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베개를 세 번 바꿨어요. 라텍스도 써 보고 메모리폼도 써 보고,
매트리스까지 큰맘 먹고 새로 들였거든요.
침실 등도 노란빛으로 갈고 암막커튼까지 달았는데,
불을 끄고 눕는 순간부터 머릿속이 환하게 켜져요.
낮에 있었던 일, 내일 할 일, 몇 년 전 일까지 줄줄이 떠올라요.
몸은 솜처럼 무거운데 정신만 또렷해서, 천장만 보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 와 있고요.
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요? 잠자리는 손볼 만큼 손봤는데요.”
사십 대에 막 들어선 한 직장인이 상담실에서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잘 만한 조건은 다 갖췄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밤마다 똑같으니, 이쯤 되면 잠드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인가 싶어진다고요. 잠자리를 손볼수록 잠은 더 시험처럼 되어, 눕는 일 자체가 부담스러워졌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분께 먼저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원인이 바깥이 아니라 안쪽에, 그러니까 베개가 아니라 마음 쪽에 있을 수 있다고요. 마음이라니 의아하실 수 있습니다. 특별히 걱정거리가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하필 누우면 머리가 켜지느냐는 것입니다. 그 의문이 바로 실마리입니다.
낮에는 조용하던 걱정이 밤에만 켜집니다
낮 동안에는 일과 사람에 떠밀려 걱정이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그러다 불을 끄고 누우면, 비로소 조용해진 그 자리로 미뤄 둔 걱정들이 한꺼번에 밀려듭니다. 오래 잠을 설친 분에게는 이 일이 의지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일어납니다.
여기에는 과잉경계 도식이라 부르는 마음의 틀이 깔려 있습니다. 늘 무언가 잘못되지 않았나 미리 살피고 대비하려는, 일종의 기본 자세입니다. 이 자세를 지닌 분에게 잠자리는 점점 위험한 곳이 됩니다. 가장 무방비로 몸을 누이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잠 못 드는 밤이 거듭되는 사이, 잠자리와 걱정은 어느새 한 묶음이 됩니다.
비유하자면 오래 산 집에 밴 냄새와 같습니다. 가구를 새것으로 바꾸고 벽지를 다시 발라도, 집 자체에 배어든 냄새는 빠지지 않습니다. 냄새가 가구에 묻은 것이 아니라 벽 안쪽까지 스며 있기 때문입니다. 잠자리에 밴 걱정도 그렇습니다. 밖에 있을 땐 잊고 지내다가도, 눕는 순간 그 냄새가 코끝에 끼쳐오듯 걱정이 저절로 피어오릅니다. 그러니 베개와 매트리스 라는 가구를 아무리 바꿔도 밤은 그대로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새것을 들일 때마다 잠깐은 기댈 데가 생긴 듯해도, 그 기대가 식으면 밤이 어김없이 다시 길어집니다. 이 되풀이가 보인다면 손봐야 할 것은 잠자리가 아니라, 그 자리에서 켜지는 마음일 수 있습니다.
베개도 약도 닿지 못하는 자리가 있습니다
잠자리 환경을 가다듬는 일이 쓸데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빛과 소음을 줄이고 몸에 맞는 베개를 쓰는 일은 잠으로 드는 길의 잔돌을 치워 줍니다. 다만 잔돌을 다 치워도, 눕는 순간 걱정이 켜지는 그 점화에는 손이 닿지 않습니다.
수면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약은 밤의 들뜬 각성을 가라앉혀 잠으로 미끄러지기 쉽게 도와줍니다. 그래서 분명 보탬이 됩니다. 그러나 왜 잠자리에만 들면 걱정이 자동으로 켜지는지, 그 까닭까지 바꿔 주지는 못합니다.
그렇다면 그 점화는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걱정과 잠자리가 붙어 버린 자리는 의식보다 깊은 곳에 있습니다. 걱정하지 말자고 머리로 아무리 다잡아도, 그 다짐은 매듭이 놓인 깊이까지 내려서지 못합니다.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그곳은 본래 의지의 손이 미치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면상담은 바로 그 층으로 내려가, 걱정과 잠자리가 한데 묶인 매듭이 처음 지어진 자리를 찾아 들어갑니다.
최면 속에서 만난, 걸음마를 막 뗀 아이
그분도 그 자리를 찾아 내려갔습니다. 최면이 충분히 깊어진 뒤, 잠자리에서 늘 끼쳐오던 그 막막한 걱정을 가만히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러자 본인도 까맣게 잊고 있던 한 장면이 천천히 떠올랐습니다.
또렷한 사건이라기보다 몸이 기억하는 느낌에 가까웠습니다. 걸음마를 막 뗐을 무렵의, 아주 어린 날이었습니다. 무릎이 까지거나 컵을 떨어뜨리는, 그만한 작은 일이 생길 때마다 아이에게 돌아온 것은 괜찮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아이를 안은 팔은 안심시키기보다 먼저 굳었고, 어른의 얼굴에는 큰일이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그늘처럼 스쳤습니다.
아이는 그 굳은 팔과 그늘진 얼굴에서, 작은 일도 마음 놓아선 안 된다는 것을 말보다 먼저 배웠습니다. 마음을 턱 내려놓을 자리가 어디에도 없었던 셈입니다.
그 깊은 자리에서 그분은 어린 자신의 곁에 가만히 앉았습니다. 굳어 있던 작은 어깨를 감싸고, 이런 작은 일은 큰일이 되지 않으며 너는 무사히 다 자랐다고, 이제는 마음을 놓아도 된다고 천천히 일러 주었습니다. 누구도 건네주지 않았던 괜찮다는 말이, 뒤늦게 그 자리에 닿는 순간이었습니다.
한참 뒤, 그분이 손위 형제에게 지나가듯 물어보았습니다. 어릴 적 집 분위기가 어땠느냐고요. 돌아온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워낙 사소한 일에도 가슴을 졸이던 분이라, 집 안에 늘 ‘조심해라, 큰일 난다’는 말이 떠다녔다는 것입니다. 본인은 너무 어려 기억에도 없던 시절의 공기였습니다.
한 달 뒤, 밤이 다르게 지나갔습니다
매듭이 풀리고 한 달쯤 지났을 무렵입니다. 그날 밤 그분은 답장하지 못한 회사 메일 하나를 남겨 둔 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내일 한 소리 들으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곧장 켜져 뜬눈으로 밤을 새웠을 일입니다. 그런데 그 걱정이 평소처럼 피어오르려다, 어쩐 일인지 그대로 흩어졌습니다. 다음으로 기억나는 것은 커튼 틈으로 든 아침 햇살이었습니다. 밤이, 견뎌 내야 할 무엇이 아니라 그냥 지나가 버린 것입니다.
잠 못 이루는 밤은 베개나 매트리스의 문제처럼 보이지만, 그 뿌리는 훨씬 먼 시절에 밴 마음의 자세인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본인조차 그 시절을 떠올리지 못하니, 원인이 보이지 않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다만 기억에 없다고 해서 원인까지 없는 것은 아닙니다. 불면의 원인은 흔히 잠자리가 아니라, 그 잠자리에서 저절로 켜지는 마음에 자리합니다.
이제 그분에게 잠자리는, 무언가를 대비하며 버텨야 하는 자리가 아니라 하루를 내려놓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오늘도 새 베개를 검색하다 이 글에 닿으셨다면, 한 가지만 짚어 두고 싶습니다. 바꿔야 할 것이 잠자리가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베개를 또 하나 들이기 전에, 눕는 순간 저절로 켜지는 그 마음이 언제부터 그렇게 길들었는지 한 번쯤 돌아볼 일입니다. 그 자리에 다가가 매듭을 풀어 가면, 길기만 하던 밤이 한결 짧아졌다고 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