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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비인후과에서 귀 검사를 두 번 받았고, 뇌 사진도 찍었어요. 다 정상이래요. 그런데 저는 지금도 바닥이 오른쪽으로 슬쩍 기우는 것 같아요. 머리는 몸 위로 한 뼘쯤 떠 있고요.”
물류회사에서 배차를 맡는 서른여덟 살 여성분이 첫 상담에서 하신 말입니다. 처음 어지럼을 느낀 날도 사무실에 있었습니다. 그날 오후에만 출고 순서가 세 번이나 바뀌었고, 기사님들 전화가 한꺼번에 몰렸습니다. 통화하며 배차표를 고치던 중 바닥이 스르르 기우는 것 같아 책상 모서리를 붙잡고 한참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 뒤 계단을 내려갈 때마다 난간부터 찾았습니다. 마트의 긴 진열대 사이에서는 선반이 자신 쪽으로 쏠려 오는 것 같아 카트 손잡이에 기댔습니다. 쓰러진 적은 없지만, 언제 또 어지러울지 몰라 가방에는 늘 사탕과 물을 넣고 다녔다고 합니다.
검사에서 뚜렷한 이상이 나오지 않아도 어지럼이 이어지고 몸이 붕 뜨는 느낌이 들 수 있습니다. 불안과 긴장이 어지럼을 키우는 경우도 있지만, 검사 결과만으로 심인성 어지럼증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어지럼은 귀와 뇌뿐 아니라 심장이나 혈압 등 여러 원인과 관련될 수 있어 먼저 진료로 확인해야 합니다. 말이 어눌해지거나 한쪽 팔다리에 힘이 빠질 때, 물체가 둘로 보이거나 갑자기 귀가 잘 들리지 않을 때는 바로 진료를 받아야 합니다. 처음 겪는 심한 어지럼이나 정신을 잃을 듯한 느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이런 신호 없이, 필요한 검사를 모두 마친 뒤에 상담을 찾으셨습니다.
카메라를 당길수록 커지는 흔들림
그분처럼 어지럼을 느낀 뒤 몸의 흔들림에 온 신경이 쏠릴 때가 있습니다. 불안하면 숨이 얕고 빨라지고 몸에 힘이 들어가, 평소에는 지나쳤을 감각도 더 크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작은 흔들림을 위험한 신호로 받아들일수록 불안해지고, 불안해질수록 다시 몸을 살피게 되는 것입니다.
스마트폰 카메라로 멀리 있는 간판을 크게 당겨 찍으면 손을 평소처럼 들고 있어도 화면 속 간판이 출렁입니다. 화면을 확대할수록 작은 떨림까지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분도 몸의 작은 흔들림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루 종일 감각을 살폈습니다.
상담에서 어지럼이 심했던 날을 짚어 보니 출고 순서가 거듭 뒤집히거나 기사님 도착 시각이 밀리는 등, 다음 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날이었습니다. 반면 정해진 순서대로 일이 흘러간 날에는 같은 사무실에서 일해도 괜찮았다고 합니다.
어지럼이 심해지는 때와 그때 하던 일을 적어 두면 진료나 상담에서 증상을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누울 때나 고개를 돌릴 때처럼 특정 자세에서 반복된다면 의료진과 몸의 원인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세와 관계없이 기다리거나 일이 몰리는 날 더 심해진다면 불안이 어지럼에 미치는 영향도 함께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런 기록만으로 원인을 진단할 수는 없습니다.
“어지럽지 말자”고 버틸수록
병원에서 받은 어지럼 약은 심한 날 증상을 누그러뜨리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합니다. 권유받은 균형 운동도 해 보았습니다. 그래도 전화벨이 몰리면 약을 꺼내기도 전에 ‘또 오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부터 들었습니다.
그럴 때면 똑바로 서 있는지 확인하려고 발에 힘을 주고 시선을 한곳에 고정한 채 버텼습니다. 몸을 계속 확인할수록 작은 흔들림까지 더 뚜렷하게 느껴졌습니다.
“어지럽지 말자”고 마음먹어도 숨이 가빠지고 몸에 신경이 쏠리는 반응은 금세 시작됐다고 합니다. 최면상담에서는 그때의 느낌을 실마리로, 불안과 함께 떠오르는 경험을 살펴봅니다. 그분과도 필요한 진료를 이어 가면서 몸의 흔들림을 계속 확인하게 되는 마음을 다뤘습니다.
“엄마 언제 와?”
최면 상태에서 그분은 머리가 몸 위로 떠오르는 듯한 느낌과 명치 아래 차오르는 초조함에 집중했습니다. 잠시 뒤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습니다. “시골집이에요. 제가 대문에 매달려 있어요.”
낮잠을 거르면 저녁까지 칭얼대던 무렵입니다. 엄마는 아이를 먼 친척 할머니 댁에 맡기며 “금방 올게” 하고 나갔습니다. 처음 보는 할머니는 다정했지만, 아이는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마루 끝에 서 있었습니다.
“엄마 언제 와?” 아이가 물을 때마다 할머니의 대답은 달라졌습니다. 처음에는 밥을 먹고 나면 온다고 했습니다. 밥을 먹자 낮잠을 잔 뒤에, 낮잠에서 깨자 해가 지면 온다고 했습니다. 해가 지자 “조금만 더 있어 봐” 하고 부엌으로 들어갔습니다.
아이는 장난감을 쥐었다가 다시 내려놓았습니다. 문설주를 붙든 채 골목 끝을 내다보고, 할머니가 부엌에서 나올 때마다 얼굴부터 올려다봤습니다. 할머니가 깔아 준 방석에도 끝내 앉지 못했습니다.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대문 앞 아이와 함께 골목을 내다보았습니다. “대답이 자꾸 바뀌어서 어디에 있어야 할지 몰랐지.” 아이의 마음을 알아준 뒤, 할머니도 엄마가 언제 올지 정확히 몰라서 그렇게 말했을 거라고 전했습니다. 엄마가 이 집으로 돌아온다는 말도 해 주었습니다.
엄마가 “금방 올게” 하고 나간 그날을 다시 경험했습니다. 할머니의 대답은 이번에도 밥을 먹고 나서, 낮잠을 잔 뒤에, 해가 질 때로 미뤄졌습니다. 아이 역시 대문에 서서 골목을 내다봤습니다. 다만 문설주를 쥔 손에는 힘이 덜 들어갔고, 가슴의 두근거림이 잦아들면서 발밑의 흙바닥이 느껴졌다고 합니다. 상담실에서는 소파에 기댄 그분의 눈꺼풀 아래로 바쁘게 움직이던 눈동자도 조용해졌습니다. 엄마가 대문을 들어서는 모습은 끝까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날 아이는 엄마가 언제 올지 알 수 없어 골목과 할머니의 얼굴을 계속 살폈습니다. 배차 순서가 언제 바뀔지 모르는 날, 어른이 된 그분은 바깥 대신 몸의 작은 흔들림을 살피게 됐을 수 있습니다. 상담에서는 어지럼 자체의 원인을 그날에서 찾기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불안해지고 확인을 거듭하는 반응을 다뤘습니다.
최면 중에는 기다림이 길어지면 초조해지고 무엇이 달라졌는지 거듭 확인해야 했던 다른 경험들도 이어서 살폈습니다. 현재의 자신이 그때 알지 못했던 사정과 맥락을 알려 주고, 불확실한 순간에도 당장 답을 찾느라 몸을 붙들지 않아도 된다는 새로운 이해로 그 경험들을 소화하도록 도왔습니다.
배차표가 또 뒤집힌 오후
이후 배차표가 또 두 번 뒤집힌 오후가 있었다고 합니다. 기사님 세 분이 연달아 전화했고, 그분은 통화하면서 창고 쪽으로 걸어가 게시판의 배차표를 새로 고쳐 붙였습니다. 머리가 살짝 가벼워지는 느낌이 스쳤지만, 걸음을 멈춰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와 다음 전화를 받았다고 합니다.
어지럼이 시작된 뒤 한 번도 나가지 않았던 대학 동기 모임에도 다녀오셨다고 합니다. 식당이 지하상가 끝에 있어 예전 같으면 긴 통로가 두려워 핑계를 댔을 약속입니다. 이번에는 동기들과 통로를 걸으며 서로의 아이가 몇 학년이 됐는지 이야기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지하철역 계단을 동기와 나란히, 난간을 잡지 않고 내려왔다고 합니다.
계단은 예전과 같았지만, 그날은 내려가는 동안 몸의 흔들림을 계속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검사에서 뚜렷한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도 바닥이 기우는 느낌 때문에 계단과 약속을 피하고 계신다면, 필요한 진료를 이어 가면서 어지럼이 심해지는 상황과 그때의 불안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는 불확실한 상황에서 몸을 거듭 확인하던 반응을 다룬 뒤 피하던 곳에 다시 발을 디뎠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