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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이 세 번째입니다. 약을 먹고 좋아져서 끊었다가, 상담을 받으면서 또 좋아졌다가,
요즘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어요. 아침에는 알람을 예닐곱 번 끄고 나서야 겨우 몸을 일으키고,
저녁은 몇 술 뜨다 맙니다. 머리는 종일 멍한데,
회사에서 싫은 소리라도 들은 날은 밤새 그 말만 머릿속에서 맴돌아요.
이쯤 되면 우울증 치료 방법이 문제가 아니라 제가 문제인 것 같습니다."
학원에서 일하는 삼십 대 중반 여성분이 상담실에서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병원 진료와 상담을 오가며 지낸 지 오 년째라고 하셨습니다.
이 글에서는 우울증 치료 방법을 약과 일반 상담, 최면상담의 세 갈래로 나누어 각각 무엇을 돕는지 살펴보고, 좋아졌다가 왜 다시 돌아오는지를 짚어 보겠습니다.
이런 분들이 가장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은 다시 가라앉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닙니다. 좋아졌다가 다시 가라앉는 일을 몇 번 겪고 나면, 의심의 방향이 치료에서 자기 자신으로 옮겨 갑니다. 남들은 약으로 나아졌다는데 나는 왜 안 될까, 상담에서 들은 이야기를 내가 제대로 못 써먹은 걸까, 그러다 결국 내가 문제라는 생각에 이릅니다.
약과 상담으로 좋아졌던 시간
먼저 분명히 해 둘 것이 있습니다. 그동안 받아 온 치료가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우울증에 쓰는 약은 잠과 식욕의 변화, 가라앉은 기분처럼 지금 겪는 증상을 덜어, 아침에 일어나 하루를 이어 갈 수 있게 해 줍니다. 그분도 약을 드시고 나서야 다시 출근을 하셨다고 합니다. 바닥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이것은 없어서는 안 될 도움입니다.
상담도 마찬가지입니다. 힘들 때 떠오르는 생각을 밖으로 꺼내 놓고, 그 생각이 정말 사실인지 함께 따져 봅니다. 미뤄 두었던 일을 하나씩 다시 해 보면서 멈춰 있던 생활을 되돌리기도 합니다. 그분도 상담실에서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지만, 집에 돌아와 혼자 있으면 그때의 납득이 오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계기는 달라도 왜 같은 결론에 닿을까
그래서 남는 질문은 하나입니다. 왜 좋아졌다가 다시 가라앉을까요.
여기서 한 가지만 살펴보셔도 도움이 됩니다. 다시 가라앉을 때 무엇이 계기가 되었는지가 아니라, 그때 마음에 남는 결론이 무엇인지를 보는 것입니다. 계기가 된 일은 매번 다른데 마지막에 남는 생각은 늘 같을 때가 있습니다. 일이 어긋날 때마다 '역시 나는 안 된다'거나 '내가 문제다'로 끝난다면, 그 결론으로 이끄는 오래된 기준이 아직 남아 있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진단이 아니라 스스로 가늠해 보는 정도입니다.
이렇게 미리 나와 있는 결론을 심리학에서는 심리도식이라고 부릅니다. 말을 배우기도 전부터 겪은 일들을 통해 나는 어떤 사람인지, 내 마음은 꺼내도 되는 것인지가 미리 정해집니다. 그렇게 정해진 기준은 어른이 된 뒤에도 그대로 작동하곤 합니다.
오래된 집에서 방바닥이 한쪽으로 아주 조금 기울어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는 사람은 바닥이 기울었다는 걸 잘 모릅니다. 그런데 구슬을 어디에 놓든, 몇 번을 다시 놓든 늘 같은 구석으로 굴러갑니다. 심리도식은 이 기울기와 닮았습니다. 어떤 일이 생기든 생각이 한쪽으로 흘러가 결국 같은 결론에 닿습니다.
그분의 결론도 늘 같았습니다. 무슨 일이 생기면 '이 정도로 힘들어하는 내가 유별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회사에서 억울한 일을 겪어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상담에서조차 가장 힘든 이야기는 끝까지 꺼내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부엌에서 아이가 놓아 버린 옷자락
그럼 이 기울기는 왜 마음먹는 것만으로 바뀌지 않을까요. 그 기준이 만들어진 때가 기억이 시작되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의 일은 또렷한 장면으로 기억되지 않고 느낌과 반응으로만 남습니다.
기억나지 않는 경험은 의식적으로 떠올려 따져 볼 수 없습니다. 최면상담에서 다루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지금 되풀이되는 감정을 실마리로 삼아 그 반응이 처음 만들어진 경험까지 따라갑니다. 그리고 그때 아이가 혼자 내린 판정을 다시 다룹니다.
그분도 그 판정이 어디서 시작됐는지 찾아보기로 하셨습니다. 최면이 충분히 깊어지자, 말하려 할 때 목에 걸리던 느낌이 또렷해지면서 아주 어린 날의 저녁이 떠올랐습니다.
부엌이었습니다. 아이가 울먹이며 어른의 옷자락을 잡고 그날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합니다. 어른은 등을 돌린 채 그릇을 씻고 있었고, 물소리 사이로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러느냐는 말이 들려왔습니다. 아이는 하려던 말을 반쯤 하다 멈추고, 쥐고 있던 옷자락을 놓고 돌아섰습니다.
어른에게는 바쁜 저녁의 한 장면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말이 서툰 아이에게는 다른 것이 남았습니다.
내가 힘든 일은 입 밖에 꺼낼 만한 일조차 아니고, 이런 걸로 속상해하는 내가 유별나다는 판정이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힘든 일이 생기면 그 판정이 먼저 나왔고, 그래서 말을 삼킨 채 혼자 가라앉곤 했습니다.
깊은 최면상태에서 어른이 된 지금의 그분은 그 부엌에 어린시절의 자신과 함께 있었고, 아이 옆에 앉아 아이가 하려다 만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유별난 것이 아니라 누구라도 속상할 일이었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든 표현해도 괜찮다고 알려주었습니다.
회의에서 지적받은 그날 저녁
최면상담을 받은 후, 회사 회의에서 지적을 받은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퇴근길부터 몸이 무거워져 그 상태가 며칠씩 이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날은 지하철에서 회의 장면이 몇 번 떠오르기는 했지만, 집에 와 저녁을 차려 먹었고 다음 날 아침에도 평소처럼 일어났다고 합니다.
주말이 지나서야 이번에는 안 무너졌구나 싶었다고 하셨습니다. 같은 팀 동료가 요즘 말이 많아졌다며 웃었다고도 합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예전에는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삼키고 지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하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