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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괜찮은 거 맞지? 아까부터 말이 별로 없어서.”
금요일 저녁 칼국숫집에서 맞은편에 앉은 남자친구는 창밖을 보며 말없이 국수를 먹고 있었습니다. 제약회사 품질관리팀에서 일하는 서른네 살 여성분은 그 모습을 보다 결국 이렇게 물었습니다. 남자친구는 회사 일로 좀 피곤하다며 웃었습니다. 대답을 듣고도 속이 메슥거리고 등줄기에 식은땀이 났습니다.
집으로 걸어가며 같은 질문을 두 번 더 했습니다. 세 번째에 남자친구가 걸음을 멈췄습니다. “자꾸 그렇게 물으면 나도 좀 지쳐.” 그 말을 듣자 속이 뒤집힐 듯 울렁거려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날 밤에는 남자친구의 표정과 말을 계속 떠올리다가 창밖이 희끄무레해질 무렵에야 잠들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사귄 지 일 년 반이 되었고, 남자친구가 헤어지자는 말을 꺼낸 적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그가 친구들과 여행 계획을 세우거나 주말에 혼자 쉬고 싶다고 하면 관계가 끝나 가는 것 같았습니다. 불안해서 마음을 확인하고, 거듭 묻다가 지친 표정을 보면 더 불안해졌습니다. 이러다 정말 떠나 버릴 것 같아, 그런 자신이 미웠다고 합니다.
연애 불안을 검색하다가 ‘불안형 애착’이라는 말을 처음 알았습니다. 상대가 조금 멀어져도 버림받을까 두려워진다는 설명이 꼭 자기 이야기 같았다고 합니다. 헤어지자는 말을 한 적 없는 사람의 침묵이 왜 이별처럼 느껴졌을까요? 최면상담에서 그분은 놀이터 모래밭에서 놀다 말고 자꾸 엄마를 찾던 어린 자신을 떠올렸습니다.
불안이 크게 올라온 세 날
상담 첫 시간에 최근 유난히 불안했던 날 세 번을 꼽아 봤습니다. 칼국숫집에 갔던 금요일, 남자친구가 대학 동기들과 여행 날짜를 잡던 저녁, 혼자 쉬겠다고 했던 토요일이었습니다. 세 날 모두 다툼이나 이별 통보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조금 조용하거나 따로 시간을 보내려 할 때마다, 그분은 관계가 끝날까 봐 불안해졌습니다. 불안이 커지는 상황을 이렇게 살펴보면 무엇을 두려워하고 어떻게 반응하는지 조금 더 분명해집니다.
작은 거리에도 울리는 경보
애착은 아이와 돌봐 주는 사람 사이에 생기는 정서적 유대입니다. 돌봐 주는 사람이 곁에 있을지 예측하기 어려웠던 경험은 가까운 사람의 작은 변화에도 불안을 느끼는 방식과 이어질 수 있습니다. 연애할 때는 상대의 말수나 약속이 달라진 이유를 확인하고, 그 장면을 오래 곱씹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가방에 단 분실방지 태그의 알림 거리를 아주 짧게 설정하면, 가방은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도 몇 걸음만 떨어져도 알림이 울립니다. 그분의 마음에서도 남자친구의 작은 거리 변화가 이별의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남자친구가 말을 줄이거나 혼자 보내는 주말을 원할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관계를 끝내겠다고 하지 않았는데, 그분의 속은 벌써 울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을 버텨도 가라앉지 않던 울렁거림
그분은 불안형 애착에 관한 책을 몇 권 읽고 인터넷의 애착 유형 검사도 해 봤습니다. 불안할 때 바로 묻지 말고 한 시간만 기다리라는 조언도 따라 봤습니다. 남자친구가 혼자 쉬겠다던 토요일, 시계를 보며 한 시간을 버텼습니다. 소파와 창가를 몇 번이나 오가다가, 시간이 되자마자 ‘뭐 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합니다.
“제가 왜 이러는지는 알아요. 그런데 괜찮다고 생각하기도 전에 속부터 울렁거려요.”
불안이 언제 커지는지 알아차리고 확인을 잠시 미루는 연습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분은 한 시간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속이 계속 울렁거렸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아는 것과 그 순간 불안이 가라앉는 것은 다른 일이었습니다.
그분은 왜 작은 거리 변화에도 먼저 놀랐을까요? 최면상담에서는 칼국숫집에서 올라온 울렁거림을 떠올리며, 그 느낌과 이어지는 어린 시절의 장면을 살펴봤습니다. 어린 자신이 그때 무엇을 두려워하고 어떻게 행동했는지 돌아본 뒤, 어른이 된 자신이 아이에게 당시에는 알기 어려웠던 점을 전했습니다.
하늘색 모자를 찾던 아이
“엄마… 엄마 어디 갔어?”
깊은 최면 상태에서 그분은 칼국숫집의 울렁거림을 다시 떠올리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소리는 어린아이처럼 가늘어졌고, 고개는 무언가를 찾듯 옆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분이 이어서 떠올린 곳은 동네 놀이터였습니다.
걸음이 아직 뒤뚱거리는 작은 여자아이가 놀이터 모래밭에 앉아 있습니다. 엄마는 벤치에서 다른 아이 엄마와 이야기합니다. 아이는 모래를 몇 번 퍼 담다 고개를 들어 엄마의 하늘색 모자를 찾습니다. 엄마는 이야기를 하며 그네 쪽으로 몇 걸음 옮겨 가 있습니다.
아이는 삽을 모래에 꽂아 두고 엄마에게 갑니다. 엄마는 이야기를 멈추지 않은 채 다리에 붙어 선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습니다. 아이는 모래밭으로 돌아오지만 금세 다시 고개를 듭니다. 이번에는 엄마가 미끄럼틀 뒤에 있어 모자 끝만 보입니다.
아이는 모래 묻은 손을 꼭 쥐고 일어섭니다. 엄마의 모자가 미끄럼틀 뒤에 가려지자 가슴이 철렁하고, 숨을 참고 걸음을 재촉합니다. 그날 아이는 모래에 꽂아 둔 삽을 다시 쥐지 않았습니다. 벤치의 아주머니 얼굴은 흐릿했지만, 멀리 보이던 하늘색 모자만은 또렷했다고 합니다.
서른네 살의 그분은 모래밭 한쪽에 앉아 어린 자신과 함께 모래를 모았습니다. 아이가 엄마를 찾으려고 고개를 들자, 같이 고개를 들어 하늘색 모자를 가리켰습니다.
“엄마가 안 보일까 봐 자꾸 고개를 들게 되는구나. 저기 하늘색 모자 보이지? 엄마는 아주머니랑 얘기하면서 몇 걸음 옮긴 거야. 아까 네가 갔을 때도 엄마 손이 바로 네 머리 위로 왔잖아.”
그 말을 전하고 그분은 놀이터에서 보낸 오후를 다시 겪어 봤습니다. 엄마는 아까처럼 그네 쪽으로 갔다가 미끄럼틀 뒤로 옮겨 갔습니다. 아이도 그때마다 고개를 들어 모자를 찾고 엄마에게 갔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가슴이 철렁하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저기서 이야기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했고, 머리에 얹혔던 엄마 손의 따뜻함도 느꼈다고 합니다.
모래밭의 아이는 엄마가 잠시 시야에서 벗어나면 놀이를 멈추고 엄마를 찾으러 갔습니다. 그분도 남자친구가 조용해지면 무슨 일이 있는지 묻기 전에 관계부터 거듭 확인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잠시 다른 데 마음을 두면 떠날까 봐 불안해져 곧장 확인하던 모습이 두 장면에서 닮아 있었습니다.
최면 중에는 가까운 사람이 잠시 보이지 않거나 다른 일에 마음을 둘 때 곧 떠난 것처럼 불안해져 확인하러 가던 다른 관련 경험들도 이어서 다뤘습니다. 현재의 자신은 잠시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관계가 끝났다는 뜻은 아니라는 점을 알려 주며, 그때의 불안을 새로운 이해로 소화하도록 도왔습니다.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
남자친구가 새로 맡은 현장 일로 한 주 내내 말수가 적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목요일 저녁, 그가 말없이 밥을 먹자 그분은 “요즘 많이 지쳐 보여. 회사에서 무슨 일 있었어?”라고 물었습니다. 남자친구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현장 소장과 부딪힌 일을 한참 털어놓았습니다.
그 뒤 그분은 이렇게 지냈다고 전했습니다. 남자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속이 울렁거리지 않았고, 다 듣고 나서는 식은 보리차를 데워 한 잔 더 따라 주었습니다. 그 주 토요일 남자친구가 혼자 쉬겠다고 했을 때도 그러라고 답했습니다. 오후에는 처음으로 식빵 반죽을 해 보고, 반죽이 부풀기를 기다리는 동안 읽다 만 소설을 끝까지 읽었다고 합니다.
상대의 말수가 줄 때마다 불안해진다면, 말이 적어진 이유보다 먼저 이별을 떠올리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는 관계를 거듭 확인하며 버티던 한 시간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책을 읽는 한 시간으로 달라졌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