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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 제일 무서워요.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눈이 떠지는데, 몸이 이불에 붙어서 안 떨어져요.
가슴 위에 젖은 모래주머니를 얹어 놓은 것 같고, 팔 하나 드는 것도 일이에요.
그렇게 한 시간을 누워 있다가 겨우 나가요. 그런데 이상하게 저녁만 되면 또 멀쩡해져요.
그래서 다들 제가 괜찮은 줄 알아요. 우울증이라는데 슬프지도 않고요.
제 우울은 도대체 무슨 종류인가요?"
몇 해째 이런 아침을 반복해 온 사십 대 초반의 한 분이 상담실에서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주변에서는 "요즘 다들 그래"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고, 본인도 처음에는 자신이 게을러진 것이라 생각해 자책했다고 합니다.
병원에서 우울증 진단을 받고 나서도 궁금증은 남았습니다.
우울증이라고 하면 슬프고 눈물이 나는 모습을 먼저 떠올리는데, 정작 자신은 슬프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우울증 종류’를 찾아봤습니다.
설명은 많았지만 정작 궁금한 점은 풀리지 않았습니다.
'아침에만 이렇게 무너지고 저녁에는 괜찮아지는 것도 우울증일까.
내가 겪는 우울은 어떤 모습에 가까운 걸까'
아침이 힘든 사람과 밤이 힘든 사람이 있습니다
우울증은 사람마다 나타나는 모습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아침이 가장 힘듭니다.
새벽에 일찍 눈이 떠지고, 아침에는 몸을 일으키는 것조차 힘듭니다. 그러다가 오후가 되면서 조금씩 나아지기도 합니다. 슬픔보다 몸이 무겁고 아무것도 하기 싫다는 느낌이 먼저 나타납니다.
반대로 낮에는 그럭저럭 생활하다가 저녁이 되면서 더 힘들어지는 사람도 있습니다.
해가 지기 시작하면 마음이 가라앉고, 혼자 보내는 저녁 시간이 두려워집니다. 낮에 있었던 일을 계속 떠올리며 후회하거나, 특별한 이유 없이 눈물이 나기도 합니다.
내가 언제 가장 힘든지 알고 싶다면 며칠 동안 간단히 적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아침에 가장 힘들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 나아지는지, 낮에는 괜찮다가 저녁이 되면서 더 힘들어지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며칠만 기록해 봐도 하루 중 언제 가장 힘든지 어느 정도 알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같은 말을 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이렇게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상담을 하다 보면 아침이 힘든 사람과 밤이 힘든 사람이 비슷한 말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는 뭔가 부족한 사람 같아요."
심리학에서는 자신과 세상을 바라보는 이런 오래된 생각의 틀을 ‘심리도식’이라고 부릅니다.
쉽게 말하면 오랫동안 반복되어 온 생각의 습관입니다.
마음속에 저울 하나가 있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저울에 자신을 올려놓습니다.
‘나는 잘했나?’
‘다른 사람보다 부족하지 않나?’
‘내가 이걸 할 자격이 있나?’
어떤 사람은 이 저울이 오래전부터 자신에게 불리한 쪽으로 기울어져 있습니다.
칭찬을 받아도 ‘그 정도는 누구나 하지’라고 생각하고, 작은 실수 하나만 해도 ‘역시 나는 부족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잘한 일은 금방 잊고, 못한 일은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아침이 힘든 사람은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오늘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며 자신을 평가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잘해야 하는데.’
‘또 못하면 어떡하지.’
반대로 밤이 힘든 사람은 하루가 끝난 뒤 그날 있었던 일을 하나씩 떠올립니다.
‘아까 그 말을 하지 말걸.’
‘나는 왜 그것밖에 못했지?’
힘들어지는 시간은 달라도 자신을 부족한 사람으로 바라본다는 점에서는 비슷할 수 있습니다.
그분도 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스무 살 무렵부터 무슨 일을 시작하든 가장 먼저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합니다.
‘내가 이걸 할 자격이 되나?’
약으로 현재 증상을 치료하는 것과 오래된 생각이 생긴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그분은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도 복용하고 있었습니다.
우울감이 심하거나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몸과 마음이 무거울 때는 병원 진료와 약물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현재 나타나는 증상을 치료하는 것과, 자신을 오랫동안 힘들게 해 온 생각과 감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서로 다른 과정입니다.
머리로는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음에서는 계속 ‘나는 부족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도 감정은 쉽게 따라오지 않는 것입니다.
체인지 심리최면상담센터에서는 깊은 최면중에 지금 느끼는 감정을 따라가면서 이런 생각이 언제부터 반복되기 시작했는지를 살펴봅니다.
어른들이 둘러앉은 방, 손뼉 소리가 멎던 순간
그분은 깊은 최면 상태에서 아침마다 가슴을 짓누르던 무거운 느낌에 집중했습니다.
그러자 아주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말이 아직 서툴던 때였습니다.
어른들이 방에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언니가 무언가를 해 보이자 어른들이 웃으며 손뼉을 쳤습니다.
아이도 언니를 따라 똑같이 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웃음이 금방 멈췄습니다.
누군가 짧게 한마디를 했습니다.
아이는 그 말을 정확히 이해할 나이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언니가 했을 때와 자신이 했을 때 어른들의 반응이 다르다는 것은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일이 몇 번이나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별 뜻 없이 웃고 지나간 일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아이는 다르게 받아들였을 수 있습니다.
‘언니는 잘하는데 나는 부족한가 보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무슨 일을 하든 ‘내가 부족하지 않을까’부터 생각하게 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일도 점점 익숙해집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자신을 계속 평가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아차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상담에서는 그분이 아침마다 느끼는 무거움과 어린 시절의 이런 경험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를 함께 살펴봤습니다.
그분은 아침에 눈을 뜨면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해야 할 일이 한꺼번에 떠올랐습니다.
오늘도 잘해야 하고, 실수하면 안 되고, 다른 사람보다 뒤처지면 안 된다는 부담이 먼저 밀려왔습니다.
하루를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평가를 받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최면상담에서 그분은 어린 시절의 그 장면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어른이 된 자신이 그 아이에게 다가갔습니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네 가치를 정할 필요는 없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날 어른들의 반응이 달랐던 것이 네가 부족했기 때문은 아니라고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익숙해진 비교와 자기평가를 다시 바라보는 과정이었습니다.
몇 주 뒤에 아침이 조용해졌습니다
몇주 뒤에 상담에 와서 그분이 들려준 이야기는 평범했습니다.
그런데 그 평범함이 오히려 중요한 변화였습니다.
요즘은 아침에 눈을 뜨면 그대로 일어나 앉는다고 했습니다.
창문을 열고 물을 끓이고 라디오를 켭니다.
예전에는 눈을 뜨자마자 늘 같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견디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그 생각이 먼저 떠오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얼마 전 회의에서는 동료가 낸 의견이 자신의 의견보다 더 좋아 보였다고 했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 일 하나로 하루 종일 동료와 자신을 비교했을 것입니다.
‘나는 왜 저런 생각을 못 했을까.’
‘역시 내가 부족한가.’
그런데 그날은 그냥 한마디 했습니다.
"그 안으로 하죠."
그리고 평소처럼 점심을 먹으러 갔다고 합니다.
우울증이 사람마다 어떻게 다르게 나타나는지 알아 두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됩니다.
내가 하루 중 언제 가장 힘든지 알고 있으면 그 시간에 맞춰 생활을 조절하거나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는 아침에 힘든 우울이구나’, ‘나는 밤에 힘든 우울이구나’라고 아는 것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시간에 어떤 생각과 감정이 반복되는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