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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는 멀쩡해요. 일도 다 하고, 사람도 만나고요.
그런데 불만 끄고 누우면 그때부터 시작이에요.
오늘 회의에서 내가 한 말, 내일 처리할 일, 아까 그 사람 표정까지
머릿속에서 끝도 없이 돌아가요. 그만 좀 하자 싶어 눈을 꽉 감으면,
이상하게 생각이 더 또렷해져요. 그러다 보면 어느새 새벽 두 시고,
다음 날은 종일 머리가 멍해요."
서른 후반의 한 직장인이 센터에 와서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낮 동안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점이 이분을 더 답답하게 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생각을 좀 내려놓으라거나 마음을 편히 먹으라고 합니다. 그 말이 맞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압니다. 문제는 내려놓는 방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마음을 먹어도 내려놓아지지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멈추려 애쓸수록 생각은 왜 더 끈질겨질까요. 그리고 왜 하필 자리에 누운 그 순간, 잠잠하던 머릿속이 깨어날까요.
누르려 할수록 솟구치는 생각
여기에는 반추라는 마음의 움직임이 있습니다. 반추란 끝나지 않은 생각을 머릿속에서 되풀이해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풀리지 않은 일이나 마음에 걸리는 장면을 자꾸 다시 꺼내 보는 일입니다.
물에 뜨려는 공을 손바닥으로 눌러 본 적이 있으실 겁니다. 누르면 잠깐 가라앉는 듯하다가, 손을 떼는 순간 더 세게 솟구쳐 오릅니다. 생각을 억지로 누르는 일도 이와 비슷합니다. 생각하지 말자고 누를수록 그 생각은 더 큰 힘으로 의식 위로 떠오릅니다.
낮에는 일과 사람, 눈앞의 할 일이 손바닥처럼 생각을 눌러 줍니다. 그러다 불을 끄고 누우면 그 손이 한꺼번에 사라집니다. 눌려 있던 생각들이 솟아오르는 자리가 바로 잠자리입니다. 이렇게 머릿속이 분주해지면 몸은 아직 처리할 일이 남았다고 받아들여, 잠들 채비 대신 깨어 있을 채비를 합니다. 생각이 잠을 밀어내는 것입니다.
명상도 약도 닿지 못하는 곳
그래서 자기 전 명상을 해 보고, 머릿속을 비우는 법을 연습하고, 따뜻한 차를 마셔 보기도 합니다. 이런 시도가 도움이 될 때도 있습니다. 다만 생각을 비우려는 노력 자체가 다시 생각에 집중하는 일이어서, 누르던 공을 더 세게 누르는 셈이 되기 쉽습니다. 약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면제나 신경안정제는 곤두선 몸을 가라앉혀 잠드는 데는 도움이 되지만, 생각이 왜 멈추지 못하게 됐는지 그 까닭까지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만이라고 외쳐도 소용이 없을 때
반추가 까다로운 점은, 의식이 그만이라고 외쳐도 그 말을 듣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멈추라는 명령이 닿지 않는 더 깊은 곳에서 저 혼자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의지가 약해서가 아니라, 애초에 의지가 닿는 층이 아닌 것입니다. 최면상담이 들여다보는 자리가 바로 그곳입니다. 의식이 미처 기억하지 못하는 무의식으로 내려가, 그 생각의 되풀이가 처음 몸에 밴 그때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최면 속에서 만난 그 밤의 아이
최면이 깊어지자, 이분은 누울 때마다 올라오던 그 분주한 느낌을 가만히 따라가 보았습니다. 그러자 본인도 까맣게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형편이 빠듯하던 집이었습니다. 밤이면 안방에서 부모님의 낮은 한숨과 돈 걱정이 새어 나왔고, 아주 어린 아이가 그 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다 알지도 못한 채, 아이는 우리 집은 괜찮을까, 내가 뭘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을 머릿속으로 자꾸 굴렸습니다. 어른들의 걱정을 어린 마음이 고스란히 떠안은 것입니다. 그 아이에게는 그렇게 걱정을 굴리는 일이 곧 식구를 지키는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걱정을 놓는 순간 무언가 잘못될 것만 같아, 잠자리에 누워서도 생각의 끈을 놓지 못했습니다. 그날의 분주함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누우면 저절로 되살아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깊은 최면 안에서, 지금의 이분이 그 어린 자신 곁에 앉았습니다. 어른들의 걱정은 어른들의 몫이었지 네가 떠안을 짐이 아니었다고 천천히 일러 주었습니다. 이제는 그 걱정을 잠시 내려놓고 눈을 감아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요. 어린 마음이 수십 년 짊어져 온 짐을 처음으로 바닥에 내려놓는 자리였습니다.
나중에 어머니께 그 시절 형편을 넌지시 여쭈어 보았다고 합니다. 그 무렵 집안이 많이 기울어, 밤마다 어른들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고요. 어린것이 어른처럼 엄마 우리 괜찮냐고 자꾸 물어 마음이 아렸다는 말씀도 하셨답니다. 본인은 전혀 기억하지 못하던 모습이었습니다.
생각을 붙잡지 않게 되기까지
한 달쯤 지나 들려주신 근황은 소박했습니다. 며칠 전 밤에도 낮에 마음 상한 일이 머릿속에 떠올랐습니다. 예전 같으면 한참을 곱십었을 텐데, 내일 생각하자 하고는 그대로 돌아누웠다고 합니다. 그러고는 그 생각을 붙잡지 않았다는 사실조차 다음 날 아침에야 알아차렸다고요. 머리맡에 늘 두고 밤마다 할 일을 적던 수첩에도, 요즘은 손이 잘 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잠자리의 잡생각은 의지가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생각의 되풀이가 의지가 닿지 않는 깊은 곳에서 저절로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더 세게 누르려 애쓰기보다, 그 되풀이가 언제 어떻게 몸에 배었는지 시작점을 찾는 편이 회복에 가깝습니다.
스스로 가늠해 볼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잠이 안 와서 생각이 많아지는 것인지, 생각이 멈추지 않아서 잠이 안 오는 것인지를 며칠만 살펴보십시오.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멀쩡하다가, 눕는 순간부터 생각이 켜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생각이 대개 풀리지 않은 걱정이나 끝내지 못한 일에 관한 것이라면, 단순한 수면 습관의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오늘 밤에도 불을 끄자마자 머릿속이 환해질 당신에게 전하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 생각의 스위치는 의지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습니다. 스위치가 처음 켜진 자리를 찾아 그 시작을 풀어 가면, 누워서 생각에 시달리던 밤도 조금씩 달라질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