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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정말 끝낼 생각이었어요. 번호도 지우고 사진도 다 지웠고요. 그런데 사흘째 되는 밤이 되니까 명치가 꽉 막혀서 숨이 배까지 안 내려가요. 결국 새벽 세 시에 외워 둔 번호를 눌렀습니다.”
서른일곱 살인 그분은 인테리어 설계 일을 합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가슴 한가운데를 주먹으로 눌렀습니다. 헤어지고 나면 밥이 목으로 넘어가지 않았고, 누워도 심장이 두근거려 한 시간도 내리 자지 못했다고 합니다. 일하다 손이 떨려 마우스를 몇 번씩 놓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버티다 전화를 걸어 목소리를 들으면 숨을 쉴 수 있었다고 합니다.
오 년을 만난 여자친구는 마음이 상하면 며칠씩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은 날도 있었고, 친구들 앞에서 그분의 말을 자르고 핀잔을 준 날도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갑자기 회사 앞에 도시락을 들고 나타나거나, 여행지를 알아봤다며 먼저 손을 잡았습니다. 그분은 그런 며칠 때문에 나머지 날들을 버텼다고 했습니다.
헤어지자는 말은 네 번 했고, 그때마다 그분이 먼저 다시 연락했습니다. 친구들은 그 정도면 좋아서 만나는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그분도 스스로를 사람에게 의존하는 한심한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매주 수요일 저녁 대학 동기들과 하던 풋살에도 이 년 가까이 나가지 못했습니다. 여자친구가 언제 갑자기 보자고 할지 몰랐기 때문입니다.
관계중독은 정식 진단명은 아닙니다. 상처받는 관계인 줄 알면서도 떨어지면 견디기 어려운 상태를 흔히 이렇게 부르고, 연애에서 두드러질 때는 연애 의존이라고도 합니다. 다만 상대가 폭언이나 위협으로 통제하는 관계라면 마음을 살피기에 앞서 안전을 확보하고 주변과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먼저입니다.
자신을 아프게 한 사람에게 왜 매번 돌아갔을까요? 상담에서는 연애와 무관해 보이는 어린 시절 가족 모임이 떠올랐습니다.
사흘째 밤마다 무너진 결심
네 번째로 헤어졌을 때는 할 수 있는 것을 다 해 봤다고 합니다. 연락처를 차단하고, 함께 찍은 사진을 지우고, 친구 집에서 며칠을 지냈습니다. 관계중독 극복에 관한 책을 사서 밑줄을 그으며 읽기도 했습니다. 이틀째까지는 이번만큼은 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연락할 통로를 줄이고 믿을 만한 사람 곁에 머무는 일은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그분에게는 그런 노력을 해도 사흘째 밤이면 같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머리로는 끝내야 한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사흘째 밤이 되면 숨이 얕아지면서 아무 생각도 안 나요. 이대로 혼자 남으면 큰일 날 것 같아요. 정신을 차려 보면 이미 통화 버튼을 누르고 있어요.”
비슷한 일을 겪고 있다면, 떠나기로 마음먹은 뒤 무엇이 가장 견디기 힘든지 돌아보세요. 그 사람이 그리운가요, 아니면 혼자 남았다는 느낌에 숨이 막히나요? 이 사례처럼 혼자 남는 두려움이 더 크다면, 그 두려움이 다시 연락하게 만드는 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것만으로 상태를 진단할 수는 없지만, 살펴볼 마음을 짚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찬물 사이로 가끔 쏟아지는 따뜻한 물
가까운 사람과 멀어질 기미가 보일 때 불안이 크게 올라오는 관계 방식을 불안애착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그분은 관계를 끝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막상 떨어져 혼자 있는 밤이면 판단보다 두려움이 앞섰습니다.
그분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습니다. “그 사람이 차갑게 굴 때보다 제가 떠나서 혼자 남는 게 더 무서웠던 것 같아요. 그러다 그 사람이 먼저 웃어 주는 날이 오면 서운했던 게 다 없던 일이 돼요.”
차갑게 굴다가 가끔 다정해지는 상대의 태도도 기다림을 길게 했습니다. 서운한 날이 이어지다 갑자기 도시락을 들고 찾아오거나 여행을 제안하면, 그 며칠이 유난히 크게 남았습니다. 다음에는 언제 다시 다정해질지 몰라, 상처받는 날에도 쉽게 떠나지 못했습니다.
찬물만 나오던 샤워기에서 잠깐 따뜻한 물이 나오는 모습과 비슷합니다. 몸은 추운데 곧 다시 따뜻해질 것 같아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분에게는 혼자 남을 두려움과 다음 다정함을 기다리는 마음이 함께 있었습니다.
한 번 더 결심한다고 사흘째 밤의 두려움이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상담에서는 그때 명치가 막히고 숨이 얕아지는 느낌을 따라가며, 혼자 남는 두려움과 이어진 오래전 경험을 살폈습니다.
이모 무릎 옆을 떠나지 못한 아이
최면이 충분히 깊어졌을 때 그분은 사흘째 밤마다 막히던 명치에 주의를 모았습니다. 한동안 말이 없다가 천천히 입을 뗐습니다.
“마당이에요. 고기 굽는 냄새가 나요. 그런데 여자친구는 없어요. 이모가 있어요.”
잠시 웃으며 말했습니다. “연애 얘기를 하러 왔는데 왜 이모가 나오죠? 이모랑은 지금도 명절마다 잘 지내요.”
아직 자기 이름도 또박또박 말하지 못하던 무렵, 친척들이 할머니 댁에 모인 날이었습니다. 멀리 사는 이모는 일 년에 몇 번밖에 오지 못했습니다. 이모가 대문을 들어서자 아이와 숨바꼭질을 시작했습니다. 장독대 뒤에 숨은 아이를 “찾았다!” 하며 끌어안을 때마다 아이는 숨이 넘어가게 웃었습니다.
한창 놀던 중에 평상 쪽에서 어른들이 이모를 불렀습니다. 이모는 아이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평상에 앉아 오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아이는 이모 무릎 옆에 서서 이모 곁에 놓인 가방의 끈을 손가락에 감았다 풀었다 했습니다. 사촌들은 마당에서 흙장난을 했지만 아이는 그쪽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이모가 가끔 고개를 돌려 볼을 꼬집으며 “조금 있다가 또 놀자” 하면 아이 얼굴이 환해졌습니다. 이모가 다시 어른들 쪽으로 돌아앉으면 배 속이 꽉 막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이는 가방끈을 더 세게 쥐고 이모 무릎에 몸을 붙였습니다. 해가 질 때까지 같은 일이 몇 번이나 이어졌습니다.
어른이 된 그분은 아이가 손가락에 감고 있던 가방끈 끝을 함께 잡고, 당시 아이가 몰랐던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모랑 숨바꼭질할 때 정말 신났지. 이모가 저쪽으로 돌아앉으니까 배 속이 꽉 막히는구나. 이모는 네가 싫어서 돌아앉은 게 아니야. 오랜만에 만난 어른들이랑 이야기하는 중이야. 이모가 안 보는 동안에도 너는 혼자 남은 게 아니야.”
이야기를 마치고 같은 날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이모는 이번에도 평상으로 불려 가 어른들과 오래 이야기했고, 아이도 이모 무릎 옆에 그대로 서 있었습니다. 다만 가방끈을 감던 손가락에 힘이 풀렸고, 막혀 있던 숨이 배까지 내려갔다고 합니다. 그제야 사촌들이 웃는 소리와 고기 굽는 냄새가 느껴졌습니다. 이모가 어른들과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여전히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이모와 여자친구는 다른 사람이고 가족 모임과 연애도 다릅니다. 하지만 관심이 다른 곳으로 향하자 그 곁을 떠나지 못한 채 숨을 조이고 다음 다정함을 기다리는 모습은 닮아 있었습니다. 상담에서는 이 장면에 담긴 기다림과 두려움을 지금의 관계에서 반복되던 반응과 함께 살폈습니다. 관심이 멀어진 듯할 때 곁을 떠나지 못하고 다음 다정함을 기다렸던 다른 경험들도 최면 중 이어서 다루며, 잠시 혼자 있어도 버려진 것은 아니라는 이해를 넓혀 갔습니다.
이 년 만에 다시 나간 수요일 풋살
상담을 마무리할 무렵, 그분은 스스로 관계를 정리했다고 전했습니다. 헤어지고 사흘째 밤이 다시 왔을 때도 그 사람 생각에 가슴 한쪽이 시렸습니다. 하지만 명치가 막혀 숨이 얕아지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휴대전화는 충전기에 꽂아 두었고 그날 밤은 아침까지 깨지 않고 잤습니다.
그 주 수요일 저녁에는 풋살화를 챙겨 동기들이 모이는 경기장에 갔다고 합니다. 이 년 가까이 얼굴을 비추지 않았지만 동기들은 공부터 넘겨주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국밥을 먹는 동안에도 휴대전화는 가방 속에 두었습니다.
어느 밤, 그 사람에게서 “보고 싶어”라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마음이 크게 흔들렸고, 예전 같으면 바로 옷을 챙겨 나갔을 밤이었습니다. 하지만 한참 화면을 보다가 “잘 지내”라고 짧게 답하고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고 합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평소처럼 출근했습니다.
차단한 번호를 새벽에 다시 풀어 본 적이 있다면, 그 일을 의지가 약한 탓으로만 돌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혼자 남을 것 같은 두려움이 판단보다 앞설 수 있습니다. 그 두려움과 오래된 기다림을 살피면서, 관계를 이어 갈지 끝낼지 자신의 판단으로 정하는 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