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저더러 다들 예민하다고 해요. 옆자리에서 서랍 닫는 소리에도 심장이 철렁 내려앉고,
팀장님이 평소보다 말이 짧으면 하루 종일 그 생각뿐이에요.
퇴근할 때쯤이면 뒷목이 돌덩이처럼 굳어서 고개도 잘 안 돌아가요.
집에 오면 아무하고도 말하기 싫을 만큼 진이 빠지는데, 정작 누우면 낮에 들은 말이 하나씩 다시 떠올라요.
이 성격, 고칠 수는 있는 건가요?"
삼십 대 중반의 직장인 한 분이 상담실에서 꺼낸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예민한 성격 고치는 법을 오래 찾아봤다고 합니다. 아침마다 신경 쓰지 말자고 다짐했고, 좋다는 호흡법도 익혔습니다. 무던한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지 곁에서 지켜보며 따라 해보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몸이 마음보다 빨랐다는 점입니다. 마음을 다잡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주변에서는 좋은 뜻으로 한마디씩 보탭니다. 너무 담아 두지 마라, 좀 무디게 살아라, 다들 그러고 산다. 그 말이 틀렸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들을 때마다 조금씩 위축됐습니다. 다들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일을 자신만 넘기지 못하는 것 같아, 나중에는 사람을 만나는 일 자체가 버거워졌다고 하셨습니다.
좋은 말보다 나쁜 신호가 오래 남을 때
그분이 가장 먼저 의심한 것은 타고난 기질이었습니다. 실제로 감각이 남달리 예민하게 태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소리나 빛, 냄새를 남들보다 또렷하게 느끼고, 다른 사람은 지나치는 표정의 작은 변화까지 알아채는 경우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이야기에는 한 가지 눈에 띄는 점이 있었습니다.
타고난 감각이 예민한 사람은 대개 좋은 자극과 나쁜 자극 모두에 예민합니다. 남들이 흘려보내는 작은 소리도 알아차리고, 지나가는 칭찬 한마디에도 기쁨이 오래갑니다. 그런데 그분은 유독 나쁜 신호에만 예민했습니다. 잘했다는 말은 인사치레로 흘려듣는데, 말끝에 묻어난 한숨 하나는 사흘을 갔습니다.
혹시 나도 그런가 싶다면 한 가지를 먼저 살펴보시면 됩니다. 좋은 신호와 나쁜 신호 양쪽에 모두 크게 반응하는지, 아니면 나쁜 쪽에만 유독 크게 반응하는지입니다.
뇌 안쪽에는 지금 안전한지를 쉬지 않고 확인하는 편도체라는 부위가 있습니다. 편도체가 위험 신호를 감지하면 몸이 즉시 반응합니다. 심장이 빨라지고 근육이 굳으며, 신경은 소리가 난 쪽으로 쏠립니다. 나쁜 쪽에만 유독 예민하다는 것은 편도체가 위험 신호에 특히 크게 반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몸이 마음보다 먼저 반응하는 순간
어두운 방에 오래 있으면 눈은 조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동공을 크게 엽니다. 그러다 밝은 곳으로 나오면 남들에게는 평범한 햇빛도 눈을 찌르듯 아프게 느껴집니다. 눈이 약해서가 아닙니다. 어두운 곳에서 무엇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크게 열어 둔 동공이 아직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민한 반응도 이와 비슷합니다. 오랫동안 주변을 조심하며 지낸 사람은 작은 변화에도 몸이 먼저 반응하는 데 익숙해집니다.
호흡을 고르고 몸의 힘을 빼는 연습은 이미 올라온 긴장을 가라앉히는 데 실제로 도움이 됩니다. 다만 늘 한 박자 늦습니다. 동공을 줄여야지 마음먹는다고 바로 줄어들지 않듯이, 편도체가 반응하는 속도도 의지만으로 조절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소리를 듣고 어깨가 움찔하기까지의 시간은 생각이 끼어들 틈보다 짧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바로 이 반응을 다룹니다. 지금 왜 이렇게 반응하는지 머리로 분석하는 데 그치기보다, 그 반응이 처음 만들어지던 무렵의 감정과 경험을 다시 만나 다룹니다. 머리로는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당시의 감각이 몸에 남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도 그렇게 최면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최면이 깊어진 뒤, 서랍 닫히는 소리에 심장이 내려앉던 느낌에 집중해 한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러자 본인도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최면 속에서 다시 들린 집 안의 소리
아직 말도 몇 마디 못 하던 어린 시절이었습니다. 아이가 방바닥에 엎드려 무언가를 만지고 있는데, 안방 문이 쾅 하고 닫힙니다. 조금 뒤 부엌에서는 무엇인가 바닥에 떨어져 요란한 소리가 납니다. 잠시 뒤에는 현관문이 세게 닫힙니다.
그 집에서는 그런 소리가 예고 없이 자주 났습니다. 아이는 소리가 날 때마다 먼저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돌려 어른들 쪽을 살폈습니다. 무슨 일인지 물어볼 수도 없었으니, 다음 소리가 나기 전에 주변부터 살피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그런 소리가 자주 났는지는 그 장면만으로 알 수 없었습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애초에 그 이유가 보이지 않았을 테니까요. 아이에게 남은 것은 사건이 아니라 한 가지 감각이었습니다. 무슨 일이든 예고 없이 온다는 것, 그러니 먼저 주변을 살펴야 한다는 감각이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그저 어수선하고 싸움이 잦은 집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말도 몇 마디 못 하던 아이에게는 주변을 먼저 살피는 것이 세상을 익혀 가는 방식이 되었습니다. 주변을 살피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나중에는 소리가 나기도 전에 주위를 먼저 훑었습니다. 그렇게 익숙해진 반응은 자라면서 성격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깊은 최면 속에서 그분은 어린시절의 자신 곁에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소리가 나더라도 안전하다고 알려주었습니다. 무슨 소리가 들리든지, 네 잘못도 아니고 지나가질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어른이 된 미래의 자신이 전해주는 말을 듣고 어린시절 자신의 어깨 힘이 풀려갔습니다.
토요일 오후, 컵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토요일 오후, 언니가 아이 둘을 데리고 놀러 왔다고 합니다. 거실에서 아이들이 뛰고 소리를 지르는 동안 그분은 부엌에서 과일을 깎고 있었습니다. 그때 작은 아이가 컵을 떨어뜨려 요란한 소리가 났습니다.
그분은 고개를 돌려 아이부터 살핀 뒤, 다치지 않았으면 됐다며 컵을 주워 담고 과일을 마저 깎았습니다. 예전 같으면 그 소리 하나로 저녁 내내 가슴이 두근거렸을 텐데, 그날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고 하셨습니다.
예민함을 고치는 일은 감각 자체를 무디게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남들처럼 무던해지려고 애써도 잘 되지 않습니다. 의지만으로 무디게 만들 수 있었다면 진작 달라졌을 테니까요.
그래서 질문을 바꿔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주변을 살펴야 했을까.
지금도 옆에서 문이 세게 닫히면 어깨가 먼저 반응하십니까. 그렇다면 성격이 유별나서라기보다, 그렇게 주변을 살펴야 했던 시절의 경계 반응이 몸에 남아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그 시절의 감정과 경험을 다루고 나면, 굳이 무던해지려고 애쓰지 않아도 반응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