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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병원에서 초음파까지 보고 ‘깨끗합니다’라는 말을 들었어요. 그런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사이에 손가락이 또 귀밑을 누르고 있더라고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 뒤에도 그분의 손가락은 귀밑의 콩알만 한 멍울 위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분은 구청 민원실에서 일하는 마흔두 살 남성입니다. 봄에 면도를 하다 이 멍울을 처음 만진 뒤로 석 달 동안 병원 네 곳을 다녔습니다. 그런데 검사를 거듭할수록 안심할 수 있는 시간은 짧아졌습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 멍울을 눌러 보느라 귀밑 살갗이 벌겋게 부어 쓰라렸습니다. 침을 삼킬 때마다 목에 무언가 걸린 것 같았고, 밤에 옆으로 누우면 귓속에서 맥박이 쿵쿵 울려 몇 번씩 잠에서 깼습니다. 결과를 기다리는 날에는 민원 서류를 넘기는 손바닥이 땀으로 축축했습니다.
동네 이비인후과에서는 초음파를 보고 모양은 괜찮아 보이지만 반년 뒤에 다시 확인하자고 했습니다. 두 번째 이비인후과에서는 “목에 누구나 있는 림프절이 조금 만져지는 겁니다”라는 설명을 들었습니다. 내과에서 받은 피검사도, 대학병원 초음파도 결과는 같았습니다. 같은 멍울로 재검사를 반복하느라 올해 연가는 여름이 오기 전에 바닥났습니다. 결과를 들을 때마다 다리에 힘이 풀릴 만큼 안도했지만, 그 안도는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서랍에 모아 둔 결과지를 꺼내 ‘이상 소견 없음’이라는 글자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 아내는 처음에는 “의사가 괜찮다잖아” 하고 달랬지만, 요즘은 대답 대신 한숨을 쉰다고 합니다. 초등학생 딸과 약속한 캠핑도 검사가 다 끝나면 가자며 봄부터 미뤄 두었습니다. 그분은 “제가 생각해도 한심해요”라며 고개를 숙였습니다.
멍울이 커지는 것처럼 전과 다른 변화가 생겼거나 의사가 다시 보자고 한 검사라면, 그 진료는 미루지 않아야 합니다. 여기서 다루려는 것은 그런 검사가 아닙니다. 필요한 검사를 마친 뒤에도 병원을 옮겨 다니며 같은 검사를 다시 받게 되는 마음입니다. 괜찮다는 말을 네 번이나 들었는데, 그분의 안심은 왜 들을 때마다 더 짧아졌을까요?
목마를 때 들이켜는 바닷물
심리학에서는 불편한 느낌이 사라지는 경험 때문에 어떤 행동이 더 자주 되풀이되는 것을 부적 강화라고 부릅니다. 여기서 ‘부적’은 불편한 느낌이 빠져나간다는 뜻입니다. 결과지를 받는 순간 불안이 쑥 빠지면, 불안할 때마다 다시 확인하는 행동이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작은 감각에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더 빨리 올라오기 쉽습니다.
목이 마를 때 바닷물을 들이켜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 모금 넘기는 순간은 입안이 젖지만, 조금 지나면 전보다 더 목이 탑니다. 검사 결과도 그 순간에는 불안을 덜어 주지만, 다음번에는 또 확인하고 싶어질 수 있습니다.
그분도 첫 병원의 설명을 듣고는 열흘을 버텼습니다. 두 번째 병원의 설명으로 얻은 안심은 사흘, 내과 피검사 결과로 얻은 안심은 하루 만에 사라졌습니다. 대학병원의 ‘깨끗합니다’는 그날 저녁 샤워를 하다 손끝에 멍울이 걸리는 순간 무너졌습니다. ‘초음파가 놓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다시 올라왔다고 합니다.
달력에 적힌 검사 일정을 두 가지로 나눠 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의사가 날짜를 정해 준 검사와, 불안해서 스스로 다시 잡은 검사입니다. 스스로 다시 잡은 검사가 점점 늘고 있다면, 몸의 증상만이 아니라 확인을 되풀이하게 만드는 불안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번 더 봅시다’ 한마디 뒤로
네 곳에서 들은 말 가운데 그분에게 가장 오래 남은 것은 ‘깨끗합니다’가 아니었습니다. 첫 병원에서 들은 “반년 뒤에 한 번 더 봅시다”였습니다. 의사에게는 흔히 하는 당부였겠지만, 그분에게는 괜찮다는 말도 위험하다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반년을 기다리지 못하고 두 번째 병원을 예약했습니다.
주변에서 권한 건강염려증 극복 방법은 대개 의사 말을 믿고 검색을 끊으라는 것이었습니다. 불안을 키우는 글에서 멀어지게 해 주는 조언입니다. 그분도 휴대전화에서 검색 앱을 지워 보았고, 아내의 권유로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도 받았습니다. 약을 먹으면서 밤에 깨는 날은 줄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손끝에 멍울이 걸리면 목부터 조여 왔고, 어느새 다른 병원의 예약 화면을 보고 있었습니다.
이런 반응은 결과지의 내용을 이해하는 것과 따로 움직입니다. ‘정상’이라는 글자를 머리로 받아들여도, 목이 조여 오는 순간에는 생각보다 손이 먼저 나갑니다. 확인하는 행동이 오랫동안 되풀이되었다면 ‘이번이 마지막 검사’라고 다짐해도 멈추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바닷물로 생긴 갈증은 바닷물을 한 모금 더 마신다고 가라앉지 않습니다. 그래서 최면상담에서는 결과지를 한 장 더 늘리는 대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치밀어 오를 때 목이 조여 오는 감각부터 살펴봅니다. 그리고 그 감각과 함께 되살아나는 오래된 경험을 찾아 그때의 불안을 다룹니다.
열이 오른 겨울 저녁의 두 대답
깊은 최면 상태에서, 그분은 대학병원 결과를 들은 날 저녁의 샤워기 아래를 떠올렸습니다. 손끝에 멍울이 걸리고 목이 조여 오던 순간이었습니다. 한동안 침을 삼키던 그분이 작게 말했습니다.
“이마가 뜨거워요. 이불을 둘렀는데, 이불이 너무 길어요.”
겨울 저녁의 안방입니다. 아직 ‘괜찮아’를 ‘갠차나’라고 말하는 남자아이가 이불을 둘둘 두른 채 아랫목에 앉아 있습니다. 이마에는 찬물에 적신 수건이 얹혀 있습니다. 엄마가 체온계를 들여다보다가 “또 올랐네” 하고 작게 말합니다.
할머니가 “애들 열은 올랐다 내렸다 하는 거다, 괜찮다” 하고 말합니다. 엄마는 “밤에 더 오르면 어떡해요. 지금이라도 병원에 가 봐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하고 되묻습니다. 아빠는 두꺼운 전화번호부를 펼쳤다 덮었다 합니다. 아이는 세 어른의 얼굴을 번갈아 봅니다.
아이는 이마의 수건을 떨어뜨린 채 이불을 끌고 할머니 무릎 앞으로 갑니다. “할머니, 나 갠차나? 진짜 갠차나?” “그럼, 괜찮고말고.” 아이는 잠깐 숨을 내쉬지만, 엄마와 아빠가 목소리를 낮추자 다시 이불을 끌고 엄마에게 갑니다.
엄마에게도, 아빠에게도 이불 자락을 움켜쥔 채 같은 것을 묻습니다. 대답을 들으면 목이 잠깐 풀렸다가, 어른들의 말이 엇갈리면 다시 조여 와 침을 삼키기도 힘듭니다.
최면 속에서 그분은 아이가 아직 아랫목에 앉아 있던 때로 돌아가, 찬 수건 위로 아이의 이마에 손바닥을 가만히 얹었습니다. 그 손을 떼지 않은 채 천천히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열 나는 아이를 많이 봐서 괜찮다고 하는 거야. 엄마는 네가 걱정돼서 더 조심하는 거고, 아빠는 혹시 몰라서 밤에 문 여는 병원을 찾아보는 거야.”
잠시 뒤 한마디를 더 보탰습니다. “셋 다 말은 달라도 모두 너를 돌보고 있어. 누구 말이 맞는지 네가 정하지 않아도 돼.”
장면은 할머니의 “괜찮다”에서 다시 시작됐습니다. 엄마는 이번에도 병원 이야기를 꺼냈고, 아이도 전처럼 이불을 끌고 할머니와 엄마에게 가서 괜찮은지 물었습니다. 두 사람의 말은 여전히 달랐지만, 아이에게 엄마의 목소리는 더는 무섭게 들리지 않았습니다. 어른들의 말이 엇갈려도 목은 조여 오지 않았고, 침도 목구멍으로 수월하게 넘어갔다고 합니다.
그 저녁 아이는 한 사람의 ‘괜찮다’로는 마음을 놓지 못해, 여러 사람에게서 같은 대답을 몇 번씩 들어야 했습니다. 어른이 된 그분에게 ‘한 번 더 봅시다’는 그 저녁 어른들의 엇갈린 말처럼 아직 끝나지 않은 대답이었을 것입니다. 병원을 옮겨 다니며 괜찮다는 결과를 모은 모습도, 엇갈린 말 앞에서 목이 조여 오고 여러 사람에게 같은 것을 묻던 어린 날의 반응과 닮아 있었을 수 있습니다.
최면 중에는 한 사람의 설명만으로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여러 사람에게 같은 대답을 확인하며 긴장했던 다른 관련 경험들도 이어서 다뤘습니다. 어른이 된 자신은 설명이 조금 달라도 자신을 돌보려는 뜻은 같을 수 있고, 모든 사람에게서 똑같은 답을 받아야만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이해로 그때의 불안을 소화해 나갔습니다.
창고에서 꺼낸 텐트
반년 전에 잡아 둔 첫 병원의 재진 날은 가을 문턱에 돌아왔습니다. 의사는 초음파 화면을 보더니 크기가 그대로이니 따로 다시 올 필요는 없겠다고 했습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그분은 다른 병원의 예약 화면 대신 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번 토요일에 캠핑 가자.” 그날 저녁에는 베란다 창고 깊숙이 넣어 두었던 텐트를 꺼내 먼지를 털었다고 합니다.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던 날, 팩을 박느라 목덜미로 땀이 흘러내렸습니다. 땀을 닦던 손등이 귀밑을 스쳤지만, 그분은 멍울을 더듬어 찾지 않고 다시 망치를 들었습니다. 딸이 잠든 텐트 안에서 옆으로 누운 밤에는 귓속의 맥박 소리 대신 밖에서 우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며 잠들었다고 합니다.
결과지 네 장은 버리지 않고 서랍에 그대로 두었지만, 밤에 그 서랍을 여는 일은 없어졌다고 하셨습니다.
잠 못 드는 밤마다 서랍 속 결과지를 다시 꺼내 읽고 계신가요? 그 손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결과지에 적힌 내용보다, 확인하지 않으면 견디기 어려운 무의식 자동반응일지도 모릅니다. 필요한 진료는 그대로 받으면서 그 반응을 함께 다루면, 결과지를 서랍에 넣어 둔 채로도 밤을 보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