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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 안 하기로 포스트잇까지 붙여 놨어요. 그런데 금요일 밤, 저는 그 사람 오피스텔 앞에 서서 휴대폰만 움켜쥐고 있었어요.”
구청 민원실에서 일하는 서른여덟 살 남성이 상담 예약 전화에서 가장 먼저 한 말입니다. 그는 검색해서 찾은 ‘집착 버리는 법’을 성실히 따라 했습니다. 그런데 연락을 참을수록 불안이 커졌고, 결국 여자친구가 사는 곳까지 찾아갔습니다. 왜 그런 일이 생겼는지 그의 이야기를 따라가 보겠습니다.
세 해를 만나 결혼 이야기가 오가던 여자친구가 어느 밤 조심스럽게 말했다고 합니다. “네가 좋아. 그런데 가끔은 숨이 막혀. 나 혼자 있는 시간도 좀 있었으면 좋겠어.” 그날 그는 새벽까지 연애 집착을 검색하며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는 사무실 모니터 옆에 포스트잇 한 장을 붙였습니다. 거기에는 ‘먼저 연락하지 않기, 메시지는 하루 세 번까지, 여자친구가 올린 사진 찾아보지 않기’라고 적었습니다.
첫날과 둘째 날은 규칙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버티는 동안 가슴 한가운데가 조여 와 숨이 끝까지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점심때는 구내식당 식판을 반도 비우지 못하고 일어났고, 책상에 엎어 둔 휴대폰 쪽으로 몇 번이고 손이 갔습니다. 밤에는 누워도 속이 텅 빈 것처럼 허전해 새벽까지 뒤척였다고 합니다.
금요일 밤, 여자친구는 대학원 동기들과 저녁을 먹고 끝나면 연락하겠다고 했습니다. 열한 시가 넘도록 소식이 없자 심장이 터질 듯 뛰기 시작했습니다. 이십 분 사이에 메시지를 열두 통 보냈고, 답이 없자 외투도 제대로 걸치지 못한 채 택시를 탔습니다. 여자친구가 사는 오피스텔 출입문 앞을 한 시간 넘게 서성이는 동안, 휴대폰을 쥔 손가락 마디가 하얘질 만큼 힘이 들어가 있었다고 합니다.
자정이 넘어 골목으로 들어서던 여자친구는 그를 보고 걸음을 멈췄습니다. 그는 “걱정돼서 그랬어, 미안해”라는 말만 겨우 하고 다시 택시를 잡았습니다. 집으로 가는 내내 ‘이러다 정말 끝나겠구나’라는 생각만 되풀이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는 사랑이 지나쳐서 그렇다며 마음을 좀 내려놓으라고 했습니다. 그가 이틀 동안 해 보려던 일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금요일 밤에는 전보다 더 매달리고 말았습니다. 사람에 대한 집착은 왜 놓으려 할수록 더 심해질까요?
빼려고 당길수록 더 꽉 쥐는 손
연락을 참다가 한꺼번에 쏟아 내는 이 모습은 불안애착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상대가 멀어진다고 느끼면 연락하고 확인하고 찾아가는 행동이 생각보다 먼저 나오는 것입니다.
그는 여자친구에게 혼자 있을 시간을 주려고 연락을 줄였습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가슴이 조여 왔습니다. 머리로는 약속을 지키고 있었지만, 몸은 그 거리를 여자친구가 멀어지는 신호처럼 받아들였을 수 있습니다.
손가락을 붙잡는 아기의 작은 손을 떠올려 보세요. 그에게도 여자친구와 떨어져 있으려는 노력이 오히려 더 붙잡고 싶은 마음을 키우는 듯했습니다.
그에게는 연락을 멈추겠다는 결심과 여자친구를 놓칠까 두려워 휴대폰을 쥐는 마음이 동시에 있었습니다.
그가 느낀 두려움은 여자친구를 만나면서 처음 생긴 것만은 아닐 수 있습니다. 가까운 사람이 곁에 없다가 돌아오는 일을 어린 시절 어떻게 받아들였는지가 지금의 반응과 이어져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규칙을 지킨 날이 더 길었던 이유
그가 찾아본 방법도 관계에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각자의 시간을 갖고 연락 방식을 함께 정하는 일입니다. 밥이 잘 넘어가지 않고 잠을 설치는 날이 계속된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받아 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도 주말이면 혼자 산에 올랐고, 퇴근 뒤에는 미뤄 둔 자격증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산길에서도 몇 걸음마다 휴대폰을 꺼냈고, 책상 앞에서는 같은 줄을 몇 번이고 다시 읽었습니다. “참고 있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참는 내내 그 사람 생각만 했어요.” 규칙을 지킨 날일수록 하루가 더 길었다고 합니다.
연락을 참는 날에는 한두 시간마다 가슴이 얼마나 조이는지 짧게 기록해 볼 수도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조임이 옅어지는지, 아니면 심해지다가 연락을 몰아서 하게 되는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참는 시간이 길수록 불안도 커졌습니다.
포스트잇의 세 줄을 몰라서 못 지킨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슴이 조이고 자꾸 휴대폰을 보게 될 때, 그는 규칙을 떠올리며 버텼습니다. 그러나 버티는 동안 여자친구에게서 마음이 떨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연락을 참을 때마다 올라오던 가슴의 조임에 주목했습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비슷한 두려움을 느꼈던 어린 시절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현관문이 닫히던 저녁
눈을 감은 그의 숨이 점점 느리고 길어졌습니다. 깊은 최면 상태에서 오피스텔 앞을 서성이던 금요일 밤을 떠올리자, 숨이 도로 얕아지고 미간이 좁혀졌습니다. 그러다 그가 작게 중얼거렸습니다.
“문이 닫혀요. 엄마가 나가요.”
아직 현관 문고리에 손이 닿지 않는 남자아이가 거실에서 엄마 옆구리에 기대 졸고 있습니다. 그 무렵 엄마는 며칠씩 집을 비우곤 했습니다. 아이가 깨어나면 엄마 대신 아빠가 서툰 손으로 밥을 차렸고, 엄마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어느 저녁 엄마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현관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날도 며칠 만에 돌아온 날이었습니다.
엄마가 음식물 쓰레기봉투를 들고 일어서자 아이가 번쩍 눈을 뜹니다. 엄마의 스웨터 밑단을 두 손으로 움켜쥐고 현관까지 따라갑니다. 엄마는 금방 온다며 아이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 내고 문을 닫습니다. 아이는 신발들 위에 주저앉아 닫힌 문을 바라봅니다. 복도 끝으로 슬리퍼 소리가 멀어지자 숨이 가빠지고, 끝내 울음이 터집니다.
몇 분 뒤 엄마가 빈손으로 들어오자 아이는 엄마 다리에 매달립니다. 그날 저녁 아이는 잠들 때까지 스웨터 밑단을 놓지 않습니다. 엄마가 그 며칠을 어디서 보냈는지 묻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거기는 안 보여요”라고만 했습니다.
최면 속에서 그는 신발들 위에 주저앉은 어린 자신을 안아 올려 베란다 창가로 데려갔습니다. 창 아래로 1층 쓰레기 수거함 앞에서 봉투를 넣고 있는 엄마의 등이 보였습니다.
“엄마가 며칠씩 안 보였으니까, 문이 닫히면 또 그렇게 될까 봐 무섭지. 봐, 엄마 저기 있지? 쓰레기 버리러 잠깐 내려간 거야. 그리고 엄마가 돌아오는 건 네가 꼭 붙잡고 있어서가 아니야. 며칠 동안 네가 붙잡지 못했을 때도 엄마는 다시 왔어.”
그러고 나서 그는 그 저녁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엄마는 이번에도 봉투를 들고 나갔고, 아이도 스웨터 밑단을 쥐고 따라가 신발들 위에 주저앉았습니다. 아이는 여전히 훌쩍였지만, 슬리퍼 소리가 멀어지는 동안 가슴이 조여 오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엄마가 아래층에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돌아온 엄마의 다리를 붙잡은 손에도 전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엄마가 며칠씩 집을 비우던 때를 겪은 아이에게는 잠깐 닫힌 문도 긴 부재의 시작처럼 느껴졌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스웨터를 붙잡고 놓지 않았습니다. 어른이 된 뒤 여자친구와 거리를 두려고 할 때도 비슷한 두려움이 올라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상담에서는 붙잡지 않아도 엄마가 돌아왔던 사실을 어린 자신에게 보여 주며 그날의 두려움을 다시 살폈습니다.
최면 중에는 가까운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울 때 다시 오지 않을까 봐 붙잡거나 거듭 확인했던 다른 관련 경험들도 이어서 다뤘습니다. 어른이 된 자신은 떨어져 있는 시간이 곧 버림받는 시간은 아니며, 붙잡지 않아도 관계가 이어질 수 있다는 이해로 그때의 두려움을 소화해 나갔습니다.
문제집을 펴 둔 금요일 밤
그 뒤 여자친구가 다시 대학원 동기들과 저녁 약속을 잡은 금요일이 왔습니다. 그는 “재밌게 놀다 와”라고 보낸 뒤 책상에 앉아 미뤄 둔 자격증 문제집을 폈습니다. 그날 밤 한 단원을 끝까지 풀었고, 예전처럼 같은 줄을 몇 번씩 다시 읽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자정이 조금 못 되어 “이제 끝났어, 들어가는 중”이라는 메시지가 왔습니다. 그는 “조심히 들어가”라고 답하고 불을 껐습니다. 오피스텔 출입문 앞에서 휴대폰을 움켜쥐고 서성이던 그 금요일과 비슷한 시각이었습니다.
여름 동안 지방 연구소에서 현장 조사를 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여자친구가 조심스럽게 꺼낸 날도 있었습니다. 두 사람이 한 계절 내내 떨어져 지내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가슴이 한 번 조였지만, 그는 숨을 고르고 “좋은 기회네. 주말에 한 번 내려가 볼게”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모니터 옆 포스트잇은 아직 떼지 않았습니다. 다만 요즘은 그 세 줄을 떠올릴 일이 거의 없다고 합니다.
놓아 주겠다는 다짐, 벌써 몇 번째인가요? 다짐을 할수록 더 매달리게 된다면 의지가 부족해서라고만 여기지 않아도 됩니다. 그 사람에게는 상대가 멀어질까 두려울 때 먼저 가슴이 조이고, 확인하고 붙잡으려는 마음이 뒤따랐습니다. 참는 데 힘을 쏟기보다 무엇이 그 마음을 급하게 만드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