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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 먹고 자리에 앉으면 옆자리 동료가 아몬드를 꺼내 씹어요. 아작, 아작. 그 소리가 들리면 귀 뒤부터 목덜미까지 확 뜨거워지고 명치가 딱딱하게 굳어요. 모니터 속 도면이 하나도 눈에 안 들어오고, 속으로 ‘제발 그만’만 외치다가 결국 서류를 들고 복도로 나가 버려요.”
건축설계사무소에서 도면을 그리는 서른여덟 살 남성분이 첫 상담에서 꺼낸 이야기입니다. 그 동료는 일도 잘 가르쳐 주고 성격도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괴로웠다고 합니다. 아무 잘못도 없는 사람에게 속으로 화를 내는 자신이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집에서도 비슷했습니다. 저녁 식탁에서 아내가 깍두기를 씹으면 숟가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어느 때부터는 밥을 먹으며 한쪽 귀에 이어폰을 꽂았고, 설거지를 핑계로 먼저 일어나 개수대 앞에 섰습니다. 아내가 서운해하는 줄 알면서도 자리에 계속 앉아 있기가 어려웠습니다.
그분은 검색창에 ‘씹는 소리 싫음’, ‘소리 예민’을 넣어 보다가 미소포니아라는 말을 처음 알았습니다. 씹는 소리나 볼펜을 딸깍거리는 소리처럼 특정한 소리에 분노나 혐오감, 긴장이 강하게 일어나는 경험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이름을 알고 조금은 마음이 놓였지만, 한 가지는 여전히 궁금했습니다. 왜 큰 소음은 견딜 만한데 이런 작은 소리 앞에서는 자리를 피하게 될까요?
공사장 드릴 소리는 견디는데
그분은 스스로 소음에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돌아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 창밖에서 공사장 드릴이 울려도 일은 그럭저럭 할 수 있었고, 퇴근길 지하철의 쇳소리도 견딜 만했습니다. 견디기 어려운 것은 오히려 조용한 사무실에서 들리는 작은 씹는 소리, 옆자리에서 볼펜을 딸깍거리는 소리였습니다.
주변 소리가 모두 지나치게 크게 들리는 것과 특정한 소리에만 강하게 반응하는 것은 다릅니다. 공사장 앞보다 조용한 사무실에서 오히려 더 괴로웠던 그분의 경우, 문제는 소리의 크기만으로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시끄러운 식당에서도 내 이름은 들린다
그분은 씹는 소리를 듣자마자 목덜미가 뜨거워지고 화가 올라왔습니다. 소리가 다시 들릴까 신경 쓰다 보면 도면에 집중하기도 어려웠습니다. 불쾌했던 소리에 자꾸 주의가 쏠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소리가 나기 전부터 몸이 굳을 때도 있었습니다.
사람들로 붐비는 식당에서도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면 고개가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많은 소리 사이에서 자신에게 중요한 소리를 골라 듣는 것입니다. 그분에게는 사무실의 작은 씹는 소리가 유독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조용할수록 그 소리가 다시 날까 신경 쓰였고, 들리는 순간 목덜미가 달아올랐습니다.
알아도 먼저 치미는 화
그분도 해 볼 수 있는 방법은 다 해 보았습니다. 소음을 줄여 주는 이어폰을 사서 끼고, 사무실에서 백색소음을 틀어 두었습니다. 소리가 덜 들리니 오후를 버티는 데는 도움이 됐습니다. 하지만 회의처럼 이어폰을 뺄 수밖에 없는 시간이 오면, 귀는 여전히 그 소리부터 찾아냈습니다.
“동료가 일부러 그러는 것도 아니잖아요. 그걸 뻔히 아니까 화내는 제가 더 싫어요.”
씹는 소리가 들리면 ‘그냥 넘기자’고 생각하기도 전에 목덜미가 달아올랐습니다. 그래서 상담에서는 소리를 없애려 하기보다, 바로 그 순간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에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그 느낌을 따라가며 떠오른 어린 시절의 경험과 당시의 마음을 함께 살펴봤습니다.
방울이 울리자 안방 문부터 본 아이
최면 속에서 그분은 아몬드 씹는 소리를 들을 때 목덜미가 뜨거워지던 느낌에 집중했습니다. 잠시 뒤 “쉬잇”이라는 작은 소리가 입에서 나왔습니다. 그분은 엄마가 안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장면이 떠올랐다고 했습니다.
문고리에 손이 겨우 닿던 무렵의 남자아이가 거실에 앉아 있습니다. 안방에는 몸이 약한 엄마가 이불을 덮고 누워 있고, 외할머니가 손가락을 입술에 대며 말합니다. “쉿, 엄마 깨면 안 돼.” 아이는 방울 달린 오뚝이를 무릎에 올려놓고, 방울을 손바닥으로 감싼 채 놉니다.
그러다 오뚝이가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부딪혔고, 방울이 딸랑 울립니다. 아이는 숨을 멈추고 안방 문부터 봅니다. 얼굴이 화끈 달아오르고 작은 주먹에 힘이 들어갑니다. 방에서 아무 기척이 없는데도 오뚝이를 품에 안고 방울을 더 세게 감쌉니다.
그날 오후 내내 아이는 집 안의 소리를 살피며 지냈습니다. 화장실에 갈 때는 미닫이문을 몸이 겨우 빠져나갈 만큼만 밀었고, 거실을 지날 때는 까치발로 걸었습니다. 어디선가 작은 소리가 나면 놀이를 멈추고 안방 문을 쳐다보았습니다. 엄마가 어디가 아팠는지는 최면 속에서도 끝내 떠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분은 최면 속에서 오뚝이를 끌어안은 아이 곁에 앉아, 그때 아이가 몰랐던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방울 소리 한 번에 엄마가 더 아파지지는 않아. 엄마는 몸이 약해서 잠이 필요한 거야. 집 안 소리를 다 막는 건 네가 할 일이 아니야. 옆에 할머니가 계셔.”
그 말을 건넨 다음, 그분은 같은 오후를 처음부터 다시 겪었습니다. 오뚝이가 바닥에 부딪혀 방울이 울렸고, 아이는 그때와 똑같이 안방 문을 쳐다보며 방울을 감싸 쥐었습니다. 달라진 것은 아이의 몸이었습니다. 멈췄던 숨이 곧 다시 이어졌고, 화끈하던 얼굴은 금세 식었으며, 주먹을 쥔 손가락 사이에도 틈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 오후가 미소포니아의 원인이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작은 소리가 나면 몸이 굳고 어떻게든 소리를 막으려 했던 아이의 반응은, 지금 그분이 겪는 어려움과 닮아 있었습니다. 상담에서는 그 장면을 떠올리며 소리가 들린 직후 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봤습니다.
오뚝이 장면과 함께, 작은 소리가 나면 자신이 막아야 한다고 긴장했던 관련 경험들도 이어서 다뤘습니다. 모든 소리를 통제할 책임이 자신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는 이해로, 남아 있던 경계와 화를 차근차근 소화해 나갔습니다.
이어폰을 빼 둔 저녁 식탁
상담 뒤 어느 저녁, 그분은 식탁에 앉기 전 이어폰을 서랍에 넣어 두었습니다. 아내가 깍두기를 씹는 소리가 들리자 숟가락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가려다 이내 풀렸습니다. 그날은 설거지를 핑계로 먼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밥그릇이 빌 때까지 앉아 있다가, 이번 주말에 영화관에 가 보자고 먼저 말을 꺼냈다고 합니다. 팝콘 씹는 소리가 걱정돼 결혼한 뒤로 한 번도 함께 가지 못한 곳이었습니다.
사무실에서도 옆자리 아몬드 봉지가 다시 부스럭거렸습니다. 목덜미가 잠깐 뜨거워졌지만 그분은 서류를 들고 복도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그리던 도면에 치수를 끝까지 적어 넣었고, 동료가 봉지를 내밀자 한 알 받아 들었습니다.
오늘도 누군가의 씹는 소리 때문에 자리를 피하셨나요? 그때 귀가 어디로 쏠리고 몸에서 무엇이 먼저 일어나는지 살펴보셔도 좋습니다. 이 사례에서 그분은 이어폰 없이 저녁 식탁에 머물고, 사무실에서도 하던 일을 이어 갔습니다. 자신을 탓하며 견디기만 하던 때와 달라진 일상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