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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는 건 거의 다 사 봤어요. 백색소음이 나오는 것도,
빛으로 호흡을 맞춰 준다는 것도, 머리맡에 두면 진동이 오는 것까지요.
처음 며칠은 자는가 싶다가도, 일주일쯤 지나면 어느새 또 새벽 세 시에 눈이 말똥말똥해요.
천장만 보다 보면 날이 밝고, 낮에는 머리에 안개가 낀 것처럼 멍합니다.
도대체 뭘 더 들여야 잘 수 있는 걸까요?”
이 말을 꺼낸 분은 마흔 무렵이었습니다. 서랍 한 칸이 수면유도기로 가득 찰 만큼 좋다는 것은 다 써 봤지만, 검사에서는 몸에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달라지는 것이 없자 이제는 자신의 의지가 문제인가 싶어 자책하게 됐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가 이상합니다. 어떤 기기든 들일 때마다 처음 며칠은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다 약속이라도 한 듯 다시 잠 못 드는 밤으로 돌아옵니다. 제품이 시원찮아서라면 더 좋은 걸 찾으면 될 일입니다. 정말 문제가 기기에 있는 게 맞을까요.
어떤 몸은 눕는 순간 먼저 깨어납니다
여기서 무엇이 잠을 막고 있는지 짚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잠 못 드는 밤이 거듭되면, 우리 몸은 잠자리를 쉬는 곳이 아니라 긴장하는 곳으로 익혀 버립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조건화라고 부릅니다. 두 가지가 자꾸 짝을 이루다 보면, 하나가 다른 하나를 자동으로 불러오는 학습입니다.
오래 야근하며 앉아 있던 책상을 떠올려 보면 쉽습니다. 그 책상 앞에 앉기만 하면 일이 없어도 어깨에 저절로 힘이 들어갑니다. 그 자리가 일이 아니라 긴장과 짝지어진 탓입니다. 침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누우면 잠이 오는 게 아니라, 누우면 몸이 먼저 깨어 버립니다.
기기가 바꾸는 것과 바꾸지 못하는 것
수면유도기 같은 기기는 바로 이 지점에서 제 몫을 합니다. 소리와 빛과 진동으로 방 안 환경을 한결 부드럽게 만들어, 곤두선 몸을 잠시 이완 쪽으로 데려가 줍니다. 들인 첫 며칠 잠이 느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다만 기기가 바꾸는 것은 자리의 조명과 소리이지, 그 자리에 밴 긴장의 학습 자체는 아닙니다. 며칠 지나 몸이 새 환경에 익숙해지면, 잠자리와 긴장이라는 오래된 짝이 다시 고개를 듭니다.
그렇다면 잠자리와 긴장이 짝지어진 학습은 어디서 풀어야 할까요. 이 긴장은 오늘은 꼭 자자고 마음먹는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생각보다 먼저 몸에 새겨진 무의식 자동반응이라 의지나 기기만으로는 그 시작점에 닿기 어렵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몸이 잠자리를 처음 긴장과 묶어 버린 경험을 따라가 봅니다.
최면 속에서 다시 만난, 자리에 누운 아이
그분도 그렇게 원인을 찾아 들어갔습니다. 최면이 깊어져 의식이 한 발 물러서자, 누우면 늘 올라오던 곤두선 느낌을 따라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말도 채 트이지 않은 아주 어린 날이었습니다. 몸이 약해 자주 앓던 아이가, 그날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자리에 누워 있었습니다. 가슴이 답답하고 온몸이 욱신거려, 어디 한 군데 마음 놓고 늘어뜨릴 데가 없었습니다. 잠깐 잠이 들려다가도 기침이 터져 다시 깨고, 그때마다 작은 몸에 또 바짝 힘이 들어갔습니다.
아이에게 눕는다는 것은 쉬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또 어딘가 아파 올까 잔뜩 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아이의 몸에는 자리에 눕는 순간이 곧 통증과 불편을 견디는 때라는 감각이 남았습니다.
아픈 밤이 거듭되면서 아이에게는 몸을 마음 놓고 늘어뜨리는 감각보다, 눕자마자 불편을 살피는 반응이 더 익숙해졌습니다. 본인은 그 시절을 기억하지 못했지만, 상담에서는 침대에 누우면 기기부터 켜고 몸의 긴장을 확인하던 현재 반응과 이때의 경험이 같은 축에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기억나지 않는다는 것과 그 경험의 영향이 전혀 없다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지금의 그분은 아픈 몸으로 자리에 누워 있던 아이 곁에 머물렀습니다. 자려고만 하면 기침과 통증이 찾아와 얼마나 긴장했고, 몸의 힘을 풀면 다시 아플 것처럼 느꼈는지 먼저 알아주었습니다. 그때 실제로 아팠던 몸과 지금의 몸 상태는 다르며, 눕는 자세 자체가 통증을 불러오는 것은 아니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지금 불편한 신호가 있으면 살피고 필요한 도움을 받되, 별다른 신호가 없다면 몸을 받침에 맡기고 쉬어도 된다고 전했습니다. 아이는 눕는 것과 아픔의 시작은 다르며, 현재 몸의 신호를 확인한 뒤 힘을 풀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최면에서는 눕거나 쉬려 할 때 미리 몸을 긴장시키며 불편을 기다렸던 다른 관련 경험들도 함께 다뤘습니다. 과거의 아픈 몸과 현재의 몸을 구분하고, 실제 신호에 맞게 돌보거나 쉬는 이해를 넓혀 갔습니다. 상담을 마치고 어머니께 넌지시 여쭤보았더니, 정말 그랬다고 하셨답니다. 어릴 때 잔병치레가 잦아 밤마다 끙끙 앓는 아이를 안고 뜬눈으로 지새운 적이 많았다고요. 본인은 너무 어려 까맣게 잊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얼마 뒤, 머리맡이 조용해졌습니다
상담 뒤 그분은 잠자리에 들 때 무엇을 켤지 더는 신경 쓰지 않게 됐다고 전했습니다. 백색소음도 머리맡 진동도 켜지 않고 불만 끈 채 누웠습니다. 며칠 전 출장길에는 늘 챙기던 기기를 두고 온 사실을 이튿날 아침에야 알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것 없이는 한숨도 못 잔다고 여겼겠지만, 그날 밤 깊이 잤다는 사실이 본인도 신기했습니다.
혹시 좋다는 기기를 들일 때마다 처음 며칠만 반짝 자다가 도로 제자리로 돌아온다면, 한 번쯤 의심해 볼 만합니다. 문제는 더 좋은 제품이 없어서가 아니라, 잠자리에 오래 밴 긴장 쪽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잠은 무언가를 더 갖춰서 드는 것이 아니라, 몸이 자리를 다시 쉬는 곳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찾아옵니다. 그 자리에 긴장이 묶인 시작점에 다가가 매듭을 풀어 가면, 굳이 무얼 켜지 않아도 눕는 일이 한결 편안해지시는 분이 많습니다.
오늘 밤도 머리맡의 무언가를 만지작거리며 누우셨을지 모릅니다. 그것이 이번에도 며칠뿐일 것 같아 마음이 가라앉는다면, 정작 점검할 자리는 서랍 속 기기가 아닐 수 있습니다. 그보다 훨씬 안쪽, 잠자리가 긴장과 묶이던 그 자리인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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