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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펜에서는 포수가 미트를 옮기는 대로 들어가요. 그런데 타자가 들어와 배트를 세우면 미트가 갑자기 손바닥만 해 보여요. 몸쪽 사인이 나오면 공을 쥔 손가락부터 딱딱해지고요."
고등학교 2학년 투수의 이야기입니다. 감독은 투수 입스가 온 것 같다고 했습니다. 불펜에서는 여전히 원하는 곳으로 던졌지만, 경기에서 타자가 서면 제구가 흔들렸습니다. 밤이면 휴대전화로 제구 입스를 검색하다 잠을 놓치곤 했습니다.
시작된 날은 분명했습니다. 전국대회 예선에서 던진 몸쪽 직구가 타자의 팔꿈치에 맞았습니다. 타자는 팔을 감싸 쥐고 주저앉았고, 트레이너가 뛰어나오는 동안 경기장은 조용해졌습니다. 다음 등판부터 공을 놓는 순간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습니다.
폼은 그대로인데 공만 달라지는 이유
코치와 투구 영상을 여러 번 돌려 봤지만 폼에는 뚜렷한 문제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릴리스 포인트(공이 손에서 떨어지는 위치)를 다시 잡고, 불펜 투구를 늘리고, 일주일 동안 공을 잡지 않고 쉬어 보기도 했습니다.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속으로 "괜찮다, 괜찮다"를 되뇌었지만, 타자가 서면 공은 다시 미트를 벗어났습니다.
투구 폼과 몸 상태를 점검하는 일은 필요합니다. 다만 이 선수처럼 불펜이나 캐치볼에서는 괜찮다가 타자가 서면 흔들린다면, 그 순간 몸에서 어떤 반응이 먼저 일어나는지도 살펴봐야 합니다. 쉬거나 투구량을 늘려도 같은 상황에서 반복된다는 점은 이 사례에서 특히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긁힌 적 있는 주차장 기둥 앞에서
몹시 놀랐던 순간의 장면이나 동작을 만나면 몸이 먼저 반응할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조건화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이 선수에게는 타자가 주저앉던 모습과 몸쪽 공을 던지는 동작이 맞물려 있었습니다.
주차장의 한 기둥 앞에서만 저절로 속도를 줄이는 운전자를 떠올려 보세요. 지나갈 공간은 넉넉한데도 핸들을 쥔 손이 굳고 숨을 참습니다. 전에 그 기둥에 차 옆면을 긁은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투수에게는 타석에 선 타자가 그 기둥처럼 몸을 긴장시키는 단서가 됐습니다. 손끝에 힘이 몰리자 공을 놓는 순간이 어긋나고, 공은 미트 앞에서 튀거나 타자 몸쪽으로 날아갔습니다.
"괜찮다고 수십 번 말해도 손이 제 말을 안 들어요."
상담실에서 떠오른 어느 오후
타자를 보는 순간 몸이 먼저 긴장하니, 머리로 괜찮다고 되뇌어도 손은 쉽게 풀리지 않았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폼을 다시 짜기보다 손가락 끝의 차가운 감각부터 살폈습니다. 그 감각과 함께 떠오르는 경험과 감정을 따라가며, 비슷한 순간마다 몸이 굳는 반응을 다루었습니다.
선수는 최면상담 중 한동안 차가워진 손가락 끝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다 야구공도 글러브도 없는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볕 드는 거실에서 아주 어린 자신이 엄마 무릎에 앉아 있었습니다. 아직은 말보다 웃음소리로 기분을 알리던 무렵의 모습이었습니다.
아이는 엄마 무릎 위에서 신이 나 몸을 앞뒤로 흔들고 있었습니다. 깔깔 웃다가 고개를 뒤로 힘껏 젖히는 순간, 뒤통수가 엄마 턱에 딱 부딪혔습니다. 엄마는 "아!" 하며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었습니다. 눈에 눈물이 고인 채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아이의 웃음이 뚝 끊겼습니다. 입을 반쯤 벌린 채 몸이 굳고, 숨을 들이쉰 그대로 엄마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잠시 뒤 엄마는 한 손으로 턱을 문지르며 다른 팔로 아이를 안았습니다. 그래도 아이의 몸은 한동안 뻣뻣했습니다.
어른이 된 선수는 그 어린 자신에게, 잠시 뒤 어떤 일이 이어지는지 먼저 알려 주었습니다.
"엄마 턱이 잠깐 아파서 그래. 엄마는 곧 괜찮아지고, 턱을 문지르면서 너를 꼭 안아 줄 거야. 너는 신이 나서 몸을 흔든 거지 엄마를 아프게 하려던 게 아니잖아. 엄마도 그걸 알아. 신나게 움직인 건 잘못한 일이 아니야."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엄마가 곧 괜찮아질 것을 알면서 그 오후를 다시 겪어 보았습니다. 신나게 몸을 흔들다 엄마 턱에 머리를 부딪히고, 엄마가 얼굴을 감싸 쥐자 아이의 웃음이 멈췄습니다. 이번에는 멈췄던 숨이 곧 터져 나왔고, 엄마 품에 안기자 뻣뻣한 몸에서 힘이 빠지는 듯했다고 합니다. 선수는 그 대목에서 오른손으로 눈가를 한 번 훔쳤습니다.
아이가 신나게 움직이다 엄마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놀랐을 때와, 공에 맞은 타자가 주저앉았을 때는 닮은 점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움직임으로 누군가 다쳤다는 놀람에 몸이 굳는다는 점입니다. 상담에서는 이런 감정과 손끝이 굳는 반응의 연결을 살폈습니다. 선수는 엄마가 잠시 아파했지만 곧 자신을 안았다는 사실을 새롭게 받아들였습니다.
최면 중에는 신나게 움직이다 누군가를 다치게 할까 몸을 멈췄던 다른 관련 경험들도 이어서 살피며, 놀람과 죄책감을 새로운 이해로 풀어 갔습니다.
몸쪽에 바짝 붙어 선 타자
시즌 첫 공식 경기 3회, 원아웃에 주자 한 명이 나가 있었습니다. 왼손 타자가 홈플레이트에 바짝 붙어 섰고, 포수는 몸쪽 낮은 곳에 미트를 댔습니다. 선수에게 미트가 다시 제 크기로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다리를 들어 올려 던진 공은 타자 무릎 앞을 스치듯 지나 미트에 꽂혔습니다.
타자가 움찔 물러났다가 다시 타석에 들어섰습니다. 선수는 모자챙을 한 번 만지고 포수의 다음 사인을 기다렸습니다. 그 이닝이 끝날 때까지 공은 포수가 미트를 옮기는 곳을 따라갔다고 합니다.
불펜에서는 잘 들어가던 공이 타자만 서면 엉뚱한 데로 날아가나요? 폼을 고치고 쉬어 봐도 같은 상황에서 반복된다면, 타자를 보는 순간 손끝이 먼저 굳는 반응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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