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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게 안 돼요. 주말에 아무것도 안 하고 누워만 있었는데, 월요일 아침에 눈을 뜨면
금요일 밤보다 더 무겁습니다. 뒷목이랑 어깨는 돌덩이 같고, 커피를 세 잔 마셔도 머리가 안 켜져요.
회사에서는 모니터를 보고 있는데 글자가 그냥 지나갑니다.
게을러진 건가 싶어서 더 일찍 자 봤는데도 똑같았어요."
삼십 대 후반의 직장인 남성 한 분이 센터에 처음 오셔서 꺼낸 이야기입니다. 여름휴가로 일주일을 통째로 비웠지만, 돌아온 첫날 오후에는 이미 휴가 가기 전과 똑같았다고 하셨습니다. 병원에서 피검사와 갑상선 검사도 받아 보셨는데 수치는 모두 정상이었습니다. 검색창에 ‘번아웃 증상’을 입력해 본 것도 그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몸에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마음이 복잡해집니다. 남는 설명이 ‘내가 게을러졌다’ 하나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번아웃을 겪는 분들은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의심합니다. 예전만큼 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그러면 안 된다고 더 몰아붙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비교해 볼 것이 있습니다. 며칠 무리해서 생긴 피로는 하룻밤 푹 자고 나면 다음 날 아침의 몸이 분명히 달라집니다. 반면 쉰 다음 날 아침이 쉬기 전과 거의 같다면, 피로가 쌓인 문제라기보다 회복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의학적인 진단은 아니지만, 자기 상태를 가늠해 보기에는 쓸모 있는 기준입니다.
휴가지에서도 머릿속은 쉬지 못했습니다
그분도 쉬는 방법은 해 볼 만큼 해 보셨습니다. 잠을 늘려 보고, 주말 약속을 다 비워 보고, 영양제도 챙겨 드셨습니다. 휴가지에서는 일정을 하나도 넣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침대에 누우면 내일 처리할 목록이 저절로 떠올랐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으면 그것대로 마음이 급해졌다고 하셨습니다.
쉬는 시간을 늘리는 대처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몸을 회복시키는 데 잠과 휴식만 한 것도 없습니다. 다만 번아웃에서는 쉬는 시간이 늘어나도 몸이 그 시간을 쉼으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시간은 비었는데 몸은 계속 일하는 중인 셈입니다.
우리 뇌에는 어떤 일을 마쳤을 때 ‘됐다’는 감각을 만들어 내는 보상 회로가 있습니다. 이 회로가 작동하면 몸에서 힘이 빠지고, 그때부터 쉼이 시작됩니다. 학교에서 수업을 마치는 종이 울려야 아이들이 연필을 놓는 것과 비슷합니다. 종이 울리지 않으면 교실에 앉아 있어도 쉬는 시간이 아닙니다.
번아웃은 이 종이 잘 울리지 않게 된 상태입니다. 과부하가 오래 쌓이면 보상 회로가 둔해져서, 무엇을 해내도 마쳤다는 신호가 약하게만 옵니다. 그러니 쉬어도 채워지지 않고, 그럴수록 더 해야 할 것 같아 다시 과부하가 쌓입니다.
본인은 그걸 성격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왜 어떤 사람은 그 지경이 될 때까지 자기를 밀어붙일까요. 그분에게도 오래된 기준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느 정도 했으면 됐다’는 감각이 없어, 늘 부족한 쪽부터 보게 만드는 기준이었습니다. 본인은 그것을 그냥 성격이라고 알고 지내오신듯 합니다.
이런 기준은 마음먹는다고 바뀌지 않습니다. ‘이만하면 됐다고 생각하자’는 다짐은 생각의 영역에서 일어나지만, 부족한 쪽부터 찾아내는 마음속의 자동반응은 판단이 끼어들 틈도 없이 먼저 자동으로 일어납니다. 의지가 약해서 생기는 일이 아닙니다.
최면상담에서 다루는 것이 바로 이 자동반응입니다. 지금 반복되는 반응이 처음 만들어진 경험을 무의식에서 찾아가, 그때 새겨진 감정을 다시 다루게 됩니다. 오래된 감정이 풀리면 같은 상황에서 자동으로 일어나던 반응도 달라지게 됩니다.
최면 속에서 다시 만난 어린 시절의 거실
이분의 무의식 자동반응이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최면상담 과정에서 드러났습니다. 깊은 최면 상태에 들어가 이분은 일을 끝내고도 쉬지 못하는 조급함 느낌을 따라 마음속의 여행을 이어갔고, 예상치 못한 장면에 도착했습니다.
떠오른 곳은 어릴 때 살던 집 거실이었습니다. 3~4살 무렵의 기억하지도 못하던 시절 아이가 흩어진 장난감을 바구니에 다 담고 어른에게 다 했다고 알립니다. 어른은 바구니가 아니라 소파 밑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여기도 아직 남았잖아’ 하고 말합니다. 아이는 다시 엎드려 소파 밑에서 블록 몇 개를 꺼내 담습니다.
다 담고 나서 다시 알렸지만, 이번에는 바구니가 삐뚤게 놓였다는 말이 돌아옵니다. 아이가 바구니를 벽에 맞춰 밀어 놓자 어른은 고개만 한 번 끄덕이고 다른 일을 하러 갑니다. 아이는 그 앞에 앉아, 다음에는 어디가 남았을지 미리 살핍니다.
어른에게는 아이 방을 한 번 더 챙긴 저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이에게는 다른 것이 남았습니다. 다 했다는 말이 끝까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그래서 ‘끝났다’는 감각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았습니다. 마치는 종이 한 번도 울린 적이 없으니, 끝나는 느낌을 익힐 기회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이분은 무엇을 해내든 남은 쪽부터 찾는 습관이 자리잡아 갔습니다. 학교에서도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보고서를 보내고도 끝났다는 느낌 대신 ‘어디가 부족했을까’부터 떠올랐고, 그렇게 이십 년 넘게 한 번도 끝을 보지 못한 채 일해 오신 것입니다.
그 거실에 한 사람이 더 있었습니다
깊은 최면중에 그분은 과거의 어린시절 아이 곁에 찾아갔습니다. 바구니 앞에 앉은 아이 옆에 앉아 남은 곳을 같이 찾아 주는 대신, 아이가 담아 놓은 바구니를 함께 들여다보았습니다. 그리고 여기까지면 충분하다고, 아이가 다 들을 때까지 말해 주었습니다.
아이는 한참 그 말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고는 바구니를 그대로 둔 채, 처음으로 밖에 놀러 나갔습니다.
다음 상담에 오셔서 이분은 달리진 일상을 얘기하셨습니다. 요즘은 보고서를 보내고 나면 메일 창을 닫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보낸 편지함을 다시 열어 몇 번씩 읽고, 고칠 곳이 보이면 회수해서 다시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보내기를 누르고 자리에서 일어나 점심을 먹으러 나가신다고 합니다.
번아웃 증상은 일이 많아서 생기는 문제로만 보이지만, 실은 마치는 감각이 사라진 상태에 가깝습니다. 그 감각이 언제 사라졌는지 본인이 짚어내기는 어렵습니다.
주말을 다 비웠는데도 월요일 아침의 몸이 그대로라면, 쉬는 시간을 더 만드는 일보다 먼저 살펴야 할 것은, 몸이 쉼을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드는 자동반응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입니다. 그 반응은 스스로 떠올릴 수 없는 오래된 경험에서 시작되었을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룰 수 있는 길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