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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내 방을 치우다가 바닥에 주저앉아서 한 시간을 울었어요.
슬픈 것도 아니에요. 그냥 가슴 한가운데가 뻥 뚫린 것 같아요.
아침에 눈은 떠지는데 몸이 물먹은 이불처럼 무거워서 못 일어나고, 밥도 안 넘어가요.
남들은 이제 좀 편해졌겠다는데, 저는 왜 이럴까요."
쉰 중반의 한 분이 센터에 오셔서 처음 꺼낸 이야기입니다. 둘째까지 기숙사로 들어간 것이 그해 봄이었다고 합니다. 삼십 년 가까이 새벽에 일어나 아침상을 차리던 그분은 하루가 통째로 비어 버린 채 집에 남았습니다.
중년 우울증이라는 말을 검색창에 처음 쳐 본 것도 그 무렵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고 하셨습니다. 애들 다 키워 내보내 놓고 힘들다고 하면 배부른 소리로 들릴 것 같아서였습니다. 그래서 혼자 자책했습니다. 이제 좀 쉬어도 되는 시간인데 왜 나는 이 시간이 무섭기만 할까.
늘 맨 뒤에 서는 사람이 있습니다
심리학에는 심리도식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릴 때 만들어져, 나와 세상을 바라보는 기본 틀로 굳어진 반응을 가리킵니다. 그 가운데 자기희생 도식은 자기 몫을 늘 뒤로 미루게 만드는 틀입니다.
이 틀이 있는 사람은 무엇을 정할 때마다 자기 순서를 맨 뒤에 세웁니다. 식구들이 먼저 먹고 남은 것이 자기 밥입니다. 옷을 사러 가도 아이 것만 고르고 돌아옵니다. 그렇게 수십 년을 줄 맨 뒤에 서 있다 보면 이런 일이 생깁니다.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드디어 자기 차례가 왔는데, 정작 무엇을 달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분의 하루도 그렇게 돌아갔습니다. 아이들 등교 시간에 맞춰 눈을 뜨고, 학원에서 돌아올 시간에 맞춰 저녁상을 차렸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이 뭐냐고 물으면 아이들이 잘 먹는 음식부터 말했습니다.
중년 우울증이 찾아오는 때가 대개 그 순간입니다. 돌볼 사람이 있는 동안에는 자기를 뒤로 미루고 있다는 사실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아침마다 깨울 아이가 있고 차려야 할 상이 있으니 하루가 저절로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역할이 한꺼번에 사라지면, 오랫동안 미뤄 둔 자기 몫이 그제야 눈앞에 드러납니다.
비어 버린 하루 앞에서 더 막막해졌습니다
나이 탓이라는 말도 듣고, 호르몬이 변해서 그렇다는 이야기도 듣습니다. 몸의 변화가 기분에 영향을 주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그 설명만으로는 왜 하필 아이 방이 빈 다음에 이렇게까지 무너지는지가 충분히 설명되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약이라는 말도, 취미를 하나 찾아보라는 조언도 자주 듣습니다. 그런데 막상 무엇을 배워 볼까 하고 앉으면 더 막막해집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떠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분도 주민센터에서 받아 온 강좌 안내문을 냉장고에 붙여 두고도 한참 동안 그대로 두었다고 하셨습니다.
자기 상태를 가늠해 볼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오랜만에 혼자 쓸 수 있는 반나절이 생겼다고 해 봅시다. 그때 하고 싶은 일이 바로 떠오르는지, 아니면 머리가 하얘지는지 보는 것입니다. 뭘 먹고 싶으냐고 물으면 ‘아무거나’라는 대답이 먼저 나오는 것도 비슷한 신호입니다. 의학적인 진단은 아니고, 자기 몫을 미루는 습관이 얼마나 오래됐는지 짐작해 보는 정도입니다.
병원에서 항우울제를 처방받아 드시는 분도 많습니다. 약은 가라앉은 기분을 끌어올리고 잠과 입맛을 돌려놓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분도 그 도움으로 아침이 조금 가벼워졌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이제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라는 물음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마음먹는 것만으로 순서를 바꾸기 어려운 이유가 있습니다. 자기를 뒤로 미루는 일이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몸에 밴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나를 먼저 챙기겠다고 결심해도, 막상 식탁 앞에 서면 손이 먼저 식구 그릇으로 갑니다. 이렇게 의식적으로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나오는 반응을 무의식의 자동반응이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최면상담에서 다루는 것은 결심이 아닙니다. 지금의 공허함과 이어져 있는 오래된 감정, 그리고 자기 순서를 뒤로 미루는 반응이 처음 만들어진 어린 시절의 경험을 함께 살펴봅니다.
최면 속에 떠오른 오래된 부엌
그분도 자기 순서가 어디서부터 뒤로 밀렸는지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최면이 충분히 깊어진 뒤, 가슴이 비어 있는 느낌이 가장 진해지는 순간을 짚어 가자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부엌 바닥이었습니다. 유치원에 가기도 전, 뚜렷한 기억이 남기 전의 나이였습니다. 어른들은 가게 일로 종일 바빴고, 아이는 두 살 어린 동생을 무릎에 앉히고 숟가락을 들고 있었습니다. 동생 입에 밥을 넣어 주고, 흘린 것을 닦고, 양말을 신기는 일이 아이 몫이었습니다.
아이 앞에도 접시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던 음식이었습니다. 동생 밥을 다 먹이고 나면 그 음식은 늘 식어 있었습니다. 아이는 이따 먹겠다며 접시를 옆으로 밀어 두었습니다. 그 이따는 자주 오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그 부엌에서 배운 것은 동생 밥 먹이는 법만이 아니었습니다. ‘내 것은 나중’이라는 순서도 함께 배웠습니다. 어른들은 착하다고 칭찬했고, 아이는 그 말이 좋아서 자기 몫을 더 열심히 뒤로 미뤘습니다.
그분은 그 장면을 보고 한참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동생을 돌본 일은 그때 집집마다 흔한 사정이었다고만 여겼다고 합니다. 지금 가슴이 비어 있는 것과 그 부엌을 연결해 볼 생각은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최면은 여전히 깊었습니다. 그분은 그 부엌으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동생을 끼고 있던 아이의 팔을 풀어 주고, 이건 네가 맡을 일이 아니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리고 식어 버린 음식을 담은 접시를 아이 앞으로 밀어 주며 지금 먹어도 된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국이 식기 전에 앉아 먹는 아침
요즘은 아침밥을 차리고 앉아서 드신다고 합니다. 삼십 년 동안 식구들 상을 다 차린 다음, 개수대 앞에 선 채로 남은 것을 먹던 분이었습니다. “국이 식기 전에 먹으니 맛이 이렇게 다르더라고요.”라고 하셨습니다.
며칠 전에는 딸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예전 같으면 밥은 먹었냐고 묻고 몸조심하라는 말로 끝냈을 통화였습니다. 그날은 딸이 요즘 뭐 하고 지내냐고 묻자 할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혼자 시장에 가서 여름 원피스를 하나 골라 왔다고, 색이 마음에 쏙 든다고 한참을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다 키워 놓고 찾아오는 헛헛함은 배부른 소리도, 나이 탓도 아닙니다. 수십 년 동안 뒤로 미뤄 둔 내 차례가 이제야 돌아온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앞에 서 본 적이 없으니, 무엇을 달라고 해야 할지 모르는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