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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움만 시작되면 제 목소리가 제 것 같지 않아요. 누가 제 입을 빌려 말하는 것 같고, 저는 천장쯤에서 그걸 내려다봐요. 다음 날 남자친구가 그러더라고요. 어젯밤 너 완전히 딴사람 같았다고요. 저 혹시 다중인격인가요?”
가구 매장에서 고객을 응대하는 서른한 살 여성분이 상담 게시판에 남긴 글입니다.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커지면 귀가 먼저 먹먹해졌습니다. 손끝이 차갑게 저리고, 발밑이 스펀지처럼 푹 꺼지는 듯했습니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낮고 딱딱한 말투로 차가운 말을 이어 갔다고 합니다.
남자친구에게 “딴사람 같았다”는 말을 들은 날 밤, 그분은 ‘다중인격’을 검색했습니다. 영화 속 장면들이 쏟아졌고, 관련 글을 읽을수록 더 무서워져 한동안 잠을 설쳤다고 합니다.
‘딴사람 같았다’는 말이 더 무서웠던 이유
‘다중인격’은 해리성 정체감 장애를 가리키던 옛 이름입니다. 구별되는 정체감 상태와 반복되는 기억 공백이 나타날 수 있지만, 자신을 멀리서 지켜보는 듯한 느낌만으로 판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분도 필요한 평가와 진료를 이어 가고 있었습니다. 상담에서는 병명을 다시 판단하기보다, 왜 다툼만 시작되면 귀가 먹먹해지고 자신이 멀어지는 반응이 되풀이되는지를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다툼이 끝나면 자신의 말이 낯설게 남았습니다
다툼이 끝나면 머리가 멍하고 온몸이 얻어맞은 듯 무거웠습니다. 휴대전화를 열어 보면 보낸 기억이 흐릿한 메시지가 남아 있기도 했습니다. 분명 자기 손으로 쓴 글인데, 쓰던 순간의 감정은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분이 알고 싶었던 것은 왜 다툼 때마다 자신의 말과 행동이 이렇게 멀어지는가였습니다.
붙잡으려 할수록 먼저 멀어지는 감각
다툼이 시작되면 그분은 이번에는 끝까지 정신을 붙잡자고 되뇌었습니다. 그러나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순간, 생각보다 먼저 귀가 먹먹해지고 자신의 목소리와 행동이 멀어졌습니다. 붙잡으려는 의지만으로는 막기 어려운 반응이었습니다.
충분히 깊은 최면상태에 들어간 뒤,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높아질 때 먼저 올라오는 두려움과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에 집중했습니다. 그 감정과 감각을 따라가자, 작은 꽃무늬 벽지가 보이는 어린 시절의 방이 연결되어 나타났습니다.
벽지의 꽃무늬만 보이던 방
“벽지가 보여요. 작은 꽃무늬가 줄지어 있어요.” 혼자 신발도 신지 못하던 무렵의 아이가 방바닥에 앉아 있었습니다. 양쪽에서 어른들의 목소리가 부딪혔고, 무언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도 났습니다.
아이는 큰소리를 피할 수도, 싸움을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몸을 단단히 굳힌 채 벽지의 꽃무늬만 하나씩 바라봤습니다. 그러자 어른들의 목소리가 먼 데서 들리는 것처럼 작아졌습니다. 자신이 그 방에 있으면서도 마치 멀리 떨어져 구경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이에게 그것은 도망칠 수 없는 시간을 견디는 방법이었습니다.
성인이 된 뒤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면 그때의 반응이 먼저 나타났습니다. 남자친구의 목소리가 높아지면 귀가 먹먹해지고, 자신의 말과 행동이 멀리서 벌어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어린 시절 큰소리 속에서 자신을 멀리하며 버텼던 반응이 지금의 다툼에서도 되풀이되고 있었습니다.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그때의 아이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큰소리가 무서웠구나. 그때는 이 방을 나갈 수도, 싸움을 멈출 수도 없어서 너 자신을 멀리하는 방법으로 버텼구나. 하지만 지금의 나는 대화를 잠시 멈추고 그 자리에서 나올 수 있어. 감당할 수 있을 때 다시 이야기해도 돼.”
같은 장면을 다시 지나갈 때도 어른들은 다투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이제 그 싸움을 자신이 멈춰야 하는 것도, 끝날 때까지 혼자 견뎌야 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른이 된 자신이 곁에 있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목소리는 여전히 컸지만, 자신을 멀리 보내야만 버틸 수 있는 시간은 아니었습니다. 상담 의자에 앉은 그분의 차갑던 손끝에도 조금씩 온기가 돌았습니다.
최면 중에는 큰소리 앞에서 몸을 굳히고 자신을 멀리해야 했던 다른 관련 경험들도 이어 다뤘습니다. 그때는 선택할 수 없었던 아이와 달리, 지금은 다툼을 멈추고 자리를 벗어나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는 이해로 그 경험들을 소화해 나갔습니다.
“잠깐, 나 지금 멀어지려고 해”
상담 뒤에도 남자친구와 다툰 날이 있었습니다. 목소리가 높아지자 귀가 먹먹해지려 했습니다. 예전에는 자신이 멀어진 뒤에야 알았지만, 이번에는 그 반응이 시작되는 순간을 알아차렸습니다.
“잠깐만. 나 지금 멀어지려고 해. 십 분만 쉬고 다시 얘기하자.”
예전 같으면 그 말을 꺼내기 전에 딱딱한 말투가 먼저 나왔을 것입니다. 두 사람은 물을 한 잔씩 마시고 다시 식탁에 앉았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도 전날 나눈 이야기가 흐릿하지 않았고, 휴대전화를 뒤지며 불안해하는 일도 줄었다고 합니다.
달라진 것은 다툼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큰소리를 견디기 위해 자신을 멀리해야 했지만, 지금은 자신이 멀어지기 시작하는 순간을 알아차리고 대화를 잠시 멈출 수 있게 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