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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테이션이 한 칸 돌 때마다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하나씩 접고 있어요. 앞으로 두 번, 이제 한 번. 그렇게 세다 보면 차례가 오기도 전에 가슴이 쿵쾅거려요. 막상 엔드라인에 서서 공을 띄우면 팔에서 힘이 쑥 빠져요. 있는 힘껏 쳤는데 공이 네트 위 흰 띠를 못 넘고 떨어져요.”
배구는 여섯 명이 함께 뛰는 경기라 한 선수가 흔들려도 동료들의 움직임에 가려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대 중반의 여자 프로 배구 선수인 이분도 그랬습니다. 리시브와 수비는 안정적이었고 공격 득점도 곧잘 냈습니다. 서브 범실 뒤에는 동료들이 다음 랠리에서 점수를 되찾아 주었습니다. 선수는 손바닥을 마주치며 괜찮은 척 웃었지만 속은 달랐습니다.
시즌 개막전 세트 막판에 서브 범실을 연달아 하고 교체된 뒤부터였습니다. 로테이션이 자기 서브 차례에 가까워지면 웜업존에서 몸을 푸는 원포인트 서버, 곧 서브를 위해 들어오는 교체 선수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입이 마르고 가슴이 뛰다가, 엔드라인에 서면 팔에 힘이 빠져 공이 네트에 걸리거나 길게 나갔습니다.
이렇게 배구 서브 입스가 시작되었습니다. 서브 범실은 기록에 남지만, 자기 차례를 세며 가슴이 뛰는 시간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동료가 다른 역할을 맡아 빈틈을 메워 주니, 주변에서는 선수의 어려움을 알아채기 힘들었습니다.
앞으로 두 번, 이제 한 번
곧 닥칠 일을 기다리는 동안 겁과 긴장이 커지는 것을 예기불안이라고 합니다. 은행 대출 창구에서 번호표를 들고 기다리는 상황을 떠올려 보세요. 스무 명쯤 남았을 때는 괜찮다가도 전광판에 내 번호가 가까워지면 숫자가 바뀔 때마다 마음이 조급해질 수 있습니다.
배구에서는 세트마다 제출한 선발 명단에 따라 서브 순서가 정해집니다. 자기 차례가 다가오는 것을 로테이션마다 셀 수 있지요. 이 선수는 한 칸씩 가까워질 때마다 긴장했고, 정작 엔드라인에 섰을 때는 팔에 힘이 풀렸습니다.
언제부터 가슴이 뛰는지 살펴보는 것도 단서가 됩니다. 공을 치는 순간인지, 로테이션이 두어 칸 남았을 때인지에 따라 살펴볼 문제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차례가 오기 전부터 두근거린다면 서브 폼과 함께 기다리는 동안의 반응도 봐야 합니다.
차례를 세지 말라는 말이 통하지 않을 때
선수도 여러 방법을 써 봤습니다. 훈련이 끝나면 서브를 수십 개씩 더 넣었고, 공을 튕기는 횟수와 호흡을 정해 루틴도 새로 만들었습니다. 연습에서는 대부분 네트 건너 코트 안으로 공이 들어갔습니다.
연습과 루틴은 동작을 익히고 경기 중 흔들림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연습에서는 잘되는데 경기의 특정 차례에서만 팔에 힘이 빠진다면, 훈련량만 늘려서는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코치는 차례를 세지 말고 수비에 집중하라고 했습니다. 선수도 그렇게 해 보려 했지만, 동료가 서브를 넣으러 엔드라인으로 걸어가기만 해도 손가락 하나를 접고 있었습니다.
그만 세어야겠다고 생각해도 손은 먼저 움직였습니다. 상담에서는 코트에서 느끼는 두근거림을 따라가며, 기다리는 동안 겁이 커졌던 오래전 장면을 살펴봤습니다.
두근거림 끝에 나온 낱말
서브 차례까지 한 칸 남았을 때의 두근거림을 떠올리며 최면에 집중하던 선수는 뜻밖에도 ‘머리빗’을 말했습니다. “분홍색 플라스틱 빗이요. 엄마가 그걸로 언니 머리를 빗고 있어요. 저는 언니 뒤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요.”
어느 아침 거실이었습니다. 양말 한 짝도 혼자 신지 못할 만큼 어렸던 아이는 언니 뒤에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엄마가 두 딸의 머리를 차례로 빗어 묶어 주고 있었는데, 빗이 언니의 머리 끝에서 자꾸 걸렸습니다. 언니가 “아야!” 하고 소리칠 때마다 아이도 목을 움츠렸습니다.
언니가 일어나자 아이는 엄마 앞에 뒤돌아 앉았습니다. 두 팔을 무릎 사이로 늘어뜨리고 고개를 깊이 숙인 채 울먹였습니다. 빗이 머리에 닿는 동안에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머리에서는 빗이 한 번도 걸리지 않았고 고무줄도 금방 묶였습니다.
최면 속에서 어른이 된 선수는 언니 뒤에 웅크린 어린 자신에게 다가가 언니의 머리 끝을 가리켰습니다. “저기 언니 머리 끝에 엉킨 데 보이지? 빗이 저기 걸려서 언니가 아팠던 거야. 언니가 아팠다고 해서 네 차례도 똑같이 아픈 건 아니야. 네 머리는 엉킨 데가 없으니 빗이 걸리지 않고 금방 끝날 거야.”
그 말을 전한 뒤 선수는 같은 아침을 다시 겪었습니다. 빗은 여전히 언니 머리 끝에서 걸렸고 언니는 “아야!” 하고 소리쳤습니다. 아이도 잠깐 목을 움츠리고 울먹였지만, 언니의 머리가 엉켜 빗이 걸린 것이지 자기 차례도 똑같이 아플 것이라는 뜻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엄마 앞에 앉은 뒤에도 숨을 멈추지 않았고, 빗질은 아프지 않게 금방 끝났습니다.
언니가 아파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 차례도 같을 것이라 겁먹은 아이와, 서브 순서가 한 칸씩 다가올 때마다 가슴이 뛰고 손가락을 접던 선수. 두 장면에서는 차례가 오기 전에 긴장이 먼저 커진다는 공통점이 보였습니다. 최면 중에는 차례가 오기 전부터 나쁜 일을 예상하며 긴장했던 다른 관련 경험들도 이어서 다뤘습니다. 차례가 다가온다는 이유만으로 미리 몸을 움츠리거나 힘을 뺄 필요는 없다는 이해로 그 경험들을 소화해 나갔습니다.
세트 막판에도 엔드라인으로
상담 뒤 치른 원정 경기에서 선수는 남은 로테이션을 세는 대신 상대 공격수의 도움닫기와 팔 스윙을 보며 수비 위치를 잡았다고 합니다. 서브 차례가 되자 엔드라인으로 걸어가 공을 한 번 튕기고 높이 띄워 스파이크 서브를 넣었습니다. 공은 네트 위 흰 띠를 넘어 상대 코트 안쪽에 떨어졌다고 합니다.
두 점 앞선 세트 막판에 다시 차례가 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웜업존의 원포인트 서버부터 살폈을 순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그쪽을 돌아보지 않고 공을 받아 엔드라인으로 걸어갔습니다. 가슴은 조금 뛰었지만 공을 띄우는 팔에는 힘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날 선수는 교체 없이 세트의 마지막 서브까지 넣었습니다.
로테이션이 돌 때마다 손가락을 접고 가슴이 뛰었다면 서브 폼만 점검해서는 풀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 사례에서는 경기 전부터 커지는 긴장과 관련된 오래전 경험도 함께 다뤘습니다. 서브 연습과 함께, 자신의 몸이 언제부터 긴장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 서브를 넣고 코트 안으로 뛰어 들어가는 선수의 오른손에는 접힌 손가락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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