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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표 호출음이 ‘띵동’ 하고 울릴 때마다 귓속이 쨍해요. 천장 조명은 눈을 찌르고, 손님의 향수 냄새가 훅 들어오면 속이 울렁거려요. 오후 세 시쯤이면 관자놀이가 조여 와서, 마감하고 나면 불 꺼진 탕비실에서 한참 눈을 감고 있어야 해요.”
은행 창구에서 팔 년째 일하는 서른네 살 여성분의 이야기입니다. 출근길에는 흐린 날에도 선글라스를 썼고, 집에서는 커튼을 친 채 귀마개를 끼고 지냈습니다. 세제와 샴푸도 향이 없는 제품으로 바꾼 지 오래였습니다. 주말에 마트에 가면 장바구니를 반도 채우지 못하고 나와, 주차장 차 안에서 두 손으로 눈을 덮은 채 앉아 있었다고 합니다.
주변에서는 “너무 예민하다”, “조금만 참으면 익숙해진다”고 했습니다. 본인도 성격이 까다로운 탓이라 여기며 참아 보았지요. 하지만 조명과 소리, 냄새가 한꺼번에 몰려오는 오후에는 더 버틸 힘이 남지 않았습니다. 이비인후과에서 받은 청력 검사는 정상이었습니다.
감각 예민 증상이 갑자기 생겼거나 일상생활이 눈에 띄게 어려워졌다면, 신경과·이비인후과·정신건강의학과 등에서 원인을 살피는 일이 우선입니다. 이 글에서는 그런 진료를 받은 뒤에도 여러 감각이 한꺼번에 힘들었던 분을 따라가 봅니다.
빛에 예민하고 소리와 냄새에도 민감해 여러 감각이 함께 힘든 상태를 흔히 감각과민이라고 부릅니다. 같은 호출음도 어떤 날에는 견딜 만한데, 어떤 날에는 왜 이렇게 힘들어질까요?
한꺼번에 부으면 넘치는 깔때기
빛과 소리, 냄새가 한꺼번에 밀려들어 감당하기 어려워지면 몸이 지치고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집니다. 이런 상태를 ‘감각 과부하’라고 합니다. 같은 소리도 사람에 따라 더 크고 날카롭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좁은 깔때기에 물을 붓는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조금씩 부으면 잘 빠져나가지만, 한꺼번에 쏟아부으면 차올라 넘칩니다. 그분도 호출음 하나나 조명 하나는 견딜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소리와 빛, 냄새가 동시에 밀려드는 오후에는 한계에 닿았습니다.
긴장이 높은 날에는 거슬리는 자극에 주의가 쏠려 좀처럼 다른 데로 옮겨지지 않기도 합니다. 호출음이 한번 신경 쓰이면 다음 소리가 언제 울릴지 기다리게 되고, 기다리는 동안 몸은 더 굳습니다.
같은 호출음인데 날마다 다르게 들렸다
그분에게 한 주 동안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적어 보시라고 했습니다. 메모를 보니 손님이 드문 화요일 오전에는 호출음이 들려도 견딜 만했습니다. 잠깐 탕비실에 다녀올 틈도 있었고요. 반면 월말 마감 날, 대기 번호가 서른 개씩 밀려 있을 때는 같은 소리가 귀를 찌르는 듯했다고 합니다.
같은 호출음이어도 다른 자극이 겹치고 창구를 떠날 틈이 없는 날에는 훨씬 괴로웠습니다. 그럴수록 어깨가 먼저 안으로 말리고, 자신도 모르게 숨을 참고 있었습니다. 어떤 때 감각과민이 심해지는지 알아보려면 무엇이 힘들었는지뿐 아니라, 잠시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있었는지도 함께 적어 볼 만합니다.
귀마개와 선글라스, 향 없는 생활용품은 자극을 줄여 줍니다. 그분도 집에서는 이런 방법으로 조금 숨을 돌릴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창구에서는 귀마개를 낄 수 없었습니다. 자극이 몰릴 때 몸이 먼저 움츠러드는 것도 그대로였고요.
“소리가 크다는 건 저도 알아요. 그런데 호출음이 울리기도 전에 제 몸이 먼저 웅크려요.”
최면상담의 목표는 타고난 감각을 무디게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자극이 겹칠 때 숨을 참고 몸을 마는 반응은 ‘괜찮다’고 되뇌기도 전에 일어났습니다. 상담에서는 그때 몸이 어떻게 긴장하는지 살피고, 그 느낌과 이어져 떠오르는 오래전 경험과 감정도 함께 살펴봤습니다.
신발장 옆에서 귀를 막은 아이
깊은 최면에 든 그분에게 월말 마감 날 창구 앞에 앉아 있던 순간을 다시 떠올려 보게 했습니다. 어깨가 안으로 말리고 숨이 멎는 느낌에 머물던 중, 그분이 작게 말했습니다. “밥 냄새가 나요. 텔레비전 소리도요. 너무 시끄러운데 갈 데가 없어요.”
말이 아직 짧던 여자아이가 좁은 집에 있습니다. 부엌과 방 사이에 문이 없어 저녁때면 소리와 냄새가 뒤섞입니다. 엄마는 도마 위에서 칼질을 하다가 믹서기를 돌리고, 아빠는 뉴스 소리를 크게 틀어 놓습니다. 생선 굽는 냄새가 방 안에 퍼지고, 천장의 형광등은 눈이 부실 만큼 환합니다.
아이는 두 손으로 귀를 막고 눈을 찡그린 채 방을 가로질러 현관 신발장 옆으로 갑니다. 차가운 타일 바닥에 쪼그려 앉아도 믹서기와 뉴스 소리는 들립니다. 어깨를 잔뜩 말고 숨을 참으며 저녁이 끝나기를 기다립니다. 곧 엄마가 “거기서 뭐 해, 밥 먹자” 하고 부릅니다.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신발장 옆에 쪼그린 어린 자신에게 다가갔습니다. 아이가 귀를 막은 채 듣고 있을 때 조용히 말했습니다.
“여기까지 잘 왔어. 너한테는 소리도 불빛도 냄새도 아주 세게 느껴지지. 저건 엄마가 저녁 만드는 소리고, 아빠가 뉴스 보는 소리야. 무서운 일이 생긴 건 아니야. 밥상을 치우고 나면 다시 조용해져.”
그분은 믹서기가 돌던 그 저녁을 다시 겪었습니다. 소리와 냄새는 그대로였고, 아이도 다시 귀를 막고 신발장 옆으로 갔습니다. 달라진 것은 몸의 반응이었습니다. 참고 있던 숨이 조금씩 드나들고, 말렸던 어깨에서도 힘이 빠졌다고 합니다. 엄마가 밥 먹자고 부를 무렵에는 믹서기 소리가 ‘저녁 준비가 곧 끝나는 소리’로 들렸다고 하셨습니다.
그 저녁이 그분의 예민한 감각을 만든 것은 아닙니다. 소리와 냄새가 한꺼번에 몰리고 피할 곳이 없을 때 숨을 참고 몸을 말아 버티던 모습은, 창구를 떠날 수 없는 마감 날의 반응과 닮아 있었습니다. 여러 자극에 긴장까지 겹친 날에는 같은 호출음도 더욱 견디기 힘들었습니다.
신발장 장면 뒤에는 자극을 피할 곳이 없다고 느껴 숨을 참고 몸을 말았던 관련 경험들도 이어서 살폈습니다. 소리와 빛을 강하게 느끼더라도 몸을 끝까지 굳힌 채 버틸 필요는 없다는 이해로, 그때의 긴장을 정리해 나갔습니다.
호출음이 울려도 창구를 지킨 마감 날
상담 뒤 맞은 월말 마감 날에도 대기 번호가 서른 개 넘게 밀렸고, 호출음과 조명, 손님의 향수 냄새도 여전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어깨가 말려 오는 것을 느끼자 숨을 한 번 길게 내쉬고 다음 손님의 통장을 받았습니다. 마감을 마친 뒤에는 불 꺼진 탕비실에 들르지 않고 동료와 함께 퇴근했습니다.
며칠 뒤에는 오래 망설이던 말도 꺼냈습니다. 팀장에게 호출음 소리를 한 칸만 줄여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팀장은 바로 음량을 낮춰 주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두통이 올 때까지 말없이 참았을 일이었습니다.
다음 달에는 이 년 동안 핑계를 대며 빠졌던 동창 모임에도 나갔습니다. 고깃집은 연기와 웃음소리로 가득했고, 중간에 한 번 밖으로 나가 오 분쯤 바람을 쐬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들어가 모임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다고 합니다.
퇴근길마다 이어폰부터 꽂고, 집에 오면 불을 끄고 누워야 겨우 하루가 끝나는 분이라면 그 예민함을 성격 탓으로만 돌리지 않으셔도 됩니다. 감각을 받아들이는 정도에는 개인차가 있습니다. 자극이 몰릴 때 숨을 참고 몸을 마는 반응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분은 그 반응을 다루면서 피하던 자리에 다시 머무는 경험을 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