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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씻는 것도 큰일이에요. 머리를 감아야 하는데 그 생각만 해도 벌써 지쳐요.
소파에 앉으면 몸이 가라앉는 것처럼 안 일어나지고, 팔을 들어 올리는 것도 힘이 들어요.
배가 고픈데 뭘 꺼내 먹는 게 더 귀찮아서 그냥 굶은 날도 많아요.
예전엔 안 이랬는데, 제가 왜 이렇게까지 게을러진 걸까요."
이 말을 꺼낸 분은 삼십 대 중반의 직장인 여성이었습니다. 출근은 겨우 하지만, 퇴근하고 나면 현관에서 신발만 벗어 둔 채 그대로 앉아 있는 날이 늘었다고 하셨습니다. 주말에는 이틀 내내 씻지 않은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무기력을 겪는 분들이 가장 자주 듣는 조언은 '마음을 다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누구보다 자신을 다그치고 있습니다. 오늘은 꼭 씻자고 아침마다 다짐하고, 그 다짐을 지키지 못한 저녁마다 스스로를 탓합니다.
그럼 정말 힘이 없어서일까요. 그렇다면 푹 자고 일어난 날에는 조금이라도 나아야 합니다. 그런데 잘 쉰 다음 날 아침에도 세면대 앞에서 똑같이 멈춰 선다면, 모자란 것은 힘이 아닙니다.
무기력증 극복은 남은 힘을 더 짜내는 데서가 아니라, 하고 싶은 마음이 왜 일어나지 않는지를 찾는 데서 시작됩니다.
세면대 앞에서 드러나는 작은 단서
내가 지금 단순히 지쳐 있는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를 시작할 마음의 힘까지 떨어진 것인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작은 단서가 있습니다. 몸에 힘이 부족할 때는 보통 힘이 많이 드는 일부터 버거워집니다. 그런데 세수나 양치처럼 큰 힘이 필요하지 않은 일조차 시작하기 어렵다면, 단순히 체력이 떨어진 것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몸의 에너지보다 행동을 시작하게 하는 의욕이나 동기 자체가 떨어져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만으로 어떤 상태를 진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스스로를 살펴보는 하나의 참고 기준일 뿐입니다.
그분도 방법을 안 찾아본 것이 아니었습니다. 할 일을 잘게 나눠 적어 두라는 조언대로 목록을 만들었고,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도 몇 달째 먹고 있었습니다.
목록도 약도 각자 하는 일이 있습니다. 목록은 시작의 문턱을 낮춰 주고, 약은 가라앉은 기분을 끌어올리고 수면과 식욕이 조금씩 나아지도록 돕습니다. 다만 문턱을 낮추는 것과 실제로 몸이 움직이는 것은 다른 일이어서, 그분의 목록은 며칠 만에 다시 밀렸습니다.
기름은 남아 있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을 때
이 상태를 설명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뇌에서 무언가를 하고 싶게 만들고 몸을 그쪽으로 움직이게 하는 부분을 보상-동기 회로라고 부릅니다. 이 회로가 둔해지면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잘 올라오지 않습니다. 쓸 힘이 남아 있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동차에 빗대면 이해가 빠릅니다. 기름은 절반쯤 남아 있는데 시동이 걸리지 않는 상태입니다. 밖에서 보면 그냥 서 있는 차처럼 보이지만, 운전석에서는 시동을 걸어보려고 키를 돌리고 또 돌리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왜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것만으로는 쉽게 달라지지 않을까요. ‘해 봐야 소용없다’는 생각이 단순히 머리로 내린 판단이라면, 생각을 바꾸고 새로운 경험을 쌓으면서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반복된 경험 속에서 몸과 마음이 익혀 버린 습관은, 머리로 ‘이제는 그렇지 않다’고 이해하는 것만으로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지금 반복되는 자동반응이 어떤 무의식 감정이나 경험과 연결되어 있는지 탐색하고, 그 경험 속에 남은 감정을 풀어갑니다.
최면 속에 떠오른 방 한쪽의 상자
깊은 최면 중에 아침마다 몸이 굳을 때 느끼던 답답한 느낌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탐색해 갔습니다. 그러자 예상치 못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말을 겨우 몇 마디 하던 어린 시절, 방 안이었습니다. 어른 허리쯤 오는 상자가 방 한쪽에 놓여 있었고, 아이는 그것을 밀어서 옮기려고 했습니다. 상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문 쪽을 보며 도와 달라고 불렀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거실에서는 어른들의 발소리와 그릇 소리가 계속 오갔습니다. 그날 집안은 몹시 바빴고, 아무도 방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한참을 더 밀다가 손을 놓았고, 상자를 그대로 둔 채 구석에 가서 앉았습니다.
집 안이 바빴고 아이가 여러 번 불렀지만, 그 장면에서는 왜 아무도 오지 않았는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아이에게 남은 것은 아무리 불러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는 것, 혼자 힘으로 안 되는 일은 결국 그대로 남는다는 결론이었습니다. 기다리다 지친 아이는 다시 부르거나 다른 사람을 찾기보다 먼저 포기하는 쪽으로 물러났습니다. 시도하지 않으면 더 기다리며 실망할 일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밀어도 움직이지 않고 불러도 오지 않는 경험이 여러 번 겹치면, 애쓰기 전에 힘부터 빼는 반응이 익숙해집니다. 어른이 되어 세면대 앞에서 몸이 멈춰 서는 것도 같은 반응입니다. 다만 본인은 그때 일을 기억하지 못했으니, 그저 자신이 게을러졌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지금의 그분은 상자 앞에 주저앉은 아이 곁에 머물렀습니다. 몇 번이나 불렀는데 아무도 오지 않아 얼마나 막막하고 서운했는지 먼저 알아주었습니다. 그날 아무도 오지 않은 이유는 아이가 알 수 없었으며, 한 번 도움을 받지 못한 일이 아이가 도움받을 가치가 없거나 앞으로도 늘 혼자 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혼자 하기 어려우면 잠시 쉬었다가 다시 부르거나 다른 어른을 찾고, 일을 나누거나 나중으로 미뤄도 된다는 선택도 전했습니다. 아이는 바로 응답이 없다고 시작한 일을 포기할 필요는 없으며, 상황에 맞게 다른 도움과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게 됐습니다. 최면에서는 도움을 기다리다 실망할까 봐 부탁도 시작도 먼저 접었던 다른 관련 경험들도 함께 다뤘습니다. 한 번의 무응답을 모든 시도의 결론으로 삼지 않고, 지금 가능한 도움과 다음 행동을 다시 고르는 이해를 넓혀 갔습니다.
각오 없이 시작되는 아침
상담 뒤 그분은 눈을 뜨면 욕실로 들어가 머리를 감고, 수건을 널고, 밥을 차려 먹은 뒤 집을 나선다고 전했습니다. 각오를 다지는 시간은 따로 없었습니다.
주말에는 미뤄 두었던 겨울옷을 꺼내 세탁기를 돌렸고, 오래 답장하지 못했던 친구에게 먼저 연락해 약속을 잡았습니다. 씻는 일도 더 이상 하루의 큰 과제가 아니었습니다.
무기력은 힘이 다 떨어져서 생기는 일처럼 보이지만, 아주 이른 시기에 애써 봐야 달라지지 않는다고 몸으로 배운 경험에서 비롯되기도 합니다. 기억나지 않는 시절에 만들어진 반응이라 지금의 자신을 아무리 다그쳐도 잘 바뀌지 않습니다.
오늘도 머리를 감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하루가 무겁게 느껴졌다면, 그것은 게을러져서가 아닙니다. 아무리 밀어도 움직이지 않았던 경험 속에서 몸이 익힌 반응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것은 마음을 다잡는 일이 아니라, 그 반응이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오래된 경험을 돌아보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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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인지 심리최면상담센터의 원인중심 최면상담이 어떤 원리로 진행되고, 무의식 원인과 자동반응을 어떻게 탐색하고 다루는지 궁금하다면 아래 글에서 자세히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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