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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먹었어?”
“바쁜가 보네.”
“혹시 나한테 화난 거 있어?”
인테리어 설계 일을 하는 서른한 살 남성이 저녁 일곱 시부터 한 시간 동안 여자친구에게 보낸 메시지입니다. 세 메시지 옆에는 읽지 않았다는 숫자 1이 그대로 떠 있었습니다. 식탁에 차린 밥은 두 숟가락만 뜨고 말았습니다. 윗배가 안쪽에서 쥐어짜이는 듯 아프고 입안이 바짝 말라, 물을 몇 번이나 마셨다고 합니다.
여자친구는 대학병원 병동 간호사였습니다. 그날 저녁 근무라는 것과 근무 중엔 휴대폰을 볼 틈이 거의 없다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습니다. 사귄 두 해 동안 퇴근하면 늘 먼저 연락을 주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방 안을 서성이며 몇 분마다 화면을 켰습니다.
밤 열 시 사십 분에 답장이 왔습니다. “오늘 환자가 몰려서 폰을 한 번도 못 봤어. 화난 거 없어, 걱정했어?” 그제야 쥐어짜이던 배가 풀리면서 참았던 숨이 한꺼번에 나왔습니다.
곧이어 자신이 보낸 세 줄이 눈에 들어왔고, 민망해진 그는 “아니, 그냥”이라고만 답했다고 합니다.
“제가 생각해도 애정에 집착하는 것 같아요. 이러다 여자친구가 지칠까 봐, 그게 또 불안해요.”
상담을 신청하며 그가 한 말입니다. 친구들은 농담처럼 애정결핍 아니냐고 했고, 그는 밤마다 애정결핍 증상을 검색했습니다. 읽는 글마다 자기 이야기 같았다고 합니다.
애정결핍은 정식 진단명이 아니라 일상에서 쓰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이 말에 담긴 불안까지 가볍지는 않습니다. 그는 여자친구의 근무 사정도 알고, 자신을 아낀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답을 기다릴 때마다 배가 아프고 자꾸 화면을 확인했을까요?
관계가 센서등처럼 느껴진다면
심리도식은 자라면서 관계에 대해 익힌 마음속 규칙을 뜻합니다. 가까운 사람이 곁에 있어 준다는 믿음처럼 든든한 규칙도 있지만, 언제든 떠날 수 있다고 느끼게 하는 규칙도 있습니다. 후자를 심리학에서는 유기 도식이라고 부릅니다. 이런 생각이 강하게 작동하면 답장이 늦는 몇 시간도 관계가 끝날지 모른다는 신호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복도의 센서등을 떠올려 보세요. 열쇠를 찾느라 가만히 서 있으면 불이 꺼지고, 다시 켜려면 팔을 움직여야 합니다. 그에게는 잠깐 연락이 끊기는 시간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메시지를 보내 답을 확인하면 안심했지만, 답이 없으면 사랑까지 사라진 듯 불안했습니다.
서로 믿는 관계라면 한동안 말이 없어도 상대의 마음이 곧바로 달라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에게는 바로 그 조용한 시간을 견디는 일이 어려웠습니다.
답장을 받아도 한나절을 못 가는 안심
답장을 받으면 안심했지만 그 마음은 다음 날 점심때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오전에 온 답장이 ‘응’ 한 글자뿐이면 다시 윗배가 오그라들었습니다. 확인해서 안심하는 일이 거듭될수록, 확인 없이 기다리는 시간은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답장이 늦을 때 처음 떠오르는 생각이 무엇인지 살펴보세요. ‘바쁜가 보다’인가요, ‘마음이 식었나’인가요? 답을 받은 뒤 안심한 마음이 얼마나 가는지도 보세요. 마음이 식었다는 생각이 늘 먼저 들고 안심도 한나절을 못 간다면, 지금 연락 상황 외에 오래된 불안이 함께 작동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연애 심리 글에서 읽은 대로 휴대폰을 서랍에 두고 헬스장에 가 보았습니다. 하지만 러닝머신 위에서도 서랍 속 휴대폰만 떠올랐습니다. 여자친구와는 근무 중 연락하지 않고 퇴근 뒤 통화하기로 약속했습니다. 연락 방식을 맞추고 나니 그런 날 저녁은 조금 나았지만, 퇴근 시간이 십 분만 지나도 다시 방 안을 서성였습니다.
“괜찮아, 일하는 중이야.” 스스로 달래 봐도 배는 이미 오그라든 뒤였습니다. 퇴근 후 통화한다는 약속이 있어도 기다리는 동안의 불안까지 가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왜 답이 늦을 때마다 이렇게 반응했을까요? 최면상담에서는 답장을 기다릴 때 윗배가 오그라드는 느낌에서 출발해, 비슷한 불안을 느꼈던 어린 시절의 장면을 살폈습니다.
손을 놓았다 잡았다 하던 저녁 둑길
깊은 최면 속에서 그날 밤의 휴대폰 화면을 떠올리던 그는 한 손으로 윗배를 감싸 쥐었습니다. 숫자 1 세 개가 떠 있던 화면이었습니다. 손을 그대로 둔 채 그가 말했습니다. “물 냄새가 나요. 개천 옆 둑길이에요.”
해 질 녘, 어린아이가 엄마와 둑길을 걷고 있습니다. 팔을 머리 위로 한껏 뻗어야 엄마 손에 닿을 만큼 작았고, 할 줄 아는 말도 몇 마디 되지 않았습니다. 엄마 한 손에는 반찬 통을 싼 보자기가 들려 있고, 다른 손은 아이를 잡고 있습니다.
엄마는 보자기를 다른 손으로 옮겨 들 때 아이 손을 놓습니다. 뒤에서 자전거가 오면 손을 놓고 아이 등을 길 안쪽으로 밀어 줍니다. 아는 아주머니를 만나면 손을 놓은 채 한참 이야기를 나눕니다. 또 어떤 때는 오래도록 손을 잡고 앞뒤로 흔들며 걷습니다.
손이 비면 아이는 종종걸음으로 엄마에게 붙었습니다. 얼굴을 올려다보며 팔을 뻗어 엄마 손가락을 찾았습니다. 손이 잡히면 숨이 가라앉았고, 놓인 채 몇 걸음이 지나면 배가 오그라들어 다시 팔을 뻗었습니다. 둑길이 끝날 때까지 몇 번이나 손을 내밀었습니다.
“엄마가 저를 두고 어디 간 것도 아니잖아요. 손을 놨다가 다시 잡은 게 다예요.” 그는 이 장면이 왜 지금 떠오르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는 둑길의 어린 자신에게 다가가 걸음을 맞췄습니다. 손이 떨어질 때마다 겁이 나는 아이에게 그때는 알 수 없었던 사정을 알려 주었습니다.
“엄마 손이 떨어지면 배가 오그라들 만큼 겁이 나지? 엄마는 보자기를 바꿔 들 때, 자전거를 피할 때, 아는 사람과 이야기할 때 손을 놓는 거야. 손을 놓은 동안에도 엄마는 바로 네 옆에 있어. 잡고 싶을 때는 또 손을 내밀어도 괜찮아.”
해 질 녘 둑길을 다시 걸을 때도 엄마는 보자기를 바꿔 들며 손을 놓았고, 아이는 다시 팔을 뻗었습니다. 다만 손이 빈 몇 걸음 동안에도 배는 오그라들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바로 옆에서 들리는 엄마의 발소리를 들으며 걸었다고 합니다.
엄마는 손을 놓은 순간에도 아이 곁을 걷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에게는 손을 놓는 이유를 알기 어려웠을 겁니다. 답장을 기다리며 배가 오그라들고 자꾸 화면을 켰던 그의 모습은, 엄마 손이 비면 다시 손을 찾던 장면과 닮아 있었습니다. 상담에서는 손이 떨어져도 엄마가 곁에 있다는 것을 어린 자신이 새롭게 느껴 보도록 했습니다. 연락이나 관심이 잠시 끊기면 곧 멀어질 것처럼 불안했던 다른 경험들도 최면 중 이어서 다루며, 공백이 생겨도 관계가 바로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이해로 소화해 나갔습니다.
휴대폰을 가방에 넣고 뛴 두 시간
여자친구가 저녁 근무를 하던 어느 목요일, 그는 두 해 가까이 나가지 않던 풋살 모임에 다시 나갔다고 합니다. 예전에는 두 시간의 경기 중 연락을 놓칠까 봐 가지 못했습니다. 그날은 경기 전에 “나 풋살 간다. 끝나고 볼게”라고 보내고 휴대폰을 가방 안주머니에 넣었습니다.
쉬는 시간에 화면을 한 번 켜 보니 숫자 1이 그대로였습니다. 배가 잠깐 오그라들었지만 ‘근무 중이구나’ 생각하고 다시 가방을 닫았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보니 여자친구가 저녁 식사 짬에 보낸 답장이 와 있었습니다. “오늘도 정신없다. 다치지 말고 뛰어.” 그는 “두 골 넣음”이라고 보내고 팀원들과 치킨을 먹으러 갔습니다.
그 말을 보낸 뒤에는 여자친구가 퇴근할 때까지 휴대폰을 다시 꺼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메시지 세 줄을 보냈을 시간에 치킨집에서 팀원들과 경기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랑을 확인받고 싶어 오늘도 숫자 1이 사라지기만 기다리는 분이 계실 겁니다. 이 사례에서 살핀 것은 메시지의 개수보다, 잠깐 연락이 끊기면 멀어질 것처럼 느끼고 거듭 확인하려는 마음이었습니다. 그는 이후 답장이 늦는 저녁에도 자기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