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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은 떠지는데 몸이 안 일어나요. 겨우 일어나 씻고 나면 그걸로 하루 힘을 다 쓴 것 같아요.
어깨는 눌린 것처럼 무겁고, 하루 종일 방바닥에 앉아 휴대폰만 보다가 저녁이 됩니다.
그런데 그 휴대폰도 재미가 없어요. 남편은 왜 이렇게 늘어져 있느냐고 하는데
저도 제가 게을러진 건지 어디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요."
서른아홉 살 된 분이 상담실에서 들려준 이야기입니다. 집에서 번역 일을 하시는데, 마감이 코앞인 원고를 사흘째 열지 못하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일을 미룬 날이면 저녁에 드라마라도 몰아 봤는데, 요즘은 그것도 손이 가지 않는다고요.
쉬었는데도 쉰 것 같지 않은 날
의욕이 없을 때 가장 먼저 따라붙는 말은 게으름과 나태함입니다. 본인도 자신을 그렇게 부르고, 곁에서 보는 사람도 그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이 둘은 겉모습만 닮았을 뿐 속이 다릅니다.
게으름은 하고 싶은 일이 분명히 있는 상태입니다. 청소를 미루면서 게임을 하고, 공부를 미루면서 친구를 만납니다. 하기 싫은 일을 미루는 동안에도 좋아하는 일은 계속합니다.
의욕이 없을 때는 그 좋아하던 일까지 같이 시들해집니다. 미루고 남은 시간에 무엇을 할지 떠오르지 않고, 재미있던 것을 틀어 놓아도 마음이 붙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루를 통째로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습니다.
가늠해 볼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아무 일정이 없는 주말에 하고 싶은 일이 하나라도 떠오르는지 살펴보시면 됩니다. 떠오르는데 몸이 안 따라오는 것과, 떠오르는 것 자체가 없는 것은 다릅니다.
몇 번 헛걸음한 가게 앞에서
뇌에는 무언가에 마음이 끌리게 만드는 회로가 있습니다. 학계에서는 보상과 동기를 다루는 회로라고 부릅니다. 무언가를 해 봐서 좋았던 경험이 쌓이면 이 회로가 잘 반응하고, 해 봐야 소용없던 일이 거듭되면 반응이 무뎌집니다.
몇 번 헛걸음한 가게를 떠올려 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갈 때마다 문이 닫혀 있으면 처음에는 아쉽지만, 몇 번 반복되고 나면 그 앞을 지나면서도 들여다보지 않게 됩니다. 가고 싶은 마음을 참는 것이 아니라, 가고 싶다는 생각이 아예 떠오르지 않습니다.
의욕이 없을 때 마음에서 벌어지는 일이 이와 비슷합니다. 힘이 모자라서 못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다는 신호가 잘 켜지지 않는 것입니다.
그분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머리로는 알아요. 일어나서 원고 파일을 열면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걸 생각하는데도 아무 마음이 안 들어요. 하기 싫은 것도 아니고 그냥 아무 마음이 없어요."
그래서 마음을 다잡으라는 조언은 잘 먹히지 않습니다. 그 말은 하고 싶은 마음이 남아 있는 사람에게 맞는 처방입니다. "딱 오 분만 해 보라"는 방법도 며칠은 통하지만, 그 오 분을 시작할 마음이 안 나는 날이 다시 옵니다. 그러면 "역시 내가 문제구나"라는 결론만 하나 더 쌓입니다.
잠이 무너지거나 가라앉은 기분이 오래간다면 병원 진료를 함께 받는 편이 좋습니다. 약은 처진 몸과 기분을 끌어올려 하루를 꾸려 가게 해 줍니다. 다만 하고 싶은 마음이 언제부터 이렇게 안 켜지게 되었는지는 따로 찾아봐야 하는 일입니다.
마음을 다잡아도 다시 멈추는 순간
그럼 하고 싶은 마음은 어떻게 다시 생길까요. 문제는 이 마음이 명령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지금 당장 저 일이 하고 싶어지라고 자신에게 아무리 일러도, 그런 마음이 생기지는 않습니다.
이런 반응은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 경험을 통해 익힌 무의식의 자동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지금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와 이어져 있는 오래된 경험과 감정을 최면 속에서 다시 다룹니다.
그분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최면이 충분히 깊어진 뒤, 무언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질 때 올라오는 맥 빠지는 느낌을 짚어 보자 뜻밖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최면 속에서 마주한 식탁 앞의 아이
아직 말이 서툴던 시절, 집 식탁 앞이었습니다. 아이가 접시 쪽으로 손가락을 뻗어 먹고 싶은 것을 가리킵니다. 어른이 그건 안 된다고 하며 다른 것을 집어 아이 앞에 놓아 줍니다.
다음에도 그랬고, 그다음에도 그랬습니다. 아이는 언젠가부터 손가락을 먼저 내밀지 않습니다. 무엇을 줄지 기다렸다가 주는 대로 먹습니다.
어른에게는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가 약하니 딱딱한 것은 안 된다거나, 저녁을 앞두고 단것은 곤란하다거나 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말이 채 트이지 않은 아이는 그 이유까지 알아듣지 못합니다. 아이에게 남은 것은 하나였습니다. 내가 먼저 원하는 것을 말하면 "안 된다"는 대답이 돌아온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식탁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원하는 것을 먼저 말하지 않는 방식이 몸에 배면, 나중에는 원하는 것을 떠올리는 일 자체가 줄어듭니다. 어른이 된 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던 상태는 이 경험과 이어져 있었습니다.
어른이 된 그분이 최면 속에서 그 식탁 곁에 섰습니다. 아이에게 먹고 싶은 것을 말해도 되고, 그건 잘못이 아니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가리켰던 것을 접시에 담아 아이 앞에 놓아 주었습니다.
시장 바구니 속 딸기 한 상자
요즘 그분은 토요일 아침에 시장에 갑니다. 지난주에는 장바구니에 딸기 한 상자를 담아 왔다고합니다. 누가 사 오라고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먹고 싶어서 직접 장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저녁에 딸기를 씻어 내놓자 남편이 웬일이냐며, “당신한테 뭘 먹고 싶다는 말을 들은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다”고 했답니다. 밀려 있던 원고도 다시 손에 잡혔습니다. 마감을 앞두고 파일을 여는 일이 예전만큼 무겁지 않다고 하셨습니다.
의욕이 없을 때 우리는 가장 먼저 자기 자신을 의심합니다. 게을러진 건 아닌지, 마음이 약해진 건 아닌지 묻습니다. 그런데 게으름은 하고 싶은 것이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하고 싶은 것까지 함께 사라졌다면, 마음을 다잡는 힘이 모자란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반응이 오랫동안 무뎌져 있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