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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음파도 깨끗하고 내시경도 깨끗하대요. 그런데 초음파에 안 잡히는 데 숨어 있으면요? 그 생각이 들면 여기를 손가락으로 꾹 눌러 봐요. 누르면 또 찌르르해요. 그럼 역시 뭐가 있구나 싶어서 그날 밤은 잠을 못 자요.”
시내버스를 모는 마흔일곱 살 남성분이 오른쪽 갈비뼈 아래를 짚으며 한 말입니다. 몇 달 전부터 점심을 먹고 운전석에 앉으면 명치 아래가 묵직하고 오른쪽 옆구리가 당겼다고 합니다. 그럴 때면 입안이 바싹 마르고 핸들을 쥔 손바닥이 축축해졌습니다. 밤에도 옆구리에 손을 얹은 채 새벽까지 뒤척였습니다.
동네 내과에서 피검사를 받았고 위내시경과 복부 초음파도 했습니다. 결과는 모두 이상이 없었습니다. 의사는 오래 앉아 운전하면서 근육이 뭉쳤을 수 있다며 점심을 천천히 먹어 보라고 권했습니다.
아내는 검사까지 다 받았는데 무슨 걱정이냐고 했습니다. 그분도 그 말이 맞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도 제가 유난인 거 알아요. 그런데 괜찮다는 말이 하루를 못 가요.”
그사이 하던 일이 하나둘 줄었습니다. 점심을 보온병에 담아 온 흰죽으로 바꿨고,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눈 흰자와 혀의 색을 살폈습니다. 봄에 분양받은 주말농장에도 한 번 나가지 못했습니다. 허리를 숙이면 옆구리가 더 당길 것 같았습니다.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는 설명을 듣고도 큰 병을 놓쳤을 거라는 걱정이 오래 이어진다면 건강불안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검사 결과는 안심이 되는데 그 마음이 오래가지 않아 답답할 수 있습니다. 다만 새로 생기거나 이전과 달라진 증상은 마음 탓으로 돌리기 전에 진료로 확인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분처럼 필요한 검사를 마친 뒤에도 걱정이 이어지는 경우를 다룹니다.
몸에서 병의 흔적을 찾을 때
건강불안이 클 때는 평소라면 지나쳤을 몸의 감각도 큰 병의 신호처럼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그분에게는 밥을 먹은 뒤 명치가 묵직해지거나 오래 앉아 있던 옆구리가 당기는 느낌이 그랬습니다. 병일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커지면 그 부위를 더 자주 확인하게 됩니다.
숨은그림찾기를 떠올려 보세요. 그림에 무언가 숨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나뭇가지나 구름의 모양까지 유심히 보게 됩니다. 큰 병이 숨어 있을까 걱정할 때도 몸의 작은 변화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옵니다. 감각의 원인은 진료로 확인해야 하지만, 확인을 거듭할수록 그 감각에 더욱 신경이 쓰일 수 있습니다.
그분은 자기 몸을 그렇게 살피고 있었습니다. 명치의 묵직함과 옆구리의 당김은 물론, 아침마다 조금 달라 보이는 혀 색도 숨은 병의 흔적 같았습니다. 손가락으로 옆구리를 누르면 찌르르했고, 그 느낌은 다시 병을 의심하는 이유가 됐습니다.
검사 결과를 들은 뒤 얼마나 안심할 수 있었나요? 곧바로 ‘그 검사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 있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든다면, 몸의 감각뿐 아니라 그 감각을 받아들이는 방식도 함께 살펴볼 만합니다.
괜찮다는 말이 하루를 못 가는 이유
검사와 진료는 치료가 필요한 병이 있는지 확인하는 데 꼭 필요합니다. 그런데 의사가 근육이 뭉쳤을 수 있다고 설명했을 때, 그분에게는 ‘수 있다’는 말끝만 남았습니다. 확실하다고 말하지 않았으니 다른 병일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린 것입니다.
의사가 괜찮다고 했으니 괜찮다며 몇 번씩 스스로를 달랬습니다. 쉬는 시간에는 허리 스트레칭도 했습니다. 그래도 감각이 오면 손이 먼저 옆구리로 갔습니다. 검사로 몸 상태를 확인한 뒤에도 감각이 올 때마다 걱정이 다시 시작됐습니다.
괜찮다는 설명을 들었는데 손은 왜 먼저 옆구리로 갈까요? 검사가 몸 상태를 확인하는 동안에도, 감각을 느낄 때마다 떠오르는 걱정은 남을 수 있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그 순간 몸에 일어나는 반응에서 출발해, 걱정과 이어져 떠오르는 오래된 경험과 감정을 살펴봅니다.
복도 끝에서 나온 들것
깊은 최면 속에서 점심 뒤의 묵직함을 다시 느끼자 배에 힘이 들어가고 입안이 말랐습니다. 한동안 말이 없던 그분은 사람들이 모인 옛 아파트 복도가 보인다고 했습니다.
놀이터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아이는 한 손으로 엄마 손을 잡고, 다른 손에는 마시다 만 요구르트를 들고 있습니다. 그날 아침에도 복도 끝 집 할아버지가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려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게 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아직 그분을 ‘할부지’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할아버지네 현관문이 활짝 열려 있습니다. 구급대원 두 사람이 들것을 밀고 나오고, 그 위에 할아버지가 담요를 덮은 채 눈을 감고 누워 있습니다. 현관 앞에는 할아버지가 늘 신던 회색 슬리퍼가 가지런히 놓여 있습니다.
복도에 나온 이웃 어른들이 낮은 목소리로 말을 주고받습니다. “아침까지도 멀쩡하셨잖아.” “어디 아픈 줄 아무도 몰랐대.” 아이는 무슨 뜻인지 다 알지 못합니다. 어른들 목소리가 낮아지고 엄마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만 느낍니다.
아이는 엄마 다리 뒤로 반쯤 숨었습니다. 들이켠 숨을 내쉬지 못하고 배가 돌처럼 굳었습니다. 들것이 엘리베이터에 실리고 문이 닫힐 때까지 요구르트병을 찌그러뜨릴 만큼 꽉 쥐고 있었습니다.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아이 앞에 무릎을 꿇었습니다. 요구르트병을 쥔 작은 손을 감싸고 들것 손잡이를 잡은 구급대원들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할아버지가 누운 채 나오니까 많이 무서웠지. 저분들은 아픈 사람을 병원까지 얼른 모셔 가는 사람들이야. 네 몸에 무슨 일이 생기면 엄마랑 의사 선생님이 같이 살펴 줄 거야. 네 몸을 너 혼자 지키지 않아도 돼.”
놀이터에서 돌아오던 길부터 같은 장면을 다시 겪었습니다. 현관문은 열려 있었고 들것이 복도를 지나갔습니다. 어른들도 아침까지 멀쩡하셨다고 수군거렸습니다. 아이는 전처럼 엄마 다리 뒤에 반쯤 숨었습니다. 이번에는 들것 손잡이를 단단히 쥔 구급대원들의 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돌처럼 굳었던 배가 조금 풀리고 멈췄던 숨도 다시 내쉬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가 그 뒤 어떻게 되셨는지는 장면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상담에서도 그 뒷이야기를 찾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다룬 것은 엄마 다리 뒤에서 숨을 멈추던 아이의 마음이었습니다.
아이는 ‘아무도 몰랐대’라는 말을 모두 이해하지 못한 채 들었습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던 사람에게도 갑자기 무슨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두려움이 그 장면과 함께 남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어른이 된 그분이 검사 결과의 ‘이상 없음’보다 ‘초음파에 안 잡히는 데’를 먼저 떠올린 데에도 이 두려움이 한몫했을 수 있습니다. 같은 장면을 다시 겪을 때는 구급대원들이 할아버지를 돕고 있다는 점도 눈에 들어왔고, 몸을 혼자 지켜야 한다는 긴장이 조금 풀렸다고 합니다.
최면 중에는 몸의 작은 변화를 곧 아무도 모르는 큰 병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혼자 확인하며 긴장했던 다른 관련 경험들도 이어서 다뤘습니다. 어른이 된 자신은 몸의 변화는 필요한 진료로 확인하고, 모든 위험을 미리 찾아내 혼자 막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이해로 그때의 두려움을 소화해 나갔습니다.
김장 배추를 심은 주말
요즘은 차고지 앞 기사식당에서 동료들이 김치찌개를 시키면 그분도 함께 시킨다고 합니다. 몇 달 동안 점심으로 흰죽을 먹던 분입니다. 식사 뒤 운전석에 앉으면 명치 아래가 묵직한 느낌은 여전하지만, 이제는 배가 부른 느낌으로 받아들인다고 합니다. 두 손을 핸들에 둔 채 첫 정류장으로 차를 몰고, 쉬는 시간마다 거울 앞에서 눈 흰자를 확인하는 일도 그만두었습니다.
가을에는 봄에 분양받고 한 번도 가지 못했던 주말농장에도 나갔습니다. 배추 모종을 심다가 옆구리가 몇 번 당겼지만, 허리를 펴고 이마의 땀을 닦은 뒤 남은 모종까지 심었다고 합니다. 늦가을 김장 때 쓸 배추였습니다.
그분에게는 작은 감각이 올 때마다 놓친 병을 떠올리고 몸을 확인하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상담에서는 그 감각과 함께 올라오는 두려움을 살폈습니다. 이후 같은 느낌이 와도 곧바로 확인하러 가지 않는 변화가 있었다고 합니다. 결과지를 받아 들고도 손이 아픈 곳으로 향한다면, 그 순간 어떤 걱정이 앞서는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배가 부를 때 느끼는 묵직함을 큰 병의 신호로 여기지 않고 지나가는 날이 다시 올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