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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가겠다고 문자를 보내는 순간, 그렇게 편할 수가 없어요.
며칠 동안 밥도 잘 안 넘어가고 새벽에 몇 번씩 깼는데, 못 간다는 말 한마디에 몸이 스르르 풀립니다.
그런데 그다음이 문제예요. 다음번엔 더 못 가겠어요.
이러다 집 밖에 못 나가는 사람이 되는 건 아닌가 싶습니다."
이 말씀을 하신 분은 아이 둘을 키우면서 오후에 일을 하러 나가는 마흔 중반의 여성분입니다. 올해 들어 접은 일정을 세어 보니 열 손가락이 모자랐다고 합니다. 학교 총회, 오랜만에 잡힌 동창 모임, 가족끼리 가기로 했던 이박 삼일 여행까지 차례로 취소했습니다.
불안장애 극복이 어렵다고 느끼는 분들에게서 자주 보이는 흐름입니다. 견디기 힘든 순간 자체보다, 피하고 나서 편해지는 몇 초가 불안을 키웁니다.
본인에게도 답답한 점이 있습니다. 무서운 일이 실제로 벌어진 적은 한 번도 없다는 점입니다. 총회에 가면 앉아 있다 오면 되고 여행을 가면 즐거웠을 텐데, 머리로는 그걸 다 알면서도 날짜가 다가오면 몸이 먼저 긴장하기 시작합니다.
당일 아침이면 입안이 바짝 마르고 손발이 차가워집니다. 옷을 갈아입다가 다리에 힘이 빠져 침대에 다시 앉은 적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안도감 뒤에 남는 것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습니다. 피하고 나면 분명히 편해지는데, 왜 다음번은 더 어려워지는 걸까요.
불편한 것이 사라지면서 그 행동이 몸에 붙는 과정을 심리학에서는 부적 강화라고 부릅니다. 좋은 것을 받아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싫은 것이 사라져서 배운다는 뜻입니다. 못 간다고 문자를 보내자마자 조여 있던 몸이 풀리는 그 몇 초가, 다음번에도 취소하라고 알려 주는 가장 확실한 보상이 됩니다.
가려운 데를 긁을 때와 비슷합니다. 긁는 그 순간은 정말 시원합니다. 그런데 시원했던 만큼 손이 자꾸 그곳으로 가고, 긁을수록 가려운 범위는 넓어집니다.
아무도 더 가렵게 만들려고 긁지는 않습니다. 그 순간 시원했기 때문에 계속 긁게 되는 것뿐입니다.
피하는 일도 같은 방식으로 굴러갑니다. 한 번 피할 때마다 안 가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굳어집니다. 반대로 가서 아무 일 없이 돌아오는 경험은 쌓일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니 거기는 위험한 곳이라는 판단만 그대로 남아 있게 됩니다.
그렇게 위험 목록에 오르는 곳이 하나씩 늘어납니다. 총회가 올라가고, 동창 모임이 올라가고, 다음에는 처음 가 보는 곳에서의 약속까지 더해집니다. 처음에는 한두 군데였던 것이 어느새 생활의 절반이 됩니다.
그분은 여기까지 듣더니 잠깐 말을 멈추셨습니다. 무서워서 안 간 게 아니라 편해지려고 안 갔던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두 시간을 버텨도 손은 다시 차가워졌습니다
주변에서는 부딪쳐 보라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 실제로 한 번 다녀오고 나면 다음이 수월해지는 경우가 있으니 틀린 조언은 아닙니다. 그분도 큰맘 먹고 총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두 시간을 앉아 있다 왔는데, 다음 달 모임 문자를 받자 손이 또 차가워졌다고 합니다.
신경정신과에서 처방받는 약도 도움이 됩니다. 예민해진 몸의 반응을 낮춰 주어 그 상황을 견딜 만하게 해 주는 힘이 있습니다. 다만 오랫동안 몸에 붙은 회피 습관을 바꾸는 일은 약이 하는 일과는 다릅니다.
머리로 이해했다고 해서 몸이 곧바로 따라오지는 않습니다. 취소 문자를 보낼 때 몸이 풀리는 반응은 생각을 거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래전에 몸에 익어 저절로 나오는 무의식의 자동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이 자동반응을 그대로 두지 않습니다. 지금 되풀이되는 몸의 반응을 붙들고, 그것과 이어져 있는 오래된 감정과 경험을 함께 살펴봅니다.
그분이 붙든 것은 불안이 아니라 안도감이었습니다. 취소한 뒤 온몸이 풀리던 바로 그 느낌 말입니다.
최면이 충분히 깊어진 상태에서 그 느낌을 그대로 붙들고 있자,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올라왔습니다. 살면서 한 번도 떠올려 본 적 없는 아주 어린 날이었습니다.
최면 속에 친척 집 마당이 나타났습니다
걸음이 겨우 익었을까 싶은 아이가 친척 집 마당에 서 있었습니다. 어느 명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처음 보는 어른이 갑자기 얼굴을 들이밀고 큰 소리로 웃으며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렸습니다.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었습니다. 그 어른이 누구였는지는 장면 안에서도 끝내 또렷해지지 않았습니다.
다음에 그 집에 갔을 때, 아이는 현관에서 신발을 벗지 않았습니다. 신발장을 붙잡고 버티며 들어가지 않겠다고 울자, 어른들이 잠깐 난감해하다가 그냥 돌아가자고 했습니다. 차에 올라 문이 닫히는 순간, 아이의 몸에서 힘이 쭉 빠졌습니다.
그날 아이가 배운 것은 그 집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가가 아니었습니다. 버티면 안 들어가도 된다는 것, 그리고 안 들어가면 이렇게 편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슷한 일이 몇 번 더 있었습니다. 낯선 집 앞에서 버티면 어른들이 먼저 물러섰고, 그때마다 몸은 같은 순서로 풀렸습니다.
본인은 이 일을 하나도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그럴 만합니다.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기억이 생기기 전에 몸이 먼저 익힌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에게 이것은 아주 똑똑한 방법입니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기를 지키는 길이 그것뿐이니까요. 문제는 그 방법이 너무 잘 통했다는 데 있습니다. 어른이 되어서도 몸이 계속 같은 순서를 따라갑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그분은 어린시절의 자신이 있던 그 현관 앞으로 갔습니다. 그리고는 버티고 있는 어린시절 자신의 손을 잡고, 함께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문 안에서는 상 차리는 소리가 났고 아이보다 어린 사촌들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먼저 알아본 변화가 있었습니다
최면상담 받은지 얼마 지나지 않아 남편이 물어 보더랍니다. 요즘 왜 이렇게 약속을 안 미루냐고. 본인은 그 말을 듣고서야 지난달에 잡힌 일정을 거의 취소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학교 총회에는 늦지 않게 도착해 뒷줄에 앉아 있다 왔습니다. 겨울에 가기로 한 가족 여행은 이번에는 본인이 먼저 숙소를 알아보고 있다고 합니다.
스스로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어떤 일정을 앞두고 마음이 무거울 때, 안 가기로 정한 순간 몸이 눈에 띄게 편해지는지 보는 것입니다. 취소하자마자 배와 어깨가 함께 풀린다면, 회피가 이미 몸에 붙은 반응일 수 있습니다.
불안장애 극복이 어려운 이유는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피할 때마다 돌아오는 그 짧은 편안함이 너무 정확한 보상이어서, 몸이 그 길만 익혀 온 것입니다.
오늘도 못 간다는 문자를 보내고 한숨을 돌리셨다면, 그 안도감을 탓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그 몇 초의 안도감이 언제부터 나를 이렇게 끌고 다니게 되었는지는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그 반응이 풀리기 시작하면 달력에서 하나씩 지워 왔던 날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