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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트에 올라가서 마스크를 내리면 관중석 소리가 바로 귀 옆에서 울리는 것처럼 커져요. 상대 칼끝이 들어오는 게 다 보이는데, 발이 바닥에 붙어서 뒤로 안 떨어집니다. 종아리는 돌처럼 딱딱하고 마스크 안에서 숨만 뜨거워져요. 레슨 때는 한 발 먼저 빠지는데, 시합에서는 뻔히 보면서 찔려요.”
상담을 마친 뒤 그는 관중이 많이 모이는 단체전 명단에 자신을 넣어 달라고 코치에게 말했습니다. 그 피스트에서 발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뒤에서 보겠습니다. 먼저 관중 앞에 설 때 달라지는 반응을 살펴보겠습니다.
함성이 커지면 바닥에 붙는 발
시작은 대학 1학년이던 지난해, 대학 선수권 에페 개인전 16강이었습니다. 상대 학교 선수들과 응원단이 관중석 한쪽을 가득 메웠고, 상대가 점수를 낼 때마다 함성이 터졌습니다. 첫 점수를 내준 뒤부터 그는 그 함성이 모두 자신을 향하는 듯했다고 합니다. 상대가 거리를 좁힐 때마다 뒤로 빠지는 발이 한 박자씩 늦었고, 점수판에는 상대의 점수만 연달아 올라갔습니다.
그 뒤로 관중이 있는 시합마다 같은 일이 반복됐습니다. 레슨이나 팀 안의 연습 경기에서는 달랐습니다. 코치가 칼끝을 뻗어 들어오면 자연스럽게 거리를 벌렸고, 칼이 허공을 찌르는 순간 되받아 찔렀습니다.
레슨에서는 되던 빠지기가 관중 앞에서만 안 된다면, 기술과 함께 그때 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는 관중의 눈길이 느껴지면 상대를 보면서도 자기 모습에 신경을 빼앗겼습니다.
그는 잠들기 전마다 뒤로 빠지는 발을 수십 번 떠올리는 이미지트레이닝을 했습니다. 16강 경기 영상을 돌려 보며 거리 조절도 다시 익혔고, 관중 함성을 녹음해 틀어 놓고 레슨을 받기도 했습니다. 경기 흐름을 정리하고 마음을 가다듬는 데는 도움이 됐지만, 실제 관중 앞에 서면 발은 다시 멈췄습니다.
“코치님은 관중석 쳐다보지 말고 상대만 보라고 하세요. 저도 알아요. 그런데 피스트에 서는 순간, 제가 지금 어떻게 보일지부터 생각나요.”
상대 대신 내 모습을 보게 되는 순간
관중석에서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일지 신경 쓰이면, 상대의 칼끝을 좇던 주의가 그 걱정으로 옮겨 갑니다. 이를 자기초점화라고 합니다. 그만큼 상대의 움직임을 살필 여유가 줄어 뒤로 빠질 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에페에서는 몸 어느 곳을 찔려도 점수가 되므로 한 박자 늦은 발이 바로 실점으로 이어집니다.
전화 통화를 할 때를 떠올려 보면 쉽습니다. 혼자서는 술술 나오던 말도 옆 사람이 듣고 있다고 느끼면 꼬일 수 있습니다. 할 말을 몰라서가 아니라, 상대에게 할 말보다 옆 사람에게 어떻게 들릴지가 신경 쓰이기 때문입니다. 그 선수도 관중석이 차면 칼끝보다 자기 모습에 마음이 쏠렸습니다.
“딱 그래요. 관중석이 차면 제 발도 그 말처럼 머뭇거려요.”
뒤로 빠지는 동작은 레슨에서 셀 수 없이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관중의 눈길을 느끼는 순간, 알고 있는 대로 움직이기 전에 다리부터 굳었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그때의 몸 느낌에 집중하며 함께 떠오르는 경험과 감정을 살펴봤습니다.
피스트가 아닌 곳에서 붙어 버린 다리
깊은 최면 상태에서 16강 경기의 함성과 굳은 다리를 떠올리던 그는 오래전 거실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어……, 저 춤춰요? 거실 한가운데서 엉덩이를 흔들어요.”
아직 노랫말은 모르고 ‘아아’ 소리로 박자만 맞추던 때였습니다. 손님이 온 날, 거실에 동요가 흘렀습니다. 처음 보는 어른 몇 분이 엄마와 소파에 앉아 있었고, 아이는 노래에 맞춰 엉덩이를 흔들며 거실을 돌았습니다.
엄마와 손님들이 “어머, 어머!” 하며 한꺼번에 크게 웃었습니다. 아이는 춤을 뚝 멈추고 두 다리를 딱 붙인 채 섰습니다. 입술이 삐죽 나오고 얼굴은 울상이 됐습니다. 엄마가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무 귀여워서 그래”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그때의 아이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을 천천히 건넸습니다.
“큰 소리에 깜짝 놀랐구나. 사람들이 한꺼번에 웃어서 부끄러웠지. 엄마는 네가 귀여워서 웃었다고 말하고 있어. 지금 멈춰 있어도 괜찮아. 다시 춤추고 싶을 때는 네가 정하면 돼.”
그 뒤 그날 거실에서 있었던 일을 처음부터 다시 겪었습니다. 동요가 나오고 아이가 춤을 췄습니다. 어른들의 “어머, 어머!”와 웃음이 터지자 아이는 이번에도 멈춰 서서 다리를 붙였습니다. 엄마가 다가와 머리를 쓰다듬은 것도 같았습니다. 다만 그 뒤에는 조금 웃음이 났다고 했습니다.
“엉덩이가 다시 들썩거리려고 해요. 엄마 손이 머리에 닿으니까 웃음이 새어 나와요.” 아이는 엄마가 자신을 흉본 것이 아니라 귀여워서 웃었다는 말을 이해했고, 큰 웃음이 들려도 멈출지 다시 움직일지는 자신이 정할 수 있다고 받아들였습니다.
거실에서 아이는 갑자기 쏟아진 시선과 큰 웃음에 놀라 다리를 붙이고 멈췄습니다. 대학 16강에서도 상대 학교 쪽에서 함성이 터지자 칼끝보다 관중에게 비칠 자기 모습이 먼저 신경 쓰였습니다. 상담에서는 그때 느낀 부끄러움과 긴장이 시합 중 다리를 굳히는 반응과 어떻게 이어지는지 살펴봤습니다. 최면 중에는 여러 사람의 시선 앞에서 몸을 멈추고 자신을 의식했던 다른 관련 경험들도 이어서 다루며, 시선이 느껴져도 상대의 움직임을 보고 필요한 동작을 선택할 수 있다는 이해를 정리해 나갔습니다.
함성 속 단체전, 뒤로 물러난 왼발
상담 전에는 관중이 몰리는 단체전에서 자신을 빼 달라고 코치에게 먼저 말해 왔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스스로 명단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대회 마지막 날 양쪽 학교 응원단이 관중석을 메운 가운데 팀의 첫 경기에 나섰고, 마스크를 내리자 함성이 들렸습니다.
상대의 칼끝이 앞으로 움찔하자 왼발이 먼저 반 걸음 뒤로 물러났습니다. 칼끝이 닿지 못하고 멈춘 순간 다시 들어가 상대의 손목을 찔렀습니다. 함성은 여전히 컸지만, 끝까지 상대의 칼끝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고 전했습니다.
레슨에서는 잘 움직이던 발이 관중 앞에서만 굳는다면, 어떤 순간에 상대보다 자기 모습을 더 의식하게 되는지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선수는 관중의 함성 앞에서 몸을 멈추게 하던 감정을 상담에서 다뤘고, 이후 단체전에서 연습하던 발놀림을 다시 쓸 수 있었다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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