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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민한 거야? 솔직하게 말해 줘도 돼.”
서른두 살 치과위생사 여성분이 밤 열한 시가 넘어 친구에게 보낸 메시지입니다. 낮에 실장이 환자 앞에서 “설명을 뭘 그렇게 길게 해요” 하고 말을 끊었습니다. 퇴근길 버스에서도 서운함이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그 일을 다시 떠올리자, 정말 내가 설명을 길게 했나, 서운해할 일이 맞나 하는 의심이 꼬리를 물었습니다.
메시지를 보낸 뒤에는 답이 올 때까지 휴대전화 화면을 몇 번이고 켰다 껐습니다. 명치가 돌처럼 딱딱해지고 목덜미가 뜨거워졌으며, 전화기를 쥔 손바닥에는 땀이 뱄습니다. 친구가 “그건 실장님이 좀 심했네”라고 답하자 그제야 명치의 힘이 조금 풀렸습니다. 서운한 마음은 분명 자기 것이었는데, 서운해도 되는지는 늘 남에게 확인받아야 했습니다.
일 년 전, 사 년 가까이 만난 연인과 헤어졌습니다. 연인은 그분이 서운하다고 말하면 “또 오버한다”고 했고, 지난 대화를 꺼내면 “그런 말 한 적 없어, 네가 잘못 기억하는 거야”라고 했습니다. 헤어진 뒤 번호를 지우고 연락을 끊었습니다. 벗어났으니 이제 괜찮아질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분을 더 괴롭힌 것은 ‘벗어났는데 왜 아직 이럴까’ 하는 자책이었습니다. 업무 메일도 옆자리 동료에게 먼저 보여 주고 나서야 보냈습니다. 동창 모임에 갈지 말지도 언니에게 “가도 괜찮을까?” 하고 물었습니다. 전 연인은 곁에 없는데, 누군가 ‘괜찮다’고 해 줘야 결정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가스라이팅에서 벗어난 후에도 이렇게 자기 판단을 믿지 못하는 상태가 이어진다면, 가스라이팅 후유증의 한 모습일 수 있습니다. 다만 헤어진 뒤에도 연락이나 위협이 계속되고 있다면, 마음을 살피기보다 안전을 지킬 수 있는 도움부터 받아야 합니다.
확인을 받아야 끝나는 판단
자신이 느끼고 기억한 것을 오랫동안 부정당하면 자기 판단을 믿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자기신뢰 손상’은 이런 상태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혼자 무언가를 정하려 할 때 불안이나 부끄러움이 앞서고, 그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다른 사람의 확인을 찾게 되기도 합니다.
회사에서 결재가 필요한 서류를 떠올려 보세요. 담당자가 아무리 꼼꼼히 써도 윗사람이 서명하기 전에는 처리가 끝나지 않습니다. 그분도 누군가 ‘맞다’고 해 주기 전에는 결정을 마무리하기 어려웠습니다. 사 년 동안 전 연인은 그분의 판단에 자주 퇴짜를 놓았습니다. 헤어진 뒤에는 친구와 언니, 동료에게 확인을 구했습니다.
그분이 답을 몰라서 묻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서운했지만, 그렇게 느껴도 괜찮다는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누군가에게 자주 묻고 있다면, 답을 몰라서인지 이미 정한 답을 믿기 어려워서인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이미 답이 있다면, 판단을 끝내려는 순간의 불안이 끼어드는 것일 수 있습니다.
잘못이 아니었다는 걸 알아도
그분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자존감 회복에 관한 책을 찾아 읽었고, 잠들기 전에 ‘내 느낌은 틀리지 않았다’고 적어 보기도 했습니다. 심리상담을 받으며 그 관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차근차근 되짚었고, 자기 잘못이 아니었다는 것도 분명히 알게 됐습니다. 이런 과정은 겪은 일을 이해하고 스스로를 탓하는 마음을 덜어 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머리로는 알아요. 그런데 뭘 정하려고만 하면 명치부터 굳어요. 생각하기도 전에요.”
누구의 잘못이었는지 알면서도 결정을 앞두면 몸의 불안이 먼저 올라올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익숙해진 반응은 관계가 끝났다는 사실을 안다고 곧바로 멈추지 않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결정하려 할 때 명치가 굳는 느낌에서 출발해, 비슷한 불안을 느끼며 남의 확인을 기다렸던 경험을 살펴봤습니다.
옷가게에서 먼저 묻던 아이
그분은 깊은 최면 속에서, 친구의 답을 기다리던 밤처럼 명치가 굳어 오는 느낌에 주의를 모았습니다. 한참 뒤 조용히 말했습니다. “옷가게예요. 옷걸이가 제 머리 위에 있어요.”
엄마 손을 잡고 동네 옷가게에 들어선 아이의 눈이 곧장 낮은 진열대로 갑니다. 소매 끝에 작은 꽃이 수놓인 연두색 카디건이 개어져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그 옷을 가리키는 대신 엄마 손을 두 번 잡아당기며 묻습니다. “엄마, 나 어떤 거 골라?”
엄마가 “네가 골라 봐” 하자 아이는 그제야 연두색 카디건을 내밉니다. 엄마는 옷을 받아 들고 “이게 정말 마음에 들어? 딴 것도 한번 봐” 하고 되묻습니다. 아이는 카디건을 진열대에 도로 내려놓고 다른 옷을 집어 듭니다. 두 번째 옷에도, 세 번째 옷에도 같은 말이 돌아옵니다.
옷을 도로 내려놓을 때마다 아이는 명치가 오그라들 듯 숨을 삼키고, 고개를 돌려 연두색 카디건 쪽을 힐끔 봅니다. 가게를 나설 때 아이 손에는 엄마가 골라 준 옷이 담긴 봉투가 들려 있습니다.
그분은 진열대 앞에 선 아이 옆으로 가 무릎을 굽혔습니다. 그리고 아이의 눈길이 머문 연두색 카디건을 손끝으로 짚으며 말해 주었습니다.
“연두색이 좋구나. 네 눈은 벌써 골랐어. 엄마가 다시 고르라고 해도, 네가 잘못 고른 게 아니야. 네가 뭘 좋아하는지는 네가 알아.”
이렇게 일러 준 다음, 그분은 옷가게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같은 장면을 다시 겪었습니다. 아이는 이번에도 “엄마, 나 어떤 거 골라?” 하고 먼저 물었고, 엄마가 되물을 때마다 옷을 도로 내려놓았습니다. 다만 숨을 삼키는 일이 줄었고, 명치도 전처럼 오그라들지 않았다고 합니다. 엄마가 골라 준 옷 봉투를 들고 가게를 나서면서도, 아이는 자기가 연두색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봉투에 든 옷이 어떤 옷이었는지는 끝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무엇을 사러 간 날이었는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또렷한 것은 소매 끝의 작은 꽃, 그리고 묻기도 전에 이미 그 옷을 보고 있던 자기 눈길이었다고 합니다.
아이는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르는 게 아니었습니다. 마음에 드는 옷이 있어도 엄마가 ‘그래’ 해 주기 전에는 자기 선택을 붙들기 어려웠습니다. 헤어진 뒤에도 이미 정한 답을 두고 누군가의 ‘맞아’를 기다리게 된 데에는, 어릴 때부터 익숙해진 이런 반응이 이어져 있었을 수 있습니다. 스스로 고른 뒤에도 다른 사람의 확인을 기다리게 했던 관련 경험들도 최면 중 이어서 다루며, 선택의 기준을 다시 자기 안에서 확인하는 연습으로 소화해 나갔습니다.
혼자 정하고 끝낸 날들
상담을 마친 뒤에도 실장의 말버릇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날도 실장은 환자 앞에서 설명이 길다며 그분의 말을 끊었습니다. 그분은 조금 서운했습니다. 그리고 그 환자가 같은 질문을 두 번 했으니 설명이 길어질 만했다고 스스로 정리했습니다. 그날 밤에는 친구에게 보낼 메시지를 쓰지 않았고, 명치가 굳지 않은 채로 저녁을 먹었다고 합니다.
몇 해째 미뤄 둔 운전 연수도 신청했다고 합니다. 전 연인은 “너는 길눈이 어두워서 운전하면 큰일 난다”고 말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학원 두 곳의 후기를 읽어 본 뒤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정했고, 화면을 캡처해 누구에게 보내는 일 없이 바로 결제까지 마쳤습니다. 첫 수업 날에는 운전석에 앉아 거울을 자기 눈높이에 맞췄다고 합니다.
오늘 무언가를 정하면서 누구의 대답을 먼저 기다리셨나요? 관계가 끝나도, 혼자 결론을 내리려는 순간 불안이 올라올 수 있습니다. 서운한 마음 하나, 메일 한 통까지 남의 확인을 거쳐야 마음이 놓인다면, 다짐만 되풀이하기보다 그때의 불안과 반응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판단으로 결정을 마무리하는 일도 다시 익힐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