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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서브 연습할 때는 멀쩡해요. 그런데 복식에서 파트너가 제 뒤에 서면 라켓 쥔 손이 달달 떨려요. 짧게 넘겨야 할 셔틀콕이 네트 윗줄에 걸리거나, 붕 떠서 상대가 치기 좋게 올라가 버려요.”
함께 상담실에 온 어머니는 연습장과 시합장에서 딸의 모습이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연습할 때는 웃으며 셔틀콕을 주고받다가도 복식 경기에서 서브할 때면 입술을 다물고 라켓 끝만 내려다본다는 것입니다.
선수는 복식을 주로 뛰는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손 떨림은 지난해 전국대회 복식 준결승에서 시작됐습니다. 상대가 한 점만 더 내면 경기가 끝나는 상황. 짧은 서브가 네트에 걸렸고 그대로 패했습니다. 그날부터 같은 조 파트너의 얼굴을 똑바로 보기가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손이 떨리는 때는 서브 직전입니다. 등 뒤에서 파트너가 자세를 잡는 기척이 느껴지면 심장이 빨라지고, 라켓을 쥔 오른손 손끝이 가늘게 떨립니다. 라켓 머리가 셔틀콕 앞에서 흔들리면서 공이 네트에 걸리거나 높이 떠 버립니다.
혼자 넣을 때와 파트너가 설 때
처음에는 기술이 흔들린 줄 알았습니다. 훈련이 끝난 뒤에도 혼자 코트에 남아 셔틀콕 한 통을 다 쓸 때까지 짧은 서브를 넣었습니다. 혼자서는 공이 네트를 낮게 넘어 숏 서비스 라인 바로 너머에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복식 연습경기에서 파트너가 뒤에 서자 손이 다시 떨렸습니다.
혼자 연습하면 되던 서브가 복식에서만 어려웠습니다. 연습 때 가능하던 동작이 특정 경기 상황에서 무너지는 입스의 모습과 닮아 있습니다. 기술뿐 아니라 그 순간 선수에게 무엇이 부담스러운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었습니다.
머릿속을 먼저 채우는 걱정
서브 직전에 어떤 생각이 드는지 묻자, 선수는 한참 망설이다 답했습니다. “이거 걸리면 또 얘가 나 때문에 점수 잃는다, 그 생각밖에 안 나요.” 공을 낮게 넘기는 방법보다 파트너에게 미안해질 장면이 먼저 떠오른 것입니다.
걱정에 마음이 쏠리면 눈앞의 섬세한 동작에 집중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전화번호를 잊지 않으려고 속으로 되뇌면서 세밀한 일을 하면 평소보다 버겁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이 선수도 파트너에 대한 걱정이 앞선 채 서브를 넣고 있었습니다. 걱정이 손 떨림에 얼마나 영향을 줬는지는 이 장면만으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서브 전마다 “실수하지 말자”, “파트너 생각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지만 걱정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상담에서는 그 생각을 억지로 밀어내는 대신, 파트너가 뒤에 설 때 올라오는 떨림과 미안함을 살폈습니다. 그 감정과 관련된 오래전 경험도 함께 다뤘습니다.
“오빠 목소리예요”
깊은 최면에서 선수는 파트너가 등 뒤에 선 듯 오른손이 다시 가늘게 떨린다고 말했습니다. 장면이 떠오르기도 전에 누군가의 외침부터 들렸다고 합니다.
“‘아, 다 젖었잖아!’ …… 오빠 목소리예요. 오빠가 소리를 질러요.”
여름날 오후의 집 안입니다. 엄마는 베란다에서 물놀이 준비를 하고, 오빠가 먼저 나서서 욕실에서 커다란 물놀이 대야에 물을 받았습니다. 아이는 아직 욕조 턱을 혼자 넘기도 버거울 만큼 어렸지만, 오빠가 하는 일이면 뭐든 곁에서 거들고 싶어 했습니다. 오빠와 아이는 대야 손잡이를 하나씩 잡고 베란다 쪽으로 한 걸음씩 옮깁니다.
물에 젖은 손잡이가 아이 손에서 조금씩 미끄러집니다. 아이는 손가락에 힘을 주지만, 몇 걸음 못 가서 손잡이가 손을 빠져나갑니다. 대야가 바닥에 쿵 떨어지고, 튄 물이 오빠의 바지와 맨발을 흠뻑 적십니다.
오빠가 “아, 다 젖었잖아!” 하고 소리칩니다. 베란다에서 달려온 엄마는 “괜찮아, 갈아입으면 돼”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대야 옆에서 손을 떨었습니다. 손잡이를 다시 잡으려 해도 손가락이 잘 오므려지지 않았습니다.
대야의 색이나 그날 물놀이를 했는지는 떠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대신 손잡이가 미끄러지던 감촉과 오빠의 목소리가 또렷했습니다.
최면 속에서 선수는 대야 옆에 선 어린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물이 담긴 대야는 네 손에 많이 무거웠어. 젖은 손잡이는 어른 손에서도 미끄러져. 오빠도 차가운 물에 깜짝 놀라서 소리친 거야. 네가 일부러 놓친 게 아니고, 손잡이가 미끄러우면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해도 돼. 젖은 바지는 금방 말라.”
어른이 된 자신에게 설명을 들은 아이는, 대야가 많이 무겁고 젖은 손잡이는 누구에게나 미끄러울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둔 채 그날 일을 다시 겪어 보았습니다. 손잡이는 또 미끄러졌고, 대야가 떨어져 오빠가 젖었으며, 오빠는 소리를 질렀습니다. 아이는 이번에도 손잡이를 다시 잡지 못했습니다.
그 장면을 지나며 선수가 말했습니다. “손잡이가 원래 미끄러웠던 거네요. 손은 아직 조금 떨리는데 처음처럼 덜덜 떨리지는 않아요. 오빠 바지가 다 젖었는데도 가슴이 아까만큼 뛰지는 않아요.”
함께 옮기던 대야를 놓쳐 오빠가 젖은 일과, 서브 실수로 파트너와 함께 경기를 진 일이 선수에게 겹쳐 보였을 수 있습니다. 상담에서는 자신의 손이 실수하면 곁의 사람도 손해를 본다는 미안함과 겁을 살폈습니다.
선수는 실수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다고 해서 혼자 얼어붙어야 하는 것은 아니며, 필요한 말을 하고 다음 동작을 이어 갈 수 있다는 점도 새롭게 받아들였습니다. 최면 중에는 자신의 실수로 곁의 사람이 손해 볼까 겁내며 몸을 굳혔던 다른 관련 경험들도 이어서 다뤘습니다.
“괜찮아, 다음엔 붙일게”
선수는 상담 뒤 처음 나간 대회의 복식 경기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두 번째 게임 중반에 넣은 숏서브가 네트 윗줄에 걸렸습니다. 예전에는 고개를 숙이고 파트너를 보지 못한 채 셔틀콕을 주우러 갔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몸을 돌려 파트너와 눈을 맞추고 먼저 말했습니다. “괜찮아. 다음엔 짧게 붙일게.” 준결승 이후 한 번도 꺼내지 못했던 말이었습니다.
몇 번의 랠리 뒤 다시 서브할 차례가 왔습니다. 파트너가 등 뒤에서 라켓을 드는 기척이 느껴졌지만, 이번에는 라켓 머리가 흔들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셔틀콕은 네트를 낮게 넘어 숏 서비스 라인 바로 너머에 떨어졌고, 상대는 겨우 걷어 올렸습니다.
서브 전에 공보다 파트너의 얼굴이 먼저 떠오른다면 연습량과 함께 그 순간의 부담도 살펴볼 만합니다. 이 선수에게는 파트너에게 또 미안해질까 하는 마음이 중요한 단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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