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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님이 도면을 돌려주시면서 ‘여기 치수 하나만 다시 봐 줘요’ 하셨어요. 그 한마디였어요. 그런데 그 말이 밤 열한 시까지 가요. 퇴근 버스에서도 명치가 눌려 있고, 씻는 동안에도 그 목소리가 들려요.”
건축설계사무소에서 도면을 그리는 마흔두 살 남성분이 처음 상담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치수는 십 분 만에 고쳤습니다. 과장도 그 뒤로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몸의 긴장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뒷목이 뻣뻣하게 당겼고, 손끝은 저녁까지 차가웠다고 합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과장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습니다. 말투가 평소보다 딱딱했는지, 표정이 어땠는지를 몇 번이고 되짚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또 다른 작은 일이 생기면, 전날의 긴장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몸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주변에서는 스트레스에 약한 사람이라서, 마음이 여려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본인도 원래 쉽게 긴장하는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고 여겼습니다. 이 글에서는 스트레스에 예민한 사람이 작은 일 뒤에 왜 오래 긴장하는지, 그 반응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살펴봅니다.
일의 크기보다 풀리는 데 걸리는 시간
상담 첫 주에 그분께 기록 하나를 부탁드렸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와 함께, 일이 끝난 뒤 뒷목과 명치가 편해지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적어 달라고 했습니다.
적어 온 메모를 보니 긴장을 부른 일은 대부분 사소했습니다. 현장 소장이 목소리를 높인 전화 한 통, 동료가 짧게 보낸 답장, 과장의 한마디 같은 것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풀리는 데는 짧게는 서너 시간, 길게는 다음 날 아침까지 걸렸습니다.
스트레스 반응을 살필 때 이 차이를 보면 도움이 됩니다. 긴장이 얼마나 크게 올라오는지뿐 아니라 일이 지나간 뒤 얼마나 오래 남는지도 살펴볼 만합니다. 긴장은 누구에게나 올라오지만, 사소한 일 뒤에도 매번 밤까지 남는다면 따로 살펴볼 만합니다.
톡 건드린 스노볼이 가라앉기까지
이런 상태를 설명할 때 ‘과각성’이라는 말을 씁니다. 몸과 마음이 위험에 대비해 긴장한 상태를 각성이라고 합니다. 과각성은 주변을 경계하며 긴장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 상태를 가리킬 때 쓰는 말입니다. 평소 긴장이 높으면 작은 일에도 몸이 먼저 반응하고, 일이 끝난 뒤에도 한동안 가라앉지 않을 수 있습니다.
책상 위에 놓인 스노볼을 떠올려 보세요. 손가락으로 톡 건드리기만 해도 안의 눈가루가 한참 동안 떠다닙니다. 눈가루가 다 가라앉기 전에 또 건드리면 유리 안은 하루 종일 뿌옇습니다. 과장의 말투를 되짚을 때마다 그분의 긴장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수영장에서만 풀리던 어깨
그분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습니다. 퇴근 뒤에는 동네 수영장에 다녔고, 잠들기 전에는 호흡 앱을 켰습니다. 긴장될 때마다 ‘별일 아니야’라고 속으로 되뇌기도 했습니다.
물속에 있는 한 시간 동안은 어깨가 내려갔습니다. 그분에게 운동과 호흡 연습은 잠시 긴장을 덜어 주었습니다. 다만 다음 날 과장이 도면을 들고 다가오면 명치는 전과 똑같이 눌렸습니다.
“별일 아니라는 거, 머리로는 알아요. 근데 몸이 그 말을 안 들어요.”
머리로 별일 아니라고 판단해도 몸은 따로 움직입니다. 긴장을 풀어도 되는 순간을 오래전부터 다른 사람의 표정으로 판단해 왔다면, 머리로 내린 판단만으로 몸이 곧바로 편해지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긴장이 오래 남을 때의 몸 느낌을 따라가며, 그 느낌과 이어지는 경험과 감정을 살핍니다. 그분과의 상담도 일이 끝났는데 명치가 계속 눌려 있는 그 느낌에서 시작했습니다.
과장님과는 상관없는 냄새
깊은 최면 상태에서 그분은 한 손을 명치에 얹은 채 그 눌리는 느낌에만 집중했습니다. 잠시 뒤 그분이 꺼낸 말은 “보리차 냄새가 나요”였습니다. 조금 뒤에는 의아한 듯 덧붙였습니다. “이게 왜 떠오르죠? 과장님이랑은 아무 상관이 없는데.”
식탁 의자에 올라가려면 아직 발판을 밟아야 하던 무렵의 부엌입니다. 남자아이가 주전자를 두 손으로 들고 자기 컵에 보리차를 따릅니다. 주전자 주둥이가 흔들리면서 식탁 위로 보리차가 조금 흘러넘칩니다.
어머니는 행주를 가져와 말없이 닦습니다. 큰소리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날 저녁 내내 어머니는 입을 다물고, 얼굴은 굳어 있습니다. 설거지하는 그릇 소리도 평소보다 조금 큽니다.
아이는 거실 바닥에 그림책을 펼쳐 놓고도 책장을 넘기지 않습니다. 부엌 쪽에서 어머니가 나올 때마다 고개를 들어 얼굴을 봅니다. 어머니의 얼굴이 여전히 굳어 있으면 발가락을 오므린 채 다시 그림책을 내려다봅니다. 보리차는 벌써 다 닦였는데, 아이는 잠들 때까지 어머니의 얼굴을 살핍니다.
최면 속의 그분은 부엌 문간에 서서 그림책 앞의 아이를 한동안 지켜보았습니다. 아이가 또 고개를 들자 그분은 그림책 앞까지 걸어가 무릎을 굽히고, 엄마 얼굴이 언제 풀릴지 몰라 계속 올려다보느라 힘들었겠다고 먼저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때의 아이가 알 수 없었던 사실을 짧게 전했습니다.
“보리차는 벌써 다 닦였어. 네가 흘린 일은 그걸로 끝났어. 엄마 얼굴이 아직 굳어 있어도 네 몸은 먼저 쉬어도 돼.”
보리차가 식탁에 번지는 순간부터 그 저녁이 처음처럼 흘러갔습니다. 어머니는 그날처럼 말없이 행주질을 했고, 아이는 어머니가 부엌에서 나올 때마다 고개를 들었습니다. 어머니 얼굴은 여전히 굳어 있었지만, 고개를 내린 아이의 발가락이 조금씩 펴지고 숨이 한결 길어졌다고 합니다.
그 순간 명치 위에 얹혀 있던 그분의 손이 무릎으로 내려왔습니다. 어머니가 그날 왜 그렇게 오래 말이 없었는지는 끝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어린 그분은 보리차가 다 닦인 뒤에도 어머니의 얼굴이 풀려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었습니다. 치수는 십 분 만에 고쳤어도, 그분의 몸은 과장의 말투와 표정에서 괜찮다는 신호를 찾을 때까지 밤늦도록 긴장을 놓지 못했습니다.
보리차 장면을 다룬 뒤에도, 일이 끝나도 상대의 표정이 풀릴 때까지 긴장을 놓지 못했던 관련 경험들을 이어서 돌아봤습니다. 이미 끝난 일을 계속 붙잡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몸은 먼저 쉬어도 된다는 이해로, 남은 긴장을 소화해 나갔습니다.
신입 사원에게 건넨 한마디
화요일 오후, 과장이 도면을 들고 와 문 폭 하나를 다시 확인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분은 숫자를 고쳐 저장하고 다음 도면을 열었다고 합니다. 그날 저녁에는 씻는 동안 과장의 목소리 대신 물소리만 들렸다고 합니다.
며칠 뒤에는 신입 사원이 도면 번호를 잘못 매겨 과장에게 한마디를 들었다고 합니다. 신입이 휴게실에서 눈시울을 붉히고 있자, 그분이 다가가 “고쳤으면 끝난 거예요. 밥 먹으러 가요” 하고 함께 회사 앞 식당으로 내려갔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 한마디를 제 일처럼 곱씹었을 텐데, 이번에는 신입의 등을 두드려 줄 여유가 있었습니다.
요즘은 퇴근 버스에서 좋아하는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고 합니다. 과장의 목소리를 되감는 대신 진행자가 들려주는 사연에 귀를 기울인다고 하셨습니다.
작은 일은 누구에게나 생기고, 그 순간 긴장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일이 끝난 뒤에도 긴장이 밤까지 남는다면, 무엇을 기다리느라 몸에 힘을 주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를 떠올려 보세요. 가장 마음에 걸렸던 일은 이미 끝났는데, 뒷목과 속은 아직 풀리지 않았나요? 그럴 때는 마음을 다잡으려 애쓰는 동안에도 무엇이 긴장을 오래 붙잡는지 돌아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