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하루 종일 너무 피곤해서 눈이 저절로 감기거든요. 그런데 씻고 침대에 눕는 순간
거짓말처럼 정신이 또렷해져요. 몸은 천근만근인데 머릿속만 환하게 켜진 것 같아요.
그렇게 뒤척이다 시계를 보면 어느새 두 시, 세 시예요.
잠 좀 자는 게 이렇게까지 어려운 일인가요.”
마흔을 갓 넘긴 회사원 한 분이 상담실에서 꺼낸 이야기입니다. 낮에는 회의 중에 꾸벅 고개가 떨어질 만큼 졸린데, 막상 밤이 되어 누우면 잠이 달아난다고 하셨습니다. 그게 가장 억울하다고요.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누구보다 자고 싶은데, 몸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으니까요.
이런 분들은 잠에 좋다는 것을 대개 다 해 보셨습니다. 따뜻한 물로 씻고, 휴대폰을 멀리 두고, 자기 전에 스트레칭도 하고, 카페인도 끊어 봅니다. 그런데도 천장만 바라보는 밤이 이어지면 결국 같은 물음에 이르게 됩니다. 몸은 이렇게까지 지쳤는데, 잠이 안 오는 이유가 대체 무엇일까.
여기서 한 가지 단서를 짚어 볼 수 있습니다. 낮에 소파에서는 깜빡 졸음이 쏟아지는데 잠자리에 제대로 누우면 오히려 정신이 말똥해진다면, 이것은 잠잘 힘이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잠들 준비는 이미 충분한데, 무언가가 그 잠을 가로막고 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지쳐도 잠이 달아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잠은 사실 ‘들려고’ 애쓴다고 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몸이 낮 동안 켜 두었던 경계를 풀고, 쉼을 맡는 신경으로 넘어갈 때 자연스럽게 찾아옵니다. 문제는 그 경계가 좀처럼 꺼지지 않을 때입니다. 몸은 충분히 지쳐 쉬자고 하는데 경계만 홀로 켜진 채 버티면, 아무리 피곤해도 정신은 환하게 깨어 있게 됩니다.
들판의 노루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노루는 풀을 한 입 뜯고는 고개를 들어 사방을 살피기를 쉴 새 없이 되풀이합니다. 맹수가 자주 나타나던 땅에서 자란 노루일 수록 그 살핌은 더 잦고, 더 깊이 뱁니다. 훗날 안전한 울타리로 옮겨 와 더는 쫓길 일이 없어도, 한번 몸에 새겨진 경계는 쉬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풀밭에 가만히 엎드려 쉬려 해도 두 귀가 자꾸만 쫑긋 서는 것이지요.
사람의 몸에도 그런 파수꾼이 있습니다. 뇌 깊은 곳에서 ‘지금 안전한가’를 잠시도 쉬지 않고 살피는 ‘편도체’라는 부위입니다. 편도체가 안전하다고 판단하면 경계가 풀려 몸이 쉼으로 넘어가지만, 위험할지 모른다고 여기면 한밤중에도 경계를 거두지 않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의 정체가 바로 이것입니다. 피곤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경계가 꺼지지 않아서이지요.
마음먹는다고 꺼지는 경계가 아닙니다
그래서 잠 못 드는 밤이 길어지면 많은 분이 수면제의 도움을 받습니다. 수면제는 켜져 있는 각성을 눌러 잠으로 넘어가도록 도와주니, 당장의 밤을 견디는 데 분명 힘이 됩니다. 다만 약은 경계를 잠시 눌러 줄 뿐, 그 경계가 왜 밤마다 켜지는지 그 뿌리까지 바꾸지는 못합니다. 약을 줄이면 다시 말똥한 밤이 돌아오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 경계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여기서 짚어 둘 것이 하나 있습니다. 경계가 켜지고 꺼지는 일은 우리가 의식으로 조절하는 영역이 아닙니다. ‘이제 그만 안심하고 자자’고 아무리 마음먹어도, 그 다짐은 경계가 자리 잡은 깊은 층까지 내려가 닿지 못합니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처음부터 의지가 미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면상담이 들여다보는 곳이 바로 거기, 의식이 닿지 못하는 무의식의 층입니다. 경계가 맨 처음 ‘세상은 마음 놓을 수 없는 곳’이라고 배운 순간까지 찾아 들어가는 것입니다.
최면 속에서 다시 만난 어린 날의 그 집
앞서 그 회사원도 그렇게 자기 경계의 뿌리를 찾아 내려갔습니다. 최면이 충분히 깊어지자, 평소 분주한 의식에 가려 떠오르지 않던 오래된 장면 하나가 천천히 다가왔다고 합니다.
아직 말도 제대로 트이지 않았을 무렵의 어느 집이었습니다. 그 집은 어쩐지 좀처럼 마음을 놓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언제 누구의 목소리가 높아질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미리 알 수 없어서, 아이는 늘 어른들의 얼굴빛과 발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웠습니다. 그런 일이 터지기 전에 먼저 알아채야 그나마 마음이 놓였으니까요.
문이 여닫히는 작은 소리에도 어깨가 움찔했고, 잠자리에 누워서도 한쪽 귀는 언제나 열려 있었습니다. 눈을 감고 마음 놓아도 괜찮다고 느껴 본 적이, 그 아이에게는 거의 없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그저 좀 어수선한 집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말도 트이지 않은 아이에게는 전혀 다른 것이 새겨졌습니다. 세상은 잠시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되는 곳이라는 믿음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로 아이의 편도체는 안전한 순간에도 경계를 거두는 법을 익히지 못했고, 그 경계는 수십 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제대로 꺼진 적이 없었습니다.
어른이 되어 잠자리에 누울 때마다, 그 오래된 경계가 어김없이 되살아났던 것입니다. 본인은 그 시절을 까맣게 잊고 살았으니, 잠이 안 오는 이유를 좀처럼 짐작하지 못한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기억에 없다고 해서 그 일까지 없었던 것은 아닌데 말입니다.
깊은 최면 안에서, 지금의 그분이 그 어린 자신 곁에 가만히 머물렀습니다. 이제는 그렇게까지 사방을 살피지 않아도 된다고, 그 집은 이미 오래전에 지나갔으며 지금 너는 안전한 곳에 있다고 차근차근 일러 주었습니다. 늘 들려 있던 아이의 어깨가 그제야 조금씩 내려앉는 듯했다고 합니다.
한 달쯤 지나, 어느 밤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한 달쯤 지나 들려주신 이야기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늦은 밤, 현관 쪽에서 부스럭하는 소리가 났다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벌떡 일어나 불을 켜고 한참을 살폈을 소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잠결에 ‘바람인가 보다’ 하고 이불을 끌어올렸고, 그대로 아침까지 깨지 않았다고요.
아침에 일어나서야 ‘어젯밤 그 소리를 듣고도 그냥 잤네’ 하고 뒤늦게 알아차렸다고 하셨습니다. 밤새 사방을 살피던 오랜 버릇이, 어느새 그를 떠나 있었던 것입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은 의지가 부족한 탓도, 마음이 약한 탓도 아닙니다. 다만 오래전 켜진 경계가 아직 꺼지는 법을 익히지 못한 채 밤마다 되살아나는 것뿐입니다. 그 경계가 처음 새겨진 자리를 찾아 풀어 가면, 몸도 비로소 안심하고 쉼으로 넘어가도록 도울 수 있습니다.
오늘도 불 꺼진 방에서 천장만 올려다보며 시계 숫자를 헤아리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그것은 잠들 마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다만 오래전 어린 내가 켜 둔 경계가, 아직 꺼질 때를 모른 채 깨어 있는 것뿐입니다. 그 경계에게 이제는 눈을 감아도 괜찮다고 일러 줄 길은, 분명히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