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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앉아 있는 게 안 됩니다. 드라마를 틀어 놓고도 십 분을 못 보고 일어나서 냉장고를 열었다 닫아요.
빨래를 개다 말고 베란다에 나가 보고요. 소파에 앉으면 다리가 저 혼자 떨리고,
누우면 종아리가 근질거려서 발을 자꾸 움직입니다.
남들은 좀 쉬라는데, 저는 쉬는 게 제일 힘듭니다."
쉰을 갓 넘긴 여성 한 분이 상담 첫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이 둘을 다 키웠고, 병원 원무과에서 오래 일해 온 분이었습니다. 근무 중에는 손이 쉴 틈이 없어 차라리 괜찮지만, 정작 힘든 것은 집에 돌아온 뒤부터라고 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늘 부지런하다고 했습니다. 앉아 있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며 일복을 타고났다고도 했습니다. 칭찬인 줄 알면서도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속이 답답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습니다. 언제 마음이 초조한지 되짚어 보면, 일이 밀린 날보다 아무 일정도 없는 날이 오히려 더 견디기 힘듭니다. 바빠서 초조한 게 아니라 할 일이 없을 때 더 초조한 셈입니다. 급할 일이 하나도 없는데, 몸은 왜 계속 서두르는 걸까요.
이 초조함이 눈앞의 일 때문인지 스스로 가늠해 볼 방법이 있습니다. 앞으로 일주일 동안만, 하루 중 언제 마음이 초조해지는지 기억해 두시면 됩니다. 일이 몰린 오전보다 일을 다 끝낸 저녁에 더 안절부절못한다면, 그 초조함은 눈앞의 일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루가 끝났는데도 벗지 못한 겉옷
몸이 왜 이러는지는 뇌에서 경계를 맡는 편도체를 보면 이해하기 쉽습니다. 편도체는 뇌 깊은 곳에서 지금 안전한지를 살피는 부위입니다. 위험하다고 느끼면 근육에 힘이 들어가고 심장이 빨리 뛰면서 언제든 움직일 수 있도록 몸이 준비됩니다. 원래는 상황이 지나가면 이런 준비 상태도 함께 풀립니다.
그런데 어릴 때부터 이런 준비 상태로 지낸 시간이 길면, 긴장한 상태 자체가 몸에 익숙해질 수 있습니다. 위험한 일이 없는 날에도 몸에 들어간 힘이 쉽게 빠지지 않습니다. 몸은 계속 다음에 할 일을 찾고, 가만히 앉아 있는 것이 오히려 하루 중 가장 어려운 일이 됩니다.
일을 다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도 겉옷을 벗지 않은 채 현관 가까운 의자에 걸터앉아 있는 사람을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앉아는 있지만, 아직 쉴 준비를 한 사람의 모습은 아닙니다. 마음이 초조할 때의 몸도 비슷합니다. 하루가 끝났는데도 몸은 아직 계속 움직일 준비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커피를 줄여도 저녁이면 다시 초조하다
이쯤 되면 병원에 가 봐야 하나 싶어 진료를 받아보는 분도 있습니다. 갑상선 수치 이상이나 빈혈처럼 신체적인 원인이 있을 수 있어서, 한 번 확인해 두는 것은 도움이 됩니다.
검사에서 별다른 이상이 나오지 않으면 안정을 돕는 약을 짧게 써보기도 합니다. 약은 높아진 각성을 낮춰 그날 저녁을 보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커피를 줄이고 저녁에 걷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카페인의 영향이 줄면 손발이 덜 떨리고, 걷고 나면 몸에 쌓인 긴장도 어느 정도 풀립니다. 다만 이런 방법은 그날 올라온 각성을 낮추는 데 주로 도움이 됩니다. 아무 일도 없는 저녁마다 몸이 다시 움직일 준비를 하는 반응은 여전히 남습니다.
이 대목에서 스스로를 탓하는 분이 많습니다. 하지만 저녁마다 자꾸 일어나게 되는 것은 본인이 일부러 선택한 행동이 아닙니다. “앉아 있자”고 마음먹는 것은 의식의 결정이지만, 자꾸 몸이 먼저 움직이는 것은 의식이 쉽게 끼어들기 어려운 무의식의 자동반응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좀 앉아 있어 보자”는 다짐을 반복해도 잘 되지 않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바로 이 자동반응을 다룹니다. 지금의 초조함과 같은 느낌이 처음 몸에 익던 무렵의 경험까지 함께 살펴보며, 그때 굳어진 반응을 다시 다룹니다.
거실에 놓인 장난감 상자
이분의 상담에서도 그랬습니다. 최면이 깊어진 뒤, 저녁마다 종아리에 힘이 들어가던 느낌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그러자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집 거실입니다. 혼자 걸어 다닌 지 얼마 안 된 아이가 마룻바닥에 앉아 장난감을 상자에 담고 있습니다. 하나씩 골라 담는 게 재미있어 손이 바쁩니다. 절반쯤 담았을 때 등 뒤에서 어른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수건 좀 가져와라.”
아이는 하던 것을 그대로 두고 일어나 수건을 가져옵니다. 수건을 건네자마자 다음 말이 이어집니다. “신발도 챙겨 놔라.” 아이는 다시 돌아섭니다.
상자는 끝내 채워지지 않습니다. 그런 저녁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어른에게는 아이에게 심부름을 몇 번 시킨 평범한 저녁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아직 말도 서툰 아이에게는 다른 반응이 몸에 익었습니다. 하던 일은 언제든 중단해야 하고, 지금 하는 일보다 곧 시킬 일을 먼저 준비해야 한다는 반응이었습니다. 그렇게 한 번 몸에 익고 나면, 시키는 사람이 없어도 같은 반응이 저절로 이어집니다.
장면 속에서 그분은 거실 마룻바닥으로 걸어 들어가 아이 옆에 앉았습니다. 이번에는 아무도 아이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남은 장난감을 하나씩 마저 담고 상자 뚜껑까지 닫았습니다. 다 닫은 뒤에야 고개를 들었다고 합니다. 그분은 아이에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도 되고, 다음 심부름은 없다고 일러 주었습니다.
그 어른이 왜 자꾸 아이를 불러 세웠는지는 장면 속에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분도 굳이 그 이유를 알아보려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이가 상자 뚜껑을 닫는 것으로 그 저녁은 끝났습니다.
초조함의 원인이 된 어린 시절 경험이라고 하면 크게 놀란 사건부터 떠올리기 쉽습니다. 그런데 초조함처럼 하루 종일 이어지는 반응은 한 번의 큰일보다 매일 조금씩 반복된 장면에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본인 기억에는 특별할 것 없는 저녁으로만 남을 수 있습니다.
소파에 앉아 끝까지 본 드라마 한 편
요즘은 저녁 설거지를 마치면 소파에 앉아 드라마를 끝까지 본다고 합니다. 남편이 먼저 변화를 알아봤습니다. “요새 왜 이렇게 조용하냐”, “저렇게 앉아 있는 걸 처음 본다”고 했답니다.
며칠 전에는 쉬는 날에 뭘 했느냐고 딸이 묻자 “아무것도 안 했다”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예전 같으면 쉬는 날에도 냉장고를 통째로 비웠다가 다시 채웠을 텐데요. 그 말을 하면서 본인 스스로도 신기해했다고 합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다리를 흔들고 계시거나, 읽다 말고 한 번쯤 일어났다 다시 앉으셨을지 모르겠습니다. 그것은 성격이 급해서도, 마음이 약해서도 아닙니다. 오래전부터 몸이 쉬어야 할 때도 계속 움직일 준비를 하는 반응에 익숙해진 것입니다. 이런 반응은 마음먹는 것만으로는 잘 바뀌지 않습니다. 다시 살펴볼 수 있는 것은 그 반응이 몸에 익던 어린시설에 어떤 경험을 했는가 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