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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아침에 눈을 뜨면 벌써 목이랑 어깨가 굳어 있어요.
뭔가 잘못될 것 같은 느낌이 하루 종일 따라다니는데, 정작 뭐가 잘못될지는 저도 모르겠어요.
저녁에 밥을 먹다가도 속이 얹히고, 누우면 몸이 안 풀려서 한참을 뒤척여요."
마흔 줄에 들어선 직장인 한 분이 상담실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회사에 큰일이 난 것도, 집에 문제가 생긴 것도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무엇이 잘못될 수 있을지부터 하나씩 짚어 본다고 하셨습니다.
그분도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이유부터 찾았습니다. 회사 일이 걸리나 싶어 밀린 업무를 몰아서 끝내 봤고, 아이 문제인가 싶어 담임 선생님과 통화도 해 봤습니다. 실제로 하나씩 정리하고 나면 그날 저녁은 조용했습니다. 문제는 며칠 지나면 걱정의 대상만 바뀌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마음이 불안할 때마다 결국 자기 성격을 탓하게 됩니다. 원래 예민한 편이라서, 걱정이 많은 사람이라서 그렇다고요. 타고난 기질이 영향을 주는 것은 맞습니다. 다만 비슷한 기질을 가진 사람이 모두 이렇게 지내지는 않습니다.
그 차이를 스스로 확인해 볼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걱정 하나를 해결하고 나면 며칠은 조용하다가, 어느새 다른 걱정으로 옮겨 가 있지 않은지 보십시오. 대상은 계속 바뀌는데 불안의 크기가 비슷하다면, 답은 그 대상들에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걱정이 바뀌는데도 불안은 그대로였습니다
뇌 안쪽에는 지금 안전한지를 쉬지 않고 살피는 '편도체'라는 부위가 있습니다.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몸에 신호를 보내 심장이 빨리 뛰게 하고 근육에 힘이 들어가게 합니다. 대상 없이 떠다니는 불안은 이 경보가 아무것도 없는데 켜져 있는 상태에 가깝습니다.
휴대전화를 만지지도 않았는데 배터리가 뚝뚝 떨어지는 날이 있습니다. 열어 둔 앱을 하나씩 닫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화면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프로그램 하나가 계속 돌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안도 그렇습니다. 눈에 보이는 걱정거리를 아무리 닫아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경보가 돌아가고 있으면 하루가 저녁이 되기 전에 다 닳습니다.
그분은 여기까지 듣고 잠깐 웃으며 "그동안 앱만 계속 닫고 있었던 셈이네요."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순서가 뒤집힙니다. 보통은 걱정거리가 생겨서 불안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마음이 불안할 때 이유가 잘 안 잡히는 경우는 반대입니다.
불안이 먼저 켜져 있고, 눈앞에 있는 것 가운데 그럴듯한 것이 나중에 불안의 이유가 됩니다. 그러니 그 이유를 해결해도 불안은 그대로 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걱정이 새 이유가 됩니다.
마음먹는다고 경보가 꺼지지는 않았습니다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아 도움을 받는 분도 많습니다. 약은 곤두선 몸을 가라앉혀 하루를 버틸 만하게 해 줍니다. 다만 경보가 왜 꺼지지 않는 상태로 굳었는지는 약으로 다루는 부분과는 다릅니다. 심호흡이나 마음 다잡기도 그 순간에는 힘이 되지만, 이미 올라온 불안을 가라앉히는 쪽에 가깝습니다.
이 경보는 마음먹는다고 꺼지지 않습니다. 머리로 판단해서 켜진 것이 아니라, 본인도 모르는 사이 몸에 익어 버린 자동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최면상담에서 다루는 것이 이 부분입니다. 지금의 불안과 이어져 있는 오래된 감정과 경험을 찾아, 그 반응이 언제부터 켜져 있었는지를 봅니다.
최면 속에서 비 오는 오후가 떠올랐습니다
그분과의 상담에서도 그랬습니다. 최면이 깊어지자 바깥 소리가 멀어지고, 아침마다 어깨를 누르던 답답함이 오히려 또렷해졌습니다. 그 답답함이 짙어지는 동안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던 어느 오후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떠오른 것은 말이 겨우 트였을 무렵, 집 안에서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창밖에 비가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한 오후였고, 아이는 벌써 신발을 신고 현관에 서 있었습니다. 그때 어른이 하던 일을 멈추고 방마다 창문을 닫으러 다녔습니다. 창틀을 한 번씩 밀어 보고 커튼까지 친 다음, 챙겨 둔 가방을 도로 내려놓았습니다.
"오늘은 안 되겠다. 나갔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하니."
어른의 목소리는 크지 않았습니다. 다만 방금 전까지 웃던 얼굴이 굳어 있었고 손이 평소보다 빨랐습니다. 밖에서는 그냥 비가 오고 있을 뿐인데 집 안 공기가 달라졌습니다.
아이는 무엇이 위험한지 알아들을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대신 다른 것을 배웠습니다. 겉으로는 아무 일 없어 보여도 나쁜 일이 숨어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러니 먼저 살피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오후가 한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그 장면을 보고 나서 한동안 말이 없었습니다. 특별한 사건이 아니어서 오히려 더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합니다. 누가 다치거나 큰소리가 난 것도 아니고, 비 오는 날 나들이가 취소된 오후였을 뿐입니다.
어른이 된 지금의 마음으로, 그분은 그 오후의 아이 곁에 섰습니다. 닫혀 있던 창을 아이와 함께 열고 밖을 내다보았습니다. 비 냄새가 들어왔고, 골목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날 밖에서 정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을 아이는 그제야 눈으로 확인했습니다.
걱정이 많은 어른 곁에서 자란 아이는, 무서운 일을 직접 겪지 않아도 세상이 위험하다는 것부터 배웁니다. 그리고 그 배움은 말을 배우기도 전에 새겨져서 나중에 기억으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본인 머릿속에 남아 있지 않을 뿐, 몸은 그때 익힌 대로 계속 반응합니다.
비 오는 날, 이번에는 밖으로 나갔습니다
요즘 그분은 아침에 눈을 뜨면 그냥 일어난다고 합니다. 지난 주말에는 비가 꽤 왔는데 우산을 챙겨 나가 시장까지 걸었다고 하셨습니다. 반쯤 걷다가 문득 그날 아침에는 무엇이 잘못될지 한 번도 짚어 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도 지나가듯 한마디를 했다고 합니다. 요즘은 만나도 "무슨 일 있어?"를 안 묻는다고요. 그분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그 말을 그렇게 자주 해 왔는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불안할 때 이유를 찾는 것은 잘못된 일이 아닙니다. 다만 이유를 찾아 해결해도 며칠 뒤 다른 걱정이 대신 들어와 있다면, 답은 그 걱정의 이유에 있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다면, 그것은 오늘의 걱정이 시킨 일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래전에 켜져서 아직 꺼지지 않은 경보가 하는 일에 더 가깝습니다.
그 경보가 언제부터 켜져 있었는지는 혼자 되짚어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