세 가지가 겹치면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남편이 언제 말을 멈추는지 살펴보면 도움이 됩니다. 어떤 대화에서든 말수가 적은지, 서운함을 듣거나 대답을 재촉받을 때만 입을 닫는지 구분해 보는 것입니다. 평소에도 말수가 적다면 성격과 대화 습관을 함께 돌아볼 수 있습니다. 재촉받을 때만 말이 막힌다면, 할 말이 없어서라기보다 압박을 느끼는 순간 대답하기 어려워지는 것일 수 있습니다.
대화를 되살려 보려는 노력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부부 대화법 영상을 함께 보았고, 아내는 ‘당신은 왜’ 대신 ‘나는 서운했어’로 말을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그분은 말이 막히면 ‘잠깐 생각할 시간을 줘’라고 말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서로 탓하지 않고 마음을 전하는 연습은 다툼을 줄이고 대화를 이어 가는 데 보탬이 됩니다.
약속을 떠올려야 할 순간에 말문이 먼저 막혔습니다. 아내가 “왜 또 말이 없어?”라고 물으면 귀가 먹먹해져 ‘잠깐만’이라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습니다. 대답이 없자 아내도 불안해져 연습했던 첫마디 대신 질문을 쏟아 냈습니다.
두드릴수록 더 굳게 닫히는 문
부부 대화에서는 한 사람이 대답을 구할수록 다른 사람이 물러나는 흐름이 반복되기도 합니다. 이를 ‘요구-철수 패턴’이라고 부릅니다. 대답이 없으면 불안해져 더 묻고, 질문이 거세지면 부담스러워져 더 입을 닫습니다. 서로의 반응이 맞물리면서 대화를 시도할수록 오히려 말하기 어려워집니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밖에서는 대답이 없어 문을 더 세게 두드립니다. 안에서는 두드리는 소리가 커질수록 문을 열기 어렵습니다. 두 사람 모두 대화를 바라지만, 서로의 반응 때문에 시작하기가 힘들어집니다.
이 부부도 그랬습니다. 아내는 남편이 침묵하면 마음이 멀어진 것 같았고, 그분은 질문이 몰려오면 피할 곳이 없는 듯 부담스러웠습니다. 아내가 더 묻자 남편은 더 입을 닫고, 그러면 아내는 더욱 불안해졌습니다.
“아내가 저를 몰아세우려고 묻는 게 아니라는 건 알아요. 그런데 질문이 두 개만 겹쳐도 귀부터 먹먹해져요.”
귀가 먹먹해지고 입안이 마르는 반응은 대화법을 떠올리기 전에 시작됐습니다. 그분은 아내의 질문을 듣고도 대답할 말을 고르기 어려웠습니다. 상담에서는 말을 잘하는 법을 더 연습하기에 앞서, 재촉받을 때 일어나는 이 감각과 함께 떠오르는 경험을 살펴봤습니다. 아내에게는 침묵 앞에서 커지는 불안이, 그분에게는 질문 앞에서 막히는 말이 각자 다룰 반응이었습니다.
팔뚝에 남은 동그란 잇자국
그분의 최면상담은 아내가 안방 문을 닫으며 하던 “우리 얘기 좀 해”에서 시작했습니다. 그 말을 깊은 최면 속에서 다시 떠올리자, 곧 귀가 먹먹해졌다고 합니다.
귀가 먹먹한 느낌을 따라가던 중, 그분의 오른손이 왼쪽 팔뚝을 천천히 문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이런 말이 나왔습니다. “팔이 따끔거려요. 누가 물었어요.”
말이 두세 마디씩 겨우 이어지던 어린 시절입니다. 남자아이가 작은 방에 서 있습니다. 옆집에서 또래와 놀다 돌아온 아이의 옷을 갈아입히던 엄마가 팔뚝에 동그랗게 찍힌 잇자국을 발견하고 아이 팔을 들어 불빛에 비춰 봅니다.
“이거 누가 물었어? 많이 아팠지? 친구가 그랬어?” 아이는 입술을 달싹이지만 소리가 나오지 않습니다. 블록을 두고 친구와 다툰 것 같아도, 무슨 일이 어떤 순서로 벌어졌는지 말로 옮기기 어렵습니다.
엄마가 아이 앞에 쪼그려 앉아 두 팔을 붙잡습니다. “엄마 봐. 누가 그랬냐니까? 왜 대답을 안 해?” 질문이 빨라질수록 엄마 목소리는 커지는데, 아이에게는 오히려 멀리서 웅웅거리는 소리처럼 들립니다.
목구멍이 꽉 막히고 입안이 바짝 마릅니다. 아이는 입을 앙다문 채 엄마 손에서 팔을 빼냅니다. “말을 해야 엄마가 알지!” 엄마의 목소리가 한 번 더 높아지자, 아이는 뒷걸음질로 장롱과 벽 사이 좁은 틈까지 물러나 쪼그려 앉습니다.
엄마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 약상자를 가지러 방을 나갑니다. 아이는 물린 팔을 다른 손으로 감싼 채 방 한구석에 그대로 앉아 있습니다.
그분은 최면 속에서 장롱 옆 틈 바로 앞, 방바닥에 가서 앉았습니다. 아이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고, 아이처럼 무릎을 세운 채 한동안 곁에 있었습니다. 아이의 숨이 조금 느려지자 그제야 이렇게 말했습니다.
“팔 물려서 많이 아팠지. 깜짝 놀랐고. 너무 빨리 지나간 일이라 어떻게 된 건지 말로 하기 어려웠던 거야. 엄마는 네 팔을 보고 놀라서 자꾸 물은 거야. 지금 대답하지 못해도 네가 잘못한 건 아니야.”
옷을 갈아입히던 순간부터 같은 일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엄마는 이번에도 잇자국을 보고 질문을 쏟아 냈고, 아이는 대답하지 못한 채 장롱 옆으로 물러났습니다. 달라진 것은 아이에게 들리는 소리였습니다. 엄마의 목소리가 멀리서 웅웅거리지 않았고, 질문 사이에 섞인 “많이 아팠지?”라는 말도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꽉 막혔던 목이 풀려 숨을 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최면에 들어가기 전, 아내와 다툰 밤을 이야기하면서 그분은 물을 세 번이나 따라 마셨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같은 밤을 다시 이야기할 때는 물컵에 손을 대지 않았습니다.
어린 시절에도 질문이 빨라지자 귀가 먹먹해지고 말이 막혔습니다. 아내가 잇달아 물을 때 그분에게 일어난 반응과 닮아 있었습니다. 상담에서는 두 장면에서 공통으로 나타난 긴장과 침묵을 함께 다뤘습니다. 대답을 재촉받을 때 귀가 먹먹해지고 말문이 막혔던 다른 경험들도 최면 중 이어서 살피며, 곧바로 답하지 못해도 잘못은 아니고 필요한 시간을 말할 수 있다는 이해를 넓혀 갔습니다.
안방 문이 닫혀도 이어진 대화
상담을 마친 뒤, 정비소를 넘겨받을지 사장님께 답을 드려야 할 날이 다가왔습니다. 그날 밤 아들 방 불이 꺼지자 아내가 안방 문을 닫고 그분 맞은편에 앉았습니다. “가게 어떻게 할 거야? 돈은 어떻게 하고? 당신 혼자 할 수 있겠어?”
그분은 나중에 이렇게 전했습니다. 질문은 여전히 한꺼번에 쏟아졌지만, 그날은 귀가 먹먹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내의 물음이 하나씩 들렸고, 목소리에 담긴 걱정도 알아차렸습니다. “알았어, 그만하자” 대신 이렇게 답했습니다. “당신 걱정돼서 묻는 거 알아. 돈 얘기부터 하나씩 할게.”
그분은 서랍에서 수첩을 꺼냈습니다. 혼자 적어 둔 인수 비용, 대출 이자, 단골손님 수가 빼곡했습니다. 그분이 전한 바로는, 두 사람은 새벽 한 시가 넘도록 숫자를 하나씩 짚어 가며 이야기했습니다. 아내가 그 수첩을 본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습니다.
그 뒤에는 아내가 묻기 전에 먼저 말을 꺼내는 날도 생겼다고 합니다. 어느 저녁에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오늘 사장님이랑 계약서 얘기했어. 저녁 먹고 같이 볼래?” 하고 물었습니다. 그날 식탁에는 계약서 두 장과 그 수첩이 나란히 놓였습니다.
남편에게 같은 질문을 세 번 했는데 “알았어”라는 대답만 돌아왔다면, 어떤 순간에 남편이 말을 멈추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그 침묵이 압박을 느낄 때 말문이 막히는 반응일 수도 있습니다. 대답이 없자 자꾸 더 묻게 되는 마음도 함께 살펴봐야 합니다.
대화법을 익혀도 같은 흐름이 되풀이된다면, 각자 어떤 순간에 묻거나 입을 닫게 되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부에게는 질문 앞에서 막히던 말과 침묵 앞에서 커지던 불안을 다루는 일이 대화를 다시 이어 가는 출발점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