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아침에 일어나면 목이 잔뜩 쉬어 있고 온몸이 뻐근해요.
그런데 저는 곤히 잔 기억밖에 없거든요.
옆에서 자던 아내는 제가 한밤중에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고
팔을 마구 휘두르는 통에 무서워서 깼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날은 침대에서 떨어질 뻔했대요. 저는 하나도 기억이 안 나는데,
자면서 대체 뭘 하는 걸까요?”
마흔을 갓 넘긴 한 분이 상담실에서 처음 털어놓은 말입니다. 정작 본인은 아무것도 보지 못하니 다른 증상보다 더 막막하다고 하셨습니다. 매일 밤 자기 몸이 무슨 일을 벌이는지 알 수 없고, 그저 아침에 남은 흔적으로 짐작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자면서 움직이는 증상, 병원부터 살펴야 하는 이유
이 증상을 두고 무엇보다 먼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자면서 소리치고 움직이는 일은 몸이나 뇌 자체에 원인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면클리닉이나 신경과를 찾아 수면다원검사 같은 검진으로 그런 원인이 없는지 살펴보는 일이 우선입니다. 이 글은 그 검진을 대신하지 않습니다.
낮에 풀지 못한 긴장이 밤에 새어 나올 때
검진에서 별다른 문제가 보이지 않는다면, 그때 함께 들여다볼 자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낮 동안의 마음입니다.
우리 마음에는 낮에 겪은 무서움이나 긴장을 그때그때 흘려보내는 길이 있습니다. 그런데 무서움이 너무 커서 어디로도 흘려보내지 못하면, 그 긴장은 빠져나가지 못한 채 안에 고입니다. 고인 긴장은 밤이 됐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낮의 의식이 잦아든 틈을 타 새어 나오기도 합니다. 잠든 동안 쉬고 있어야 할 몸이 그 긴장에 떠밀려 소리치고 팔을 휘두르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강한 무서움이 몸의 각성과 단단히 짝지어지는 것을 조건화라고 부릅니다. 위험을 살피는 뇌의 편도체가 그 무서움을 기억해 밤에도 경계를 늦추지 못하면, 한번 짝지어진 각성이 잠든 몸으로까지 번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은 본인이 잠든 사이, 의식이 닿지 않는 자리에서 벌어집니다. 그래서 “오늘 밤엔 가만히 자야지” 하고 아무리 다짐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병원에서 약으로 밤의 움직임을 가라앉히기도 합니다. 다만 들썩이는 몸을 진정시킬 뿐, 그 긴장이 왜 고이게 됐는지까지 풀어 주지는 못합니다.
최면 속에서 만난 어린 날의 오후
그렇다면 의지로도 약으로도 닿지 않는 그 자리는 어떻게 다룰 수 있을까요. 최면상담에서 하는 일이 바로 그 자리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의식이 기억하지 못하는 깊은 곳으로 내려가, 그 긴장이 처음 고이기 시작한 순간을 만나는 일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그분도 그 길을 따라갔습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밤마다 솟구치던 그 다급함이 어디서 오는지 더듬어 가자,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어린 날의 오후에 가 닿았습니다.
아직 말도 서툴던 무렵이었습니다. 잠깐 혼자 있던 사이, 아이는 난데없이 몹시 무서운 것과 마주쳤습니다. 너무 무서워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고, 작은 몸은 그대로 굳어 버렸습니다. 얼마 뒤 어른이 돌아왔지만, 아이는 무엇이 그토록 무서웠는지 말로 옮길 수가 없었습니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고, 무서움은 이미 지나가 버린 뒤였습니다.
그 무서움은 누구에게도 전해지지 못한 채, 작은 가슴 한구석에 그대로 담겼습니다. 흘려보낼 길을 찾지 못한 긴장이 그렇게 안에 고이기 시작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금세 지나간 한순간이었겠지만, 말도 못 하던 아이에게는 풀리지 못한 무서움으로 남았습니다. 그리고 의식이 단속하지 못하는 밤마다, 그 무서움은 몸의 움직임으로 조금씩 새어 나온 것입니다.
최면이 더 깊어진 자리에서, 어른이 된 그분의 마음이 그 오후의 아이에게 다가갔습니다. 무서워도 괜찮다고, 이제 그 무서운 것은 곁에 없다고, 네가 본 것을 내가 다 안다고 천천히 일러 주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닿지 못했던 그 무서움이 비로소 들어 주는 사람을 만난 순간이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던 어느 아침
몇 주 지나 다시 오셔서 들려주신 이야기는 대단한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아침 눈을 뜨니 목이 멀쩡했다고 합니다. 늘 쉬어 있던 목소리도 돌아왔고, 이불도 흐트러지지 않은 채였습니다. 옆에서 아내가 깨지 않고 자는 모습을 보고서야, 어젯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걸 뒤늦게 알아차렸다고 하셨습니다.
자면서 소리치고 움직이는 밤은 게으름이나 의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낮에 미처 풀지 못한 무서움이 밤의 몸을 빌려 새어 나오는 것일 수 있습니다. 남은 일은 그 무서움이 어디서 왔는지 찾아, 안에 고인 긴장을 풀어 가는 것입니다.
밤마다 자신도 모르게 소리치고 뒤척이느라, 아침이면 영문 모를 피로에 시달리고 계신가요. 먼저 병원에서 몸과 뇌를 살펴보시고, 그래도 답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쩌면 낮에 미처 흘려보내지 못한 무서움이 밤마다 당신을 대신해 깨어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 자리를 함께 들여다보는 길은 분명히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