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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를 세 번 썼어요. 세 번 다 못 냈고요. 아침에 알람이 울리면 몸이 침대에 붙어서 안 떨어져요.
겨우 일어나 앉아도 어깨랑 뒷목은 밤새 뭉친 그대로고, 메일함을 여는 순간 명치가 콱 막힙니다.
주말 내내 누워만 있었는데 월요일 아침이 똑같아요.이 회사만 나가면 살 것 같은데, 사실 지금이 두 번째 회사예요. 앞에서도 똑같았거든요."
삼십 대 중반의 직장인 여성이 상담실에서 꺼낸 이야기입니다. 이 글에서 다루려는 것은 회사를 떠나야 하느냐 마느냐가 아닙니다. 회사를 옮겨도 같은 소진이 되풀이되는 사람에게, 번아웃을 극복하려면 무엇을 살펴봐야 하는지입니다.
번아웃이 오면 주변에서 가장 먼저 듣는 말은 쉬라는 말입니다. 실제로 쉬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분도 연차를 몰아 열흘을 쉬어 봤다고 합니다. 첫 이틀은 잠만 잤고, 사흘째부터는 누워 있는 것이 불편해서 밀린 집안일을 시작했다고 하셨습니다.
휴가가 끝나고 출근한 날, 몸은 쉬기 전과 거의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쉬어도 안 되니 환경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그분이 게을렀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앞선 회사에서도 똑같았다는 대목이 걸립니다. 업종도 사람도 달랐는데 결과가 같았다면, 소진을 만든 것이 회사 하나만은 아니라는 뜻이 됩니다. 그럼 남은 것은 무엇일까요.
남이 먼저가 된 마음의 순서
어느 순간부터 자신의 힘듦보다 남의 힘듦을 먼저 살피는 것이 익숙해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괜찮은지 묻기 전에 상대가 괜찮은지를 먼저 확인하고, 내 필요보다 다른 사람의 필요를 앞세우는 것입니다. 이런 마음의 순서가 오래 반복되어 하나의 익숙한 기준으로 굳어진 상태를 심리학에서는 ‘자기희생 도식’이라고 부릅니다.
이 순서가 굳으면 몸이 보내는 신호도 다르게 읽힙니다. 그만하라는 신호를 "아직 더 할 수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한계에 닿았다는 사실을 남들보다 한참 늦게, 대개는 이미 지나친 뒤에 알아차립니다.
그분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들은 못 하겠다고 그냥 말하던데, 저는 그 말이 입에서 안 나와요. 말하려고 하면 먼저 미안해져요."
짐을 늘 같은 쪽 어깨로만 지는 사람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가방을 새로 사도, 안에 든 것을 덜어 내도, 아픈 곳은 늘 같은 어깨입니다. 문제는 가방이 아니라 짐을 지는 자세이기 때문입니다.
회사를 옮기는 일은 가방을 바꾸는 일에 가깝습니다. 다만 지는 자세가 그대로면 새 가방을 멘 지 얼마 되지 않아 같은 어깨가 눌립니다. 그분이 두 번째 회사에서 겪은 일이 그것입니다.
생각보다 먼저 나오는 한마디
그럼 짐을 지는 자세를 고치면 되지 않느냐고 물으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순서는 마음먹는다고 잘 바뀌지 않습니다. 생각해서 정하는 일이 아니라, 생각으로 판단하기 전에 먼저 마음속에서 튀어나오는 자동반응이기 때문입니다. 동료가 곤란한 표정을 짓는 순간 "제가 할게요"가 먼저 나오고, 힘들다는 감각은 그 뒤에야 뒤늦게 도착합니다.
그래서 체인지 심리최면상담센터의 최면상담에서는 지금 반복되는 자동반응을 붙잡고 씨름하는 대신, 그 반응과 연결되어 있는 무의식 속 오래된 감정을 탐색합니다.
커튼이 반쯤 쳐진 어느 낮
그분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최면이 충분히 깊어졌을 때, 어깨가 눌리는 그 느낌이 언제 처음이었는지 탐색해 갔습니다. 떠오른 것은 회사가 아니라, 아직 말이 서툴던 어린 시절의 어느 낮이었습니다.
어머니가 이불을 덮고 누워 있었습니다. 방은 조용했고 커튼은 반쯤 쳐져 있었습니다. 아이는 늘어놓은 장난감을 하나씩 주워 벽 쪽에 모았습니다. 배가 고팠지만 부르지 않았고, 놀아 달라는 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한참 뒤 어머니가 눈을 뜨고 아이를 봤습니다. 그리고 힘없는 목소리로 한마디 했습니다. "우리 딸이 착해서 엄마가 산다." 아이는 그 말이 좋아서 더 조용해졌습니다.
그날 낮의 일은 그분의 기억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몸은 조용히 있으면 어머니가 편해지고, 배고프다는 말은 꺼내지 않는 편이 안전하다는 것을 먼저 익혔습니다.
어른이 되어 회사에 들어간 뒤에도 순서는 똑같았습니다. 남이 힘든지를 먼저 확인하고, 내가 힘든지는 나중으로 미뤘습니다. 그 나중은 대개 오지 않았습니다.
깊은최면 중에 그분은 그 방으로 들어가, 장난감을 줍고 있는 아이 옆에 앉았습니다. 배고프면 배고프다고 말해도 된다고, 그 말을 한다고 엄마가 더 아파지지는 않는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아이가 어머니를 부르고 어머니가 웃으며 대답하는 장면까지 보고 나서야, 그분은 길게 숨을 뱉었습니다.
저녁 일곱 시, 아직 남아 있던 해
요즘 그분은 같은 회사에 다닙니다. 달라진 것은 금요일 저녁입니다. 예전에는 남은 일이 있으면 다들 퇴근한 사무실에 혼자 불을 켜 두고 앉아 있었습니다. 지난주에는 팀장이 새 일을 꺼내자, 월요일 오전까지 정리해서 드리겠다고 말하고 노트북을 덮었다고 합니다.
회사를 나선 시각이 저녁 일곱 시였습니다. 그 시간에도 아직 해가 남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뒤 서랍을 정리하다가 접어 둔 사직서를 발견하고는, 이걸 왜 여태 넣어 뒀나 싶어 그대로 버렸다고 합니다.
지금 번아웃 극복을 고민하고 계시다면, 오늘 하루로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마음이 편한지, 아니면 불편한지입니다. 쉬는 것 자체가 불편해서 자꾸 무언가를 찾아 하게 된다면, 부족한 것은 휴식이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사직서를 썼다 지웠다 하고 계신다면, 그 마음은 나약함도 변덕도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몸이 보내던 신호를 이제야 알아들은 것에 가깝습니다. 다만 회사를 옮긴다고 짐을 지는 자세까지 바뀌지는 않습니다. 가방은 오늘이라도 바꿀 수 있습니다. 정작 먼저 살펴봐야 할 것은 짐을 지는 자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