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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도 회의 시작 십 분 전부터 배가 뒤틀리기 시작했어요.
화장실을 두 번이나 다녀왔는데 소용이 없고,
회의실에 앉아 있으면 뒷목이 굳어서 고개도 잘 안 돌아가요.
병원에서는 위도 장도 다 깨끗하다고 하고요. 그런데 저는 제가 불안한 줄도 몰랐어요.
그냥 몸이 안 좋은 줄만 알았어요."
사십 대 초반의 직장인 한 분이 센터에 오셔서 하신 이야기입니다. 위내시경과 장 검사를 받았지만 어느 쪽에서도 이상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병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병원을 나오는데 마음은 오히려 더 답답했다고 하셨습니다. 아픈 것은 그대로인데 이유가 없다고 하니, 나중에는 “내가 예민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스스로 생각하게 되더랍니다.
이런 경우를 흔히 불안 증세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이 말이 잘 와닿지 않는 분이 많습니다. 정작 본인은 불안하다고 느낀 적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먼저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배가 아프고 목이 굳는 것이 먼저 옵니다.
그분도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픈 데가 자꾸 바뀌어요. 배가 좀 괜찮아지면 이번엔 뒷목이고, 그다음엔 손끝이 저려요."
아픈 곳이 달라져도 반복되는 순간들
불안 증세가 몸으로 나타나는 부위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배가 뒤틀리는 분이 있고, 뒷목과 어깨가 하루 종일 굳어 있는 분이 있습니다. 손끝이 저리거나 차가워지는 분도 있고, 턱에 힘이 들어가 아침에 턱이 얼얼한 분도 있습니다. 다만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답답한 증상은 공황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 공황을 다룬 칼럼에서 따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가늠해 볼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일주일만 증상이 나타난 시각과 그 직전에 있었던 일을 짧게 적어 보는 것입니다. 몸에서 시작된 문제라면 아픈 곳과 아픈 방식이 대체로 일정합니다. 반면 적어 놓고 보니 사람을 만나기 전, 전화를 받기 전, 누군가의 표정이 굳었을 때처럼 상황에 따라 증상이 나타났다 사라진다면, 몸 자체 말고도 살펴볼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것은 의학적인 진단이 아니라 가늠해 보는 방법이니, 몸에 이상이 없는지는 검사를 통해 확인해 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그럼 마음에서 일어난 일이 왜 몸으로 옮겨 갈까요. 뇌 깊은 곳에는 지금 안전한지를 쉬지 않고 살피는 편도체라는 부위가 있습니다. 편도체가 위험하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온몸에 신호가 나갑니다. 그 신호가 지나가는 길이 자율신경입니다. 자율신경은 심장이 뛰는 속도, 호흡의 깊이, 근육에 들어가는 힘처럼 우리가 마음대로 조절하지 못하는 것들을 맡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에서 시작된 일인데도 몸에서 먼저 티가 납니다. 윗집에서 물이 새면 그 집 바닥이 아니라 아랫집 천장에 얼룩이 번집니다. 얼룩진 데를 아무리 닦아도 새는 물을 잡지 않으면 다음 날 또 번져 있습니다. 게다가 얼룩이 어디에 생길지는 집마다 다릅니다. 어떤 집은 안방 천장에, 어떤 집은 화장실 벽에 나타납니다.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는 경우도 많습니다. 약은 지나치게 예민해진 경보를 가라앉혀 줍니다. 증상이 덜 세게 오고 덜 자주 오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분도 약을 먹는 동안에는 회의 전에 화장실을 오가는 일이 줄었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경보가 왜 이렇게 쉽게 켜지는지 그 이유를 찾는 일은, 약으로 증상을 가라앉히는 것과는 다른 문제입니다.
머리로는 아무 일 없다는 것을 압니다. 알아도 배는 그대로 뒤틀립니다. 생각은 의식이 하지만, 경보를 울리고 몸을 움직이는 쪽은 의식이 직접 손댈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최면상담에서 다루는 것이 이 대목입니다. 지금의 반응과 이어진 오래된 감정과 경험, 본인은 잊었지만 몸이 그대로 되풀이하고 있는 무의식의 자동반응을 최면 속에서 찾아 다시 다룹니다.
회의실의 배 아픔이 데려간 오래된 식탁
그분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최면이 충분히 깊어진 상태에서 회의실에 들어가기 전 배가 뒤틀릴 때의 느낌에 집중하자, 뜻밖에도 아주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말이 겨우 트였을까 싶은 어린 시절,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던 식탁이었습니다. 아이는 밥그릇 앞에 앉아 있었지만 밥을 먹기보다 어른의 기분부터 살피고 있었습니다. 어떤 날은 아무 일 없이 식사가 지나갔지만, 어떤 날은 작은 일에도 분위기가 갑자기 달라지곤 했습니다. 어린아이는 어른의 표정뿐 아니라 수저를 내려놓는 소리나 방에서 걸어 나오는 발걸음만으로도 오늘 분위기가 어떤지 눈치를 살폈습니다.
수저가 상에 조금 세게 놓이거나 발걸음이 평소보다 거칠게 들리는 날이면 아이의 몸부터 굳었습니다. 밥이 잘 넘어가지 않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가 아프다며 몸을 웅크리고 무릎을 끌어당긴 채 앉아 있곤 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그저 배앓이가 잦은 아이로 보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이는 그 식탁에서 누군가의 기분을 살펴야 하는 순간이면 몸이 먼저 긴장하고 배가 아파지는 반응을 익혀 갔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장소와 사람은 달라졌지만 비슷한 상황에서 같은 반응이 되풀이되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어른의 표정과 발걸음을 살폈다면, 직장에서는 회의를 앞두고 상사의 표정을 살피게 된 것입니다.
최면 속에서 그분은 다시 그 식탁 앞의 어린 자신 곁에 앉았습니다. 네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어른의 기분은 네가 살핀다고 해서 바꿀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고 천천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눈치를 보지 않고 편하게 밥을 먹어도 된다고도 말해 주었습니다. 아이가 긴장을 풀고 다시 숟가락을 드는 모습을 확인한 뒤 그 장면을 마무리했습니다.
회의가 끝난 뒤 알게 된 작은 변화
상담 이후 가장 먼저 달라진 것은 회의를 앞둘 때마다 반복되던 배 아픔이었습니다. 다만 그분은 그 변화를 처음부터 의식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날 회의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와 앉은 뒤에야 평소와 달랐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고 합니다. 그날은 회의 전에 화장실을 찾지 않았고, 회의 중에도 배가 아프지 않아 손으로 배를 누를 일이 없었습니다.
식사도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오후에 사람을 만나거나 중요한 일정이 있으면 배가 아플까 봐 점심을 아예 거르곤 했습니다. 요즘은 그런 걱정 없이 점심을 먹고 그대로 오후 일정을 시작한다고 하십니다.
검사에는 나오지 않는 오래된 반응
불안이 몸의 증상으로 나타날 때 답답한 점은, 분명히 불편한데 검사를 받아도 뚜렷한 원인이 나오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검사에서 이상이 없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지금 겪고 있는 증상까지 아무 이유 없이 생긴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몸은 때로 자신도 기억하지 못하는 오래된 경험에서 익힌 긴장 반응을 비슷한 상황에서 되풀이합니다. 그래서 머리로는 괜찮다는 것을 알아도 배가 아프거나 목이 굳고 손끝이 저릴 수 있습니다. 검사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 이런 증상이 특정 상황에서 반복된다면, 몸의 증상만이 아니라 그때마다 함께 나타나는 긴장과 감정, 그리고 그 반응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불안·긴장 더 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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