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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을 띄우면 하회전으로 짧게 놓을지, 옆회전으로 길게 뺄지 두세 개가 한꺼번에 떠올라요. 그러다 공이 눈앞을 지나 떨어지는데도 라켓이 안 나가요. 정신 차려 보면 숨도 같이 멈춰 있어요.”
고등학교 1학년 탁구 선수에게 이 멈춤이 처음 나타난 것은 도 대표 선발전이었습니다. 9대 9에서 서브 코스를 바꿀지 망설이는 사이 공은 탁구대 가까이 내려왔습니다. 급히 휘두른 라켓에 맞은 공은 네트에 걸렸고, 다음 서브마저 네트에 걸려 연달아 점수를 내주었습니다.
그 뒤로 아버지는 관중석에서 아들이 공을 띄워 놓고 라켓을 든 채 서 있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공은 라켓 옆으로 떨어져 굴렀고, 심판은 상대 점수를 올렸습니다. 처음에는 긴장 탓이라고 여겼다고 합니다. 첫 상담은 보호자의 동의를 받아 진행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 곁에서 그동안 본 장면을 이야기했습니다.
연습에서는 서브를 걱정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멈춤은 시합에서 상대를 보고 직접 서브를 골라야 할 때만 나타났습니다. 이렇게 특정 상황에서 익숙한 동작이 흔들리는 모습을 탁구 입스, 그중에서도 서브 입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정해 준 서브와 직접 고르는 서브
선수는 처음에 연습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훈련이 끝나면 혼자 남아 서브를 수백 개씩 넣었고, 서브 전에 공을 두 번 튀기는 루틴도 만들었습니다. 연습 때 서브는 더 날카로워졌지만 시합에서의 멈춤은 그대로였습니다. 쉬거나 연습을 늘려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아, 흔한 슬럼프와는 다른 문제인지 살펴보게 됐습니다.
코치나 동료가 서브를 정해 줄 때와 상대를 보고 직접 골라야 할 때를 나누어 보면 단서가 될 수 있습니다. 정해 준 서브는 넣는데 직접 고를 때만 몸이 멈춘다면, 서브 기술보다 선택하는 짧은 순간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몸이 고르던 서브를 머리가 고를 때
숙련된 선수는 상대의 위치와 라켓을 쥔 모습을 보고 서브를 빠르게 고릅니다. 수없이 연습해 익힌 동작은 순서를 일일이 생각하지 않아도 이어집니다. 그런데 이 선수는 ‘틀리면 안 되는데’라는 걱정이 들면 여러 서브를 머릿속에서 비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공은 계속 떨어지는데 라켓은 쉽게 나가지 않았습니다.
늘 가던 국숫집에서 곧바로 주문하던 사람도 친구가 새 메뉴를 권하면 메뉴판을 다시 보며 망설일 수 있습니다. 탁구대 앞에서는 그렇게 오래 고를 시간이 없습니다. 공이 내려오기 전까지 결정을 내리지 못하면 익숙한 동작도 이어지기 어렵습니다.
선수는 스스로 빨리 정하자고 다그쳤지만 오히려 선택에 더 매달렸습니다. 코치와 서브를 미리 정해 두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상대가 받는 위치를 바꾸면 경기 중 다시 골라야 했습니다.
명절 아침의 긴 복도
왜 서브를 고르는 순간마다 숨과 라켓이 함께 멈췄을까요? 최면상담에서는 탁구대 앞에서 숨이 막히는 느낌을 단서로, 선택을 앞두고 비슷한 긴장을 느꼈던 경험과 그때의 마음을 살폈습니다.
선수는 깊이 집중한 상태에서 공을 띄우는 순간을 떠올렸습니다. 숨을 들이쉰 채 멈추는 느낌과 함께 떠오른 장면은 어릴 적 명절 아침의 긴 복도였습니다. 한쪽 끝에서는 전 부치는 냄새가 나는 부엌, 다른 쪽 끝에는 안방 문이 있었습니다.
복도 가운데에 서 있는 어린아이는 누가 부르면 아장아장 걸어가곤 했습니다. 부엌에서는 엄마가 “새 옷 입어야지, 얼른 와” 하고 불렀습니다. 거의 동시에 안방 문 앞의 할머니도 “할머니가 맛있는 거 줄게, 이리 온” 하며 손짓했습니다. 아이는 어느 쪽으로 먼저 가야 할지 망설였습니다.
아이가 새 옷이 있는 부엌 쪽으로 한 발을 떼자 할머니가 입을 삐죽 내밀며 “할머니한테는 안 와?” 하고 서운한 얼굴을 지었습니다. 아이는 걸음을 멈추고 두 사람을 번갈아 보았습니다. 아랫입술이 떨리고 숨을 참는 듯하더니 울먹였습니다. 엄마와 할머니는 웃으며 다가와 아이의 손을 하나씩 잡아 주었습니다.
어른이 된 선수는 복도에 선 어린 자신에게 당시에는 알기 어려웠던 점을 전했습니다.
“엄마도 할머니도 너를 부르고 있어. 할머니가 서운한 얼굴을 지어도 어느 쪽으로 먼저 간다고 네가 잘못하는 건 아니야. 한 사람에게 먼저 가는 것이 다른 사람을 싫어한다는 뜻도 아니야.”
그 말을 들은 아이는, 누구에게 먼저 가도 잘못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마음에 둔 채 그 명절 아침을 다시 겪어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여전히 입을 삐죽 내밀었고, 아이도 복도에서 멈춰 울먹였습니다. 하지만 멈춰 있는 동안에도 숨은 드나들었습니다. 엄마와 할머니가 웃으며 다가와 양손을 잡아 줄 때에는 울먹임이 그쳤고, 선수는 양손이 따뜻했다고 말했습니다.
복도의 아이는 누구에게 먼저 갈지 망설이다 숨과 걸음을 멈췄습니다. 선수 역시 경기에서 서브를 고르려다 숨과 라켓이 함께 멈췄습니다. 상담에서는 선택하는 순간의 긴장과 멈춤을 두 장면에서 함께 살폈습니다.
이 장면과 함께, 선택을 앞두고 누군가를 실망시킬까 망설이며 몸을 멈췄던 관련 경험들도 이어서 다뤘습니다.
경기 직전 먼저 꺼낸 작전
상담 뒤 처음 출전한 대회에서 선수는 경기 직전 벤치에서 코치가 묻기 전에 먼저 작전을 말했습니다. “첫 서브는 백 쪽으로 짧게 하회전 넣고, 길게 받으면 3구에서 돌아서 칠게요.” 3구는 서브를 넣은 쪽이 치는 세 번째 공입니다. 입스가 생긴 뒤에는 코치가 서브를 정해 주기만 기다리던 선수였습니다.
첫 서브에서 공을 띄우자 라켓은 떨어지는 공을 따라 나갔다고 합니다. 상대가 길게 받아 넘기자 선수는 몸을 돌려 3구를 준비했습니다. 듀스에서는 상대의 받는 위치를 보고 긴 서브로 코스를 바꿨고, 그때도 숨은 멈추지 않았다고 합니다.
관중석에서 아들의 멈춤을 지켜본 아버지도, 공을 띄울 때마다 숨을 멈춘 선수도 그동안 연습으로 이 문제를 풀어 보려 애썼습니다.
연습장에서 익힌 서브는 남아 있었습니다. 이 선수는 고르는 순간의 긴장을 상담에서 다룬 뒤, 경기에서 스스로 서브를 선택하고 라켓을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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