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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람이 세 번째 울리고서야 눈이 떠집니다. 암막 커튼 덕에 방은 충분히 어둡고, 목을 받쳐 준다는 베개도, 몸을 지그시 눌러 준다는 묵직한 이불도 제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일어나 앉는 순간 어깨는 돌덩이처럼 굳어 있고, 밤새 이를 악물었는지 턱이 뻐근합니다. 일곱 시간을 누워 있었는데, 몸은 밤샘 근무라도 마치고 온 듯합니다.
은행 일을 하시는 삼십 대 후반의 남성분이 그런 아침을 몇 년째 반복하다가 상담실을 찾으셨습니다. 답부터 드리면, 그 무거움은 숙면에 좋은 것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몸의 긴장이 밤에도 내려가지 않아서 생깁니다. 이 글은 그 긴장이 왜 풀리지 않는지, 그리고 어디에서 풀리는지를 다룹니다.
좋은 것을 더해도 몸은 밤새 깨어 있었습니다
그분은 숙면에 좋다는 것이라면 웬만한 것은 다 들여 본 분이었습니다. 경추 베개와 암막 커튼으로 시작해 묵직한 이불까지 장만했고, 자기 전에는 따뜻한 우유와 가벼운 스트레칭도 챙겼습니다. 잠드는 시간은 조금 빨라진 듯도 했지만 아침의 무게는 그대로였습니다. 수면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더하면 더할수록, 이만큼 했는데도 그대로라는 답답함만 쌓여 갔다고 하셨습니다.
단서는 오히려 그분의 몸에 있었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주먹이 쥐어져 있는 날이 많았고, 치과에서는 자면서 이를 가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누워 있던 일곱 시간 동안 몸이 쉰 것이 아니라, 불 꺼진 방에서 보초를 서고 있었다는 표시였습니다. 모자란 것은 잠의 양이 아니라 잠의 깊이였던 셈입니다.
어떤 몸은 힘을 빼는 순간을 위험으로 배웠습니다
잠에는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을 갖추느냐보다 먼저, 몸의 각성이 내려가고 긴장이 풀려야 잠의 문이 열립니다. 그런데 자리에 누워 몸이 풀어지려는 바로 그 순간을 위험으로 받아들이도록 학습된 분들이 있습니다. 심리학이 조건화라고 부르는 이 학습이 한번 자리 잡으면, 이완으로 넘어가는 길목마다 몸 안쪽에서 경보가 울립니다. 따뜻한 우유와 좋은 침구 같은 바깥의 처방으로는 이렇게 새겨진 연결이 지워지지 않습니다.
꽉 쥔 주먹을 떠올려 보시면 이해가 빠릅니다. 그 손에 아무리 좋은 것을 쥐여 주려 해도, 손가락이 펴지지 않으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좋은 베개와 어두운 방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잠을 거드는 것들이지만, 손이 펴진 뒤에야 비로소 손안에 들어옵니다. 주먹을 쥐게 만든 힘이 안에서 풀리지 않는 한, 바깥에서 더하는 것들은 손등 위에 머물 뿐입니다.
의지로는 끌 수 없는 경보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안쪽의 힘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문제는 이 경보가 스스로의 결심이 닿지 않는 곳에서 울린다는 점입니다. 머리는 이제 자도 된다고 말하는데 몸이 듣지 않는다면, 그 학습은 의식이 아니라 무의식 쪽에 새겨져 있다는 뜻입니다. 최면상담은 바로 그 자리로 내려가, 몸이 언제부터 풀어지기를 두려워하게 되었는지 그 출발점을 찾아 다루는 작업입니다.
최면 속에서 다시 만난 가게 한켠의 아이
최면이 깊어지자, 그분은 몸에 늘 걸려 있던 그 팽팽함을 따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단 한 번도 떠올려 본 적 없다던 장면 하나에 닿았습니다.
말을 막 배우던 무렵이었을까요. 부모님이 작은 식당을 하던 집이었습니다. 아이는 점심 장사가 끝난 가게 한켠에서 자주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의자에 늘어지거나 깜빡 졸기라도 하면, 어김없이 날카로운 호통과 함께 몸이 번쩍 들어 올려졌습니다. 끓는 솥과 뜨거운 국물이 오가는 좁은 가게에서, 풀어져 있는 아이는 어머니 눈에 곧 사고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호통은 아이를 지키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었지만, 말을 갓 배운 아이의 몸에는 전혀 다른 문장으로 새겨졌습니다. 몸에서 힘을 빼는 순간 무서운 일이 벌어진다는 것, 그러니 졸음이 와도 끝까지 정신을 붙들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가게도 호통도 수십 년 전에 사라졌지만, 그 문장은 지워지지 않은 채 밤마다 일했습니다. 좋은 침구 속에서도 그분의 몸이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었던 이유입니다.
그 장면 앞에서 그분은 이제 어른의 키로 서서, 가게 한켠의 아이와 어머니를 가만히 바라보았습니다. 호통 너머에 있던 어머니의 겁먹은 눈도 그제야 보였습니다. 그분은 아이에게 나직이 들려주었습니다. 그 호통은 미움이 아니었다고, 이제는 몸에서 힘을 빼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다고. 그러자 잔뜩 솟아 있던 아이의 작은 어깨가 눈에 보일 만큼 내려앉았습니다.
몇 주 뒤, 잠의 깊이가 달라졌습니다
몇 주가 지나, 상담실에 함께 온 아내분이 먼저 말을 꺼냈습니다. 요즘은 밤에 이 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고, 옆에서 뒤척이는 기척도 줄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분의 아침도 달라져 있었습니다. 알람 한 번에 눈이 떠진 날, 일어나 앉았는데 턱이 부드럽고 어깨가 가벼워서 오히려 낯설었다고 하셨습니다. 누워 있는 시간은 그대로인데, 그 시간의 깊이가 달라진 것입니다.
사람마다 속도는 다르지만, 이렇게 몸의 경계가 풀리기 시작하면 한 달 안팎의 과정을 지나는 동안 아침이 가벼워졌다는 말씀을 듣곤 합니다.
그러니 좋다는 것을 다 모았는데도 아침이 무겁다면, 한 가지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잠들 무렵 몸이 스르르 풀리려는 순간, 오히려 흠칫 정신이 들며 깨어 버리는 일이 잦지 않으신가요. 혹은 일어날 때마다 턱이나 어깨가 뻐근하지는 않으신가요. 그렇다면 모자란 것은 물건이 아니라, 긴장을 내려놓아도 안전하다는 몸의 믿음일 수 있습니다.
숙면은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몸에게 허락받는 것입니다. 침실에 다음 물건을 들이기 전에, 그 허락이 왜 떨어지지 않는지부터 들여다보시기를 권합니다. 풀리지 않던 밤의 답은 물건들 사이가 아니라, 의지가 닿지 않던 몸의 기억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