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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기가 골드 한가운데 딱 들어와요. 그때 놓기만 하면 되는데 손가락이 시위에서 안 떨어져요. 그렇게 버티고 있으면 활을 쥔 왼팔이 부들부들 떨리고 숨이 막혀요. 결국 활을 내리고 처음부터 다시 당겨요. 그런데 표적지 없이 코앞에 매트만 두고 쏘면 아무렇지도 않아요.”
매트 앞에서는 괜찮은 손가락이 표적지 앞에서만 굳었습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은 실업팀에서 뛰는 20대 중반 여자 양궁 선수입니다. 흔히 표적공포라고도 부르는 양궁 입스를 겪고 있었습니다.
국가대표 선발전 마지막 날, 통과와 탈락이 마지막 한 발에 걸려 있었습니다. 조준이 골드에 들어왔지만 손가락이 풀리지 않았습니다. 한참 뒤에야 떠난 화살은 과녁 가장자리에 꽂혔고, 선수는 그 한 발로 선발전에서 탈락했습니다.
그 뒤로 훈련장에서도 표적지만 보면 같은 일이 되풀이됐습니다. 조준을 마치고도 시위를 놓지 못해 한 엔드에 활을 여러 번 내렸습니다. 어떤 날에는 조준을 끝내기도 전에 손가락이 먼저 풀려 화살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갔습니다. 코치의 권유로 일주일 동안 활을 내려놓았지만, 다시 표적지 앞에 서자 손가락은 똑같이 굳었습니다.
놓기를 미루면 잠깐 편해지는 까닭
시위를 조금만 더 붙들면 화살의 결과가 정해지는 순간도 늦어집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은 긴장이 조금 누그러졌을 수 있습니다. 불편한 순간을 피하고 마음이 놓이면서 같은 행동을 되풀이하기 쉬워지는 과정을 부적 강화라고 합니다. 하지만 오래 붙들수록 팔이 떨리고, 화살을 놓는 일은 더욱 부담스러워졌습니다.
입사 지원서 봉투를 우체통에 넣으려다 입구에서 다시 빼는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한번 넣으면 되돌릴 수 없다는 생각에 봉투를 뺄 때마다 잠깐 마음이 놓입니다. 그럴수록 다음에는 넣기가 더 어려워집니다. 골드 앞에서 시위를 붙들던 선수의 망설임도 이와 닮았습니다.
“골드에 들어오면 속으로 ‘지금 놔’ 하고 말해요. 그럴수록 손가락 끝에 온 신경이 쏠려서 아예 안 움직여요.”
자세를 고쳐도 표적지 앞에서 멈추던 손가락
선수는 훈련 영상을 찍어 동작을 점검하고, 클리커 위치를 바꾸고, 잠들기 전에는 이미지트레이닝도 했습니다. 동작을 다듬고 시합을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연습이었지만, 표적지 앞에서 손가락이 멈추는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상담에서는 자세를 더 고치기보다, 표적 앞에서 손가락이 굳을 때 올라오는 긴장을 살폈습니다. 골드가 눈에 들어오면 속으로 ‘놔’라고 말해도 손가락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선수는 최면상담에서 그 긴장과 함께 떠오르는 오래된 경험과 감정을 따라갔습니다.
소파 끝에서 굽혔다 폈다 하던 무릎
상담실에서 깊은 최면에 들어간 선수의 오른손은 활도 없는데 검지·중지·약지가 시위를 건 듯 구부러져 있었습니다. 손가락에 힘이 가장 세게 들어갔을 때, 소파 끝에 선 작은 맨발이 떠올랐습니다. 두 손 두 발로 겨우 소파에 올라갔던 어린 자신의 발이었습니다.
아이는 소파 끝 쿠션에 발가락을 걸고 서 있습니다. 앞에서는 엄마가 팔을 벌리고 “하나, 둘, 셋!” 하며 웃습니다. 아이는 무릎을 굽혔다 펴기를 반복합니다. 앞으로 몸이 쏠릴 때마다 발끝에 힘을 주고 멈춥니다.
몇 번을 망설이던 아이는 결국 몸을 돌립니다. 쿠션 모서리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배를 댄 채 바닥으로 미끄러져 내려옵니다. 발바닥이 바닥에 닿고서야 참고 있던 숨을 크게 내쉽니다.
선수는 어린 자신에게 엄마가 팔을 벌리고 기다리는 것은 아이를 받아 주려는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몇 번 망설여도 괜찮고, 뛰어내리든 배를 대고 내려오든 한 번 정한 선택을 따라가면 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어느 쪽을 고르더라도 잘못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아이는, 어떤 선택을 해도 잘못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마음에 둔 채 소파 끝에 서던 순간을 다시 겪어 보았습니다. 엄마는 여전히 팔을 벌렸고, 아이는 여러 번 무릎을 굽혔다가 몸을 돌려 미끄러져 내려왔습니다. 이번에는 망설였다고 해서 잘못한 것이 아니며, 마음을 정하면 그 선택을 따르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쿠션 끝에 걸린 발가락은 전보다 덜 오그라들었고 바닥에 닿아 내쉬는 숨도 크지 않았다고 합니다.
장면이 끝나자 선수가 먼저 말했습니다. “손가락 마디가 풀렸어요. 시위에 걸어 두었던 손가락을 이제야 내려놓은 것 같아요.” 팔걸이 위의 세 손가락도 더는 구부러져 있지 않았습니다.
표적 앞에서는 화살을 놓는 순간 결과가 확정되고, 소파 끝에서는 앞으로 뛰거나 내려오는 선택을 해야 했습니다. 두 장면 모두 결정을 미루는 동안 몸에 힘이 들어갔습니다. 상담에서는 이 장면뿐 아니라 결과를 앞두고 망설이며 몸에 힘을 주었던 관련 경험들도 함께 다뤘습니다.
골드에 들어온 조준, 다시 떠난 화살
상담 뒤 처음 나선 전국 대회에서 선수는 70미터 사대에 섰습니다. 과녁 위 깃발이 오른쪽으로 조금 날리고 있었습니다. 활을 들어 시위를 당기고 조준기가 골드에 들어오자 손가락이 풀렸습니다. 화살이 떠난 뒤 선수는 망원경으로 결과를 확인하기 전에 화살통에서 다음 화살을 뽑았습니다. 그날은 활을 내렸다 다시 당기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골드를 겨누고도 몇 초씩 버티다 활을 내리는 일이 반복된다면, 자세를 고치는 연습만으로 풀리지 않는 긴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는 놓는 순간의 부담과 손가락에 들어가는 힘을 함께 살폈습니다. 선수는 다시 표적지 앞에 서서 조준을 마친 화살을 놓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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