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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는 다 정상이래요. 위내시경에 피검사에, 목이랑 어깨까지 찍어 봤는데 아무 이상이 없대요.
그런데 저는 아침에 눈 뜨는 것부터가 힘들어요. 뒷목이랑 어깨는 늘 뻣뻣하고,
속은 더부룩해서 밥이 안 넘어가고, 오후만 되면 손발은 얼음장인데 얼굴로만 열이 확 올라와요.
병원에서는 자율신경 쪽 문제인 것 같다고만 하는데, 그럼 저는 뭘 어떻게 해야 되나요?"
한 회사를 이십 년 넘게 다니신 분이 센터에 오셔서 하신 이야기입니다. 큰 병원에서 받을 수 있는 검사를 거의 다 받아 보셨지만 결과는 매번 같았습니다. 이상 없음. 몸에 병이 없다는데도 마음이 놓이기는커녕 더 답답해졌다고 하셨습니다. 아픈 곳을 짚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주변에서는 그저 예민해서 그렇다는 말만 들었습니다.
검사지에 잡히지 않는 몸의 시동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말을 처음 들으면 드디어 병명을 찾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찾아볼수록 이상합니다. 이 말은 어느 장기가 고장 났다는 뜻이 아니라, 몸을 자동으로 조절하는 신경의 균형이 흐트러져 있다는 상태를 설명하는 말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검사지에는 잡히지 않습니다.
자율신경은 우리가 신경 쓰지 않아도 심장을 뛰게 하고 소화를 시키고 체온을 맞추는 신경입니다. 몸을 움직일 준비를 시키는 쪽과, 몸을 쉬게 하고 소화를 돌보는 쪽이 번갈아 일합니다. 그런데 이 신경은 스스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뇌가 지금 안전한지 위험한지를 정해 주면 거기에 맞춰 몸을 바꿉니다.
그 판단을 맡은 곳이 뇌 안쪽의 편도체입니다. 편도체는 지금이 위험한 상황인지 아닌지를 한시도 쉬지 않고 살피는 부위입니다. 위험하다고 보면 곧바로 몸에 시동이 걸립니다. 심장이 빨라지고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소화는 뒤로 밀립니다. 당장 달아나거나 맞서야 하는 상황이라면 밥보다 다리가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그분도 이 대목에서 짚이는 것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남들이 다 쉬는 주말 오후에 오히려 몸이 더 힘들었다는 것입니다. 일할 때는 그럭저럭 버티다가, 소파에 앉아 한숨 돌리려 하면 그때부터 속이 뒤집히고 어지러웠다고 합니다.
세워 둔 차의 시동을 며칠씩 켜 두면 어떻게 될까요. 고장 난 곳은 하나도 없는데 기름이 줄고 열이 오르고 부품이 닳습니다. 정비소에 넣어 봐야 부품은 다 멀쩡하다는 말만 듣습니다. 검사는 고장 난 데를 찾지, 시동이 켜져 있는지를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몸도 같습니다. 위험이 지나가면 시동이 꺼지고 쉬는 쪽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긴장이 오래 이어진 분들은 그 시동이 잘 꺼지지 않습니다. 뒷목과 어깨가 굳는 것, 속이 잘 안 내려가는 것, 손발은 찬데 얼굴로 열이 오르는 것, 자도 잔 것 같지 않은 것. 흩어져 있어 보이는 자율신경실조증 증상들은 사실 한 가지 상태에서 나옵니다. 몸이 계속 출발 직전 상태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가늠해 볼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특정 기관에서 오는 증상은 대개 아픈 부위와 모양이 일정합니다. 반면 긴장이 만들어 내는 증상은 오늘은 어깨, 다음 주는 속, 그다음에는 어지럼처럼 그날의 상황에 따라 옮겨 다닙니다. 일주일만 언제 심해지는지 적어 보시면 대략 흐름이 보입니다. 물론 이것으로 진단이 되지는 않고, 몸에 병이 없는지 확인하는 검사가 언제나 먼저입니다.
그분도 병원에서 받은 약을 드시고 계셨습니다. 약은 올라온 증상을 가라앉혀 그날 하루를 지나가게 해 줍니다.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도 몸이 쉬는 쪽으로 넘어가도록 도와줍니다. 실제로 이런 도움을 받아 한결 지낼 만해지는 분들도 계십니다. 다만 몸이 왜 그토록 오래 켜져 있게 되었는지는 설명되지 않은 채 남습니다.
마음먹어도 힘이 빠지지 않는 이유
여기서 짚고 갈 것이 있습니다. 긴장을 풀라는 말은 수없이 듣지만, 정작 힘을 빼는 일은 마음먹는다고 되지 않습니다. 자율신경은 의식으로 직접 조절할 수 있는 신경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숨은 마음대로 참을 수 있어도, 소화를 시키거나 찬 손발을 데우는 일은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최면상담에서는 지금의 긴장과 이어져 있는 오래된 반응을 살펴봅니다. 몸이 언제부터 이렇게 계속 대비하게 되었는지, 그 시작이 된 경험과 그때의 감정을 함께 다룹니다. 지금 상황만 아무리 들여다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답이 지금에 있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최면 속에서 떠오른 오래된 저녁
그분도 그렇게 시작했습니다. 최면이 충분히 깊어지자 몸에 먼저 익숙한 반응이 나타났습니다. 어깨가 딱딱해지고 귀가 저절로 문 쪽으로 쏠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느낌이 이어지는 동안 오래전 어느 저녁이 떠올랐습니다.
아직 학교에 들어가기 전, 말도 채 다 트이지 않았을 무렵이었습니다. 어른이 돌아오기로 한 시간이 지났는데 집에는 아이 혼자였습니다. 아이는 창문과 현관 사이를 오갔습니다. 밖에서 발소리가 나면 벌떡 일어났다가, 지나가는 사람이면 다시 주저앉았습니다.
창밖이 어두워질수록 아이의 머릿속에는 나쁜 그림이 그려졌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오다가 다친 건 아닐까. 그때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뿐이었습니다. 숨을 죽이고, 문에서 눈을 떼지 않고, 온몸에 힘을 준 채로 준비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늦게 들어온 저녁 한 번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아이의 몸은 그런 저녁마다 같은 반응을 익혔습니다. 어른이 무사히 들어와 불이 켜져도 아이는 그 순간에 힘을 빼지 못했습니다. 다음에 또 늦을 수 있으니 풀어서는 안 된다고 배운 것입니다. 안심하는 법이 아니라 대비하는 법만 몸에 남았습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이런 흐름을 자주 만납니다. 몸이 늘 굳어 있는 분들 가운데는 어린 시절에 힘을 빼도 되는 시간을 충분히 겪지 못한 경우가 있습니다. 나쁜 일이 계속 일어나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는 상태가 오래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몸은 가장 안전한 쪽을 고릅니다. 계속 켜 두는 것입니다.
그분은 그 저녁이 실제로 몇 번이나 있었던 일인지, 어른이 왜 늦었는지는 끝내 알지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다만 그날 저녁의 몸 상태가 지금 자기 몸과 똑같다는 것만은 분명했다고 합니다.
최면 속에서 그분은 그 저녁의 아이 옆에 앉았습니다. 어른은 그날도 무사히 돌아왔고 그다음 날도 돌아왔다고 아이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문을 지키는 일은 이 아이가 맡을 몫이 아니라고도 했습니다. 그 아이가 수십 년 동안 혼자 맡아 온 문 지키는 일을, 그제야 내려놓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딸이 늦은 저녁, 달라진 한 장면
딸이 연락도 없이 늦은 저녁이 있었다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현관 앞을 오가며 전화를 몇 번씩 걸고, 속이 뒤집혀 저녁상은 그대로 물렸을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그분은 혼자 밥을 차려 드시고 설거지까지 마치고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습니다.
늦게 들어온 딸이 물었습니다. “엄마, 왜 전화 안 했어?” “곧 오겠지 했지.” 그렇게 대답하고는 본인이 더 놀랐다고 하셨습니다. 요즘은 오후에 얼굴로 열이 오르는 일도 뜸해졌다고 합니다.
검사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은 나쁜 소식이 아닙니다. 몸에 병이 없다는 뜻이니 다행한 일입니다. 다만 그 말이 몸이 힘들지 않다는 뜻은 아닙니다. 고장이 없는데도 힘든 몸은 대개 오래 켜 둔 시동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읽으신 분이라면 아마 지금도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을 것입니다. 그 힘은 게을러서 못 빼는 것도 아니고, 마음이 약해서 생긴 것도 아닙니다. 언제부터인가 몸이 긴장을 켜 둔 채 버티는 법만 익힌 것입니다. 의식이 직접 조절하지 못하는 자동반응이라 다짐만으로는 꺼지지 않지만, 그 반응이 만들어진 경험까지 함께 다룰 때 몸은 비로소 힘을 빼기 시작합니다. 검사지에는 아무것도 나오지 않지만, 그 힘든 몸에도 아직 들여다보지 않은 이유가 남아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