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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일도 없었어요. 지하철에서 멍하니 서 있는데
갑자기 목이 뜨거워지더니 눈물이 툭 떨어졌어요.
설거지하다가도 그러고, 신호 기다리다가도 그래요.
참으려고 하면 코끝이 시큰하고 숨이 턱 걸려서 더 못 참겠어요.
사람들이 볼까 봐 고개를 숙이고 있으면 손끝까지 저리고,
그러고 나면 하루 종일 몸에 힘이 안 들어가요.
슬픈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제가 원래 이렇게 약한 사람이었나요?"
직장에 다니며 아이를 키우는 서른 후반의 한 분이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큰일을 겪은 것도, 누구와 크게 다툰 것도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눈물은 하루에도 몇 번씩 예고 없이 올라왔습니다. 회의 중에 눈이 뜨거워져 화장실로 피한 적도 여러 번이었습니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증상’을 검색해 봤다고 합니다. 우울증 자가진단을 몇 개 해 보니 어떤 날은 해당되는 것 같고, 어떤 날은 아닌 것 같아 더 헷갈렸습니다. 주변에서는 요즘 힘들어서 그렇다거나 원래 여린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위로하려고 한 말이었겠지만, 듣고 나면 결국 내가 약해서 그렇다는 결론만 남았습니다.
눈물은 가장 힘든 순간을 비켜갑니다
그런데 여기에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정말 마음이 약해서 눈물이 나는 것이라면 가장 힘든 순간에 나오는 게 맞을 겁니다. 하지만 이유 없이 눈물이 났던 때를 떠올려 보면 대개 그 반대입니다. 큰일을 치르는 동안에는 멀쩡하다가, 일이 다 끝난 뒤 아무렇지 않은 날 지하철 광고를 보다가 갑자기 터집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눈물은 그 순간에 슬픈 일이 생겨서 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안에 차 있던 감정이 아주 작은 자극에 밀려 나온 것입니다. 원인이 없는 게 아니라, 원인이 지금 이 순간에 있지 않은 것입니다.
겨울 지붕을 떠올려 보시면 쉽습니다. 눈이 쌓이는 동안에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볕이 조금 들면 지붕의 눈이 한꺼번에 미끄러져 내립니다. 그날 볕이 유난히 뜨거워서가 아니라, 그동안 쌓인 눈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입니다.
목에서 한 번 걸린 감정의 행방
그렇다면 감정은 왜 그때그때 흘러가지 못하고 쌓였을까요. 심리학에서는 어린 시절의 반복된 경험으로 만들어져, 지금도 마음이 자동으로 따르는 기본 규칙을 ‘심리도식’이라고 부릅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일로 우는 게 아니다’라는 규칙을 익혀 왔다면, 슬픔이나 서운함이 올라올 때마다 자기도 모르게 그 감정을 눌러 두게 됩니다. 참고 있다는 느낌조차 들지 않습니다. 목에서 한 번 걸린 채 그냥 지나갑니다.
지나갔다고 감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안에 남아 있다가 밤이 되면 같은 생각으로 돌아오고, 그렇게 조금씩 쌓입니다. 그래서 이유 없이 눈물이 나는 일은 마음이 약한 사람보다 오래 참아온 사람에게 더 자주 생깁니다. 잘 우는 사람이 아니라 잘 울지 못했던 사람이 어느 날부터 아무 데서나 울게 됩니다.
가늠해 볼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슬픈 일이 있어 흘리는 눈물은 울고 나면 후련해지고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반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눈물은 울고 나서도 후련하지 않고, 내가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이 하루 종일 따라다닙니다.
울고 나서도 후련하지 않다면, 원인을 지금 이 순간에서만 찾기는 어렵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것은 의학적 진단이 아니라 가늠해 보는 참고이니, 일상이 버거울 정도로 이어진다면 전문가와 상의해 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이런 상태로 병원을 찾으면 우울감의 정도에 따라 약을 권하기도 합니다. 약은 바닥까지 내려간 기분을 끌어올리고 하루를 버틸 힘을 만들어 주어, 실제로 도움받는 분이 많습니다. 다만 감정을 눌러 두게 만든 오래된 규칙은 약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루어야 합니다.
눈물을 참는 대신 그 규칙이 생긴 때를 찾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눈물을 참는 방법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눌러 두게 만든 그 규칙이 언제 어떻게 생겼는지를 찾아갑니다.
이 규칙은 말을 배우기도 전에 만들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도 떠오르지 않고, 마음먹는 것만으로는 바꾸기도 어렵습니다.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의식적으로 떠올리기 어려운 오래된 감정과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최면은 잠드는 것도, 누가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것도 아닙니다. 쉴 새 없이 떠들던 생각이 조용해지면서 그 아래 있던 오래된 기억과 감정이 또렷해지는 깊은 집중 상태에 가깝습니다.
그분 역시 눈물이 올라올 때 느껴지는 목의 뜨거움을 따라 원인을 찾아갔습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그 뜨거움이 언제 처음 시작되었는지를 짚어 가자,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늦은 오후, 손에 꼭 쥔 작은 인형
말이 겨우 트였을까 싶은 나이, 늦은 오후의 집 앞이었습니다. 아이는 손에 작은 인형을 꼭 쥐고 있었습니다. 놀러 온 다른 아이가 그것을 가져가려 하자, 어른이 웃으며 하나 주면 어떠냐고 하면서 아이의 등을 떠밀었습니다.
아이는 그것이 너무 아까웠습니다. 울음이 터지자 어른의 얼굴이 굳었습니다. 어른은 낮고 짧게 “뚝” 하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숨을 크게 들이켰고, 터져 나오던 울음이 목에서 그대로 멈췄습니다.
아이가 조용해지자 어른의 얼굴은 다시 부드러워졌고, 아이를 안아 올려 등을 토닥였습니다. 그 짧은 사이에 아이가 익힌 것은 슬픔을 견디는 법이 아니었습니다. 울음을 삼키면 어른이 다시 다정해진다는 것, 그러니 서운함은 안으로 넣어 두는 편이 안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기억에도 남지 않을 오후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 생긴 규칙은 그대로 남아, 이후 서운한 일이 생길 때마다 감정을 목에서 멈춰 세웠습니다. 그렇게 서른 몇 해 동안 감정은 지붕에 눈이 쌓이듯 안에 쌓였습니다.
그분은 상담을 마치고 어떻게 그 장면이 원인일 수 있느냐고 되물으셨습니다. 인형 하나 빼앗긴 일이 뭐가 그리 대단하냐고도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다시 꺼내는 동안 몇 번이나 말이 끊겼습니다.
최면이 이어지는 동안, 지금의 그분이 그 오후의 아이 곁에 앉았습니다. 아까워한 것도 서운해한 것도 잘못이 아니었다고 말해 주었습니다. 울음을 삼켜야만 어른이 웃어 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아이가 알아들을 때까지 천천히 일러 주었습니다. 그 장면 속에서 아이는 그때 멈췄던 울음을 마저 울었습니다.
상담실에서 그분은 내내 조용했습니다. 다만 최면 상담을 마치고 일어서면서 목이 하나도 막히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마음껏 울고도 저녁을 차린 날
요즘도 눈물이 아주 없어진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다만 눈물이 나는 때가 달라졌습니다. 지난달 아이의 어린이집 재롱잔치에서는 앞줄에 앉아 마음껏 울었습니다. 옆자리 엄마가 휴지를 건네자 웃으면서 받았다고 하셨습니다.
재롱잔치에서 나와 장을 보고, 집에 돌아와 저녁도 차렸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렇게 한 번 울고 난 날에는 하루가 통째로 가라앉았는데, 그날은 그렇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이유 없이 눈물이 날 때, 그 눈물은 마음이 약해졌다는 증거가 아닙니다. 오래 참아온 것이 있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신호를 지우려고 애쓰는 동안에는 쌓인 것이 그대로 남습니다. 무엇이 언제부터 쌓였는지를 찾아 풀어내야, 눈물도 울 만한 때에만 흐르고 지나갑니다.
오늘도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하루를 보내다가 신호등 앞에서 혼자 눈가를 훔치고 계시다면, 이 말씀만은 드리고 싶습니다. 약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동안 삼킨 것이 너무 많았을 뿐입니다. 삼킨 것은 다시 꺼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