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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이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어제도 회의 중에 화면 앞으로 나가 숫자 하나 짚는데
마커를 쥔 손이 저 혼자 흔들렸어요. 다들 화면을 보고 있는데 저는 제 손만 보고 있었고요.
병원에서는 아무 이상 없다고 하는데, 그럼 이건 뭔가요."
회사 생활 이십 년째인 남성분이 상담을 신청하며 들려주신 이야기입니다. 손떨림 원인을 찾겠다고 병원 두 곳을 다니며 피검사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결과는 두 곳 다 이상이 없었습니다. 아픈 데가 없다는 말은 반가운데, 정작 손이 왜 떨리는지는 아무도 알려 주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그 뒤로 검색창에 손떨림 원인을 넣고 밤늦게까지 글을 읽었습니다. 갑상선을 확인해 보라는 글도 있고, 커피를 줄이라는 조언도 있고, 나이 탓이라는 말도 있었습니다. 읽을수록 답답한 것은 어느 쪽도 자기 이야기 같지 않다는 점이었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글씨도 젓가락질도 멀쩡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보는 순간 달라지는 손
한 가지는 먼저 짚고 가야 합니다. 떨림이 가만히 쉬고 있을 때도 나타나거나, 시간이 갈수록 심해지거나, 글씨와 젓가락질처럼 혼자 하는 일에서도 불편하다면 병원에서 원인을 확인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 글은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는 말을 이미 들은 분들의 이야기입니다.
몸의 문제로 생긴 떨림은 보는 사람이 있든 없든 대체로 비슷하게 나타납니다. 반면 상황을 타는 떨림은 모양이 바뀝니다. 방에서 혼자 글씨를 쓸 때는 반듯한데 창구 직원이 지켜보면 이름 석 자가 흔들리고, 집에서는 멀쩡하던 젓가락이 회식만 가면 어긋납니다. 의학적인 감별은 아니지만 자신의 떨림이 어느 쪽에 가까운지 가늠해 보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그분도 정확히 그런 경우였습니다. 혼자 서류를 쓸 때는 아무렇지 않은데, 누가 옆에서 보고 있으면 볼펜 끝이 종이 위에서 흔들렸습니다. 그래서 더 억울했습니다. 몸이 아픈 것도 아니고 마음이 약해서도 아닌 것 같은데, 손은 매번 사람들 앞에서만 제멋대로 움직였습니다.
회의실에서 켜지는 몸의 경보
사람이 위험을 만나면 뇌 깊은 곳의 '편도체'라는 부위가 경보를 울립니다. 편도체는 지금 안전한지 쉬지 않고 살피는 곳이며,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온몸에 힘을 모읍니다. 심장이 빨라지고 근육이 단단해지는 것은 달아나거나 맞서기 위한 준비입니다.
문제는 몸이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도 그 상황에서 가만히 있어야 할 때 생깁니다. 회의실에서 도망칠 수는 없으니 몸에 모인 힘은 나갈 데가 없습니다. 브레이크를 밟은 채 액셀을 함께 밟으면 차는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차체만 부르르 떱니다. 손끝의 떨림도 이와 비슷합니다.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달아나거나 맞서려고 모인 힘이 빠져나갈 데를 찾지 못해 떨림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의실도 회식도 실제로 위험한 곳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편도체는 왜 그런 상황에서 경보를 울릴까요. 어떤 상황이 위험한지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익히기 때문입니다. 한번 위험으로 익혀 둔 상황은 다음에 비슷한 상황이 오기만 해도 저절로 경보를 켭니다.
숨을 길게 쉬거나 손에 힘을 빼는 방법은 이미 올라온 긴장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분도 회의 전에 화장실에서 숨을 고르고 들어갔습니다. 다만 두 방법 모두 경보가 울린 다음에 쓰는 대처라서, 그 상황을 위험으로 익혀 둔 학습은 그대로 남습니다. 다음 회의에서 경보는 또 울립니다.
그러면 그 학습은 어떻게 다루어야 할까요. 마음먹는 것만으로는 잘 되지 않습니다. 위험한지 아닌지를 판단하고 경보를 켜는 일은 의식이 끼어들기 전에 끝나기 때문입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지금 떨릴 때 올라오는 감정과 몸의 느낌을 실마리로, 그 반응이 처음 만들어진 오래된 경험까지 함께 다룹니다.
최면 속에 나타난 돼지 저금통
그분과의 상담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손이 흔들리기 직전이면 손목 안쪽이 먼저 뻣뻣해진다고 하셨습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그 뻣뻣한 느낌이 선명해지자, 한 번도 떠올려 본 적 없는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말이 겨우 트였을까 싶은 나이였습니다. 거실 바닥에 앉은 아이 앞에 돼지 저금통이 놓여 있고, 어른이 동전 한 줌을 손에 쥐여 줍니다. 좁은 구멍에 동전을 밀어 넣으려는데 손가락이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아 동전이 자꾸 바닥으로 굴러떨어집니다.
어른이 바로 앞에 앉아 아이의 손끝을 들여다보며 천천히 하라고, 또 떨어뜨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동전을 더 꽉 쥡니다. 힘을 줄수록 손끝은 더 말을 듣지 않고, 동전은 또 떨어집니다.
어른에게는 오후 한때의 놀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상황을 말로 정리하지 못하는 아이에게는 누군가 내 손을 지켜보는 동안에는 실수하면 안 된다는 긴장이 남았습니다. 이런 긴장은 말이 아니라 몸에 남습니다. 어른이 되어 마커를 쥘 때도 술병을 들 때도, 몸은 그때처럼 손에 힘부터 주었습니다.
본인은 저금통 이야기를 들어 본 적도 없었습니다. 기억이 만들어지기 전의 일이라 의식적으로 떠올리기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손이 왜 떨리는지 아무리 되짚어도 답이 나오지 않던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그분은 어린시절의 자신이 있던 그 거실로 갔습니다. 동전을 놓치던 아이 옆에 앉아, 떨어뜨려도 다시 주우면 된다고, 아무도 화내지 않는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아이가 동전 하나를 구멍에 넣고 웃는 것을 보고서야 그 장면에서 나왔습니다.
마커와 술병을 다시 든 날
요즘 그분은 회의에서 앞으로 나가 칠판 마커를 손으로 잡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전에는 마커를 들어야 할 차례가 오면 옆자리 동료에게 넘기고 앉아 있었습니다. 신입사원 환영 회식에서는 술병을 들어 옆 사람 잔을 채워 주었다고 합니다. 잔을 내려놓고 국을 뜨다가 문득 자기 손을 내려다봤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손이 떨리는 것은 힘이 모자라서가 아닙니다. 그 상황을 위험으로 익혀 둔 경보가 몸을 먼저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도 사람들 앞에만 서면 손끝이 흔들린다면, 살펴볼 것은 손이 아니라 그 경보를 켜는 오래된 반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