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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잠을 좀 설치긴 해요. 그건 그러려니 했어요.
진짜 힘든 건 낮이에요.
별것 아닌 일에 욱하고, 누가 두 번만 물어봐도 신경이 곤두서요.
회의 때는 분명 듣고 있는데 머릿속에 하나도 안 남고요.
종일 멍한데 몸은 천근만근이에요. 그냥 피곤한 건 줄 알았는데,
설마 이것도 불면증인가요?"
서른 후반의 한 직장인 분이 상담실에서 처음 꺼내신 말씀입니다. 정작 밤에 못 잔 이야기보다, 낮이 얼마나 버거운지를 더 길게 풀어놓으셨습니다. 오랫동안 이걸 예민한 성격 탓, 약한 체력 탓으로만 여겨 오셨다고 합니다. 남들은 멀쩡히 해내는 하루를 왜 나만 이렇게 힘들어할까 싶어 더 자책했다고요.
밤에 못 잤으니 낮에 피곤한 거야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주말 내내 자도 낮의 예민함과 멍함은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잠을 보충했는데도 그대로라면, 단순히 잠이 모자란 문제는 아닐 수 있습니다. 불면증이라고 하면 흔히 밤에 잠 못 드는 장면만 떠올립니다. 그러나 정작 일상을 갉아먹는 것은 낮까지 따라붙는 이런 증상들인 경우가 많습니다.
몸은 천근만근인데 마음속 보초는 깨어 있습니다
우리 마음 깊은 곳에는 한시도 쉬지 않고 ‘지금 안전한가’를 살피는 ‘편도체’라는 부위가 있습니다. 마음속에 둔 보초라고 생각하시면 쉽습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온몸에 비상을 걸어 우리를 지키는, 고마운 보초입니다. 문제는 이 보초가 한 번도 교대하지 못했을 때입니다.
밤새 망을 보던 보초가, 날이 밝아도 교대해 줄 사람이 없어 그대로 낮 근무까지 들어가는 셈입니다. 너무 오래 깨어 있으니 작은 기척에도 화들짝 놀라고, 눈은 침침하고 머리는 멍합니다. 낮의 예민함과 집중 저하, 가시지 않는 피로의 정체가 바로 이것입니다. 잠자리가 편히 쉬는 자리가 아니라 경계해야 하는 자리로 거듭 짝지어지면, 누워도 보초는 망을 거두지 않고 그 경계가 낮까지 이어집니다.
그럼 약은 어떤 역할을 할까요. 수면제는 잠드는 것을 도와 깨는 횟수를 줄여 주니, 밤의 어려움을 더는 데 분명 힘이 됩니다. 다만 지친 보초에게 잠시 안대를 씌워 재우는 것에 가까워서, 왜 그가 교대도 없이 밤낮으로 서 있게 됐는지 그 까닭까지 바꾸지는 못합니다. 약을 줄이면 낮의 예민함이 슬며시 다시 고개를 든다는 분이 많은 것도 그래서입니다.
의지로는 좀처럼 꺼지지 않는 스위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보초는 어쩌다 한 번도 쉬지 못하게 됐을까요. 그리고 이제 그만 쉬어도 된다고 어떻게 알려 줄 수 있을까요. 마음먹는다고 풀리는 일이었다면 진작 풀렸을 것입니다. 경계를 켜고 끄는 일은 본디 의지의 손이 닿는 곳에서 벌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최면상담이 들여다보는 자리가 바로 거기입니다. 의식이 기억하지 못하는 무의식의 층으로 내려가, 그 경계가 맨 처음 켜진 순간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최면이 충분히 깊어지면, 깨어 있을 때는 들리지 않던 마음 안쪽의 기척이 비로소 들려옵니다. 그분도 그 경계가 어디서 시작됐는지를 따라 천천히 내려갔습니다.
최면 속에서 다시 만난 낯선 방 한구석의 아이
떠오른 것은 뜻밖에도 아주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었습니다. 말도 트이기 전, 또 짐을 싸던 집이었습니다. 이 집에서 저 집으로, 겨우 익숙해질 만하면 다시 낯선 방. 천장 무늬도, 문 여닫는 소리도, 골목의 냄새도 매번 처음이었습니다. 어린아이는 그 낯섦 한가운데서 ‘여기는 안전한가’를 살피느라 늘 작은 몸에 힘을 주고 있었습니다.
누구도 다그치지 않았지만, 아이는 한순간도 경계를 늦추지 않는 법을 스스로 익혔습니다. 어른들에게 이사는 번거로워도 지나가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막 배우던 아이에게는 마음 놓고 머물 곳은 없다는 것, 늘 살펴야 한다는 것이 몸에 새겨졌습니다. 그 뒤로 보초는 좀처럼 망을 거두지 않았고, 어른이 되어 번듯한 집과 자리를 갖춘 뒤에도 밤이면 어김없이 깨어 주위를 살폈습니다.
그분의 변화는 상담실에서 먼저 몸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장면을 충분히 보듬고 났을 때, 늘 귀 가까이 올라가 있던 어깨가 본인도 모르게 툭 내려앉았다고 합니다. 수십 년 힘주고 있던 자리가 처음으로 풀리는 순간이었습니다.
어른이 된 지금의 그분이, 그 낯선 방 한구석에 웅크린 아이 곁에 앉았습니다. 이제는 옮겨 다니지 않아도 되는 너만의 자리가 생겼다고, 그러니 그만 경계를 풀고 쉬어도 된다고 차근차근 일러 주었습니다. 오래 묵은 긴장이 그 곁에서 천천히 가라앉았습니다.
어느 오후, 아이가 같은 것을 세 번째 물었습니다
한 달쯤 지나 들려주신 이야기는 거창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오후, 집 아이가 같은 것을 세 번째 묻는데도 짜증이 올라오지 않더랍니다. 예전 같으면 두 번째에 벌써 목소리가 날카로워졌을 텐데, 그날은 한 번 더 차분히 대답하고 있는 자신을 뒤늦게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회의 중 남의 말이 또박또박 머릿속에 남는 것도, 퇴근길 몸이 예전만큼 무겁지 않은 것도 어느새 자연스러워졌다고요.
불면증을 밤의 문제로만 보면, 정작 삶을 무겁게 하는 낮의 증상을 늘 다른 핑계로 돌리기 쉽습니다. 예민한 성격, 약한 체력, 나이 탓으로요. 그러나 낮의 예민함과 멍함, 가시지 않는 피로가 밤새 꺼지지 않은 경계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들여다볼 곳은 잠을 청하는 밤이 아니라 그 경계가 처음 켜진 자리입니다.
한 가지만 가늠해 보셔도 좋습니다. 어쩌다 푹 잤다고 느낀 날에도 낮의 예민함과 멍함이 여전하다면, 그것은 잠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깨어 있는 동안에도 경계가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밤만 들여다보느라 낮을 놓쳐 오셨다면, 그리고 그 낮이 오래도록 무거우셨다면, 한 번쯤 물어볼 자리가 있습니다. 내 안의 보초는 언제부터, 무엇을 지키느라 한 번도 쉬지 못했을까. 그 자리에 닿아 매듭을 풀어 가다 보면, 낮을 짓누르던 무게도 한결 가벼워지시는 분이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