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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일도 아닌데 여기가 꽉 막혀요. 목에 뭐가 걸린 것 같고
밥을 먹으면 명치에 그대로 얹혀 있는 느낌이고요.
그러다 누가 말 한마디 툭 던지면 얼굴이 확 달아올라요.
내시경도 하고 갑상선도 봤는데 다 괜찮다는데
저는 평생 화 한 번 크게 낸 적이 없는 사람이거든요.
그런데 왜 이럴까요?"
오십 대 초반의 여성 한 분이 상담 첫날 하신 말씀입니다. 몇 해 전부터 명치가 답답했고, 요즘은 자다가도 열이 확 오르면서 잠에서 깬다고 하셨습니다. 병원에서 위와 갑상선을 검사했지만 모두 별 이상이 없다고 했습니다. 몸에 병이 없다는 말은 반가웠지만, 그렇다면 이 답답함은 대체 무엇인가 싶어 오히려 더 막막했다고 하셨습니다.
주변에서는 화병이 아니냐는 말을 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말이 잘 와닿지는 않았습니다. 본인은 소리를 한 번 지른 적도, 누구와 얼굴을 붉히며 다툰 적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화를 낸 적도 없는데 화병이라니,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여기에 흔한 오해가 하나 있습니다. 화병은 화를 많이 낸 사람에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화가 날 일을 겪고도 밖으로 내지 못한 채 삼켜 온 사람에게 생깁니다. 화병 증상이 참는 것이 몸에 밴 분들에게 유독 자주 나타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참고 넘긴 날이면 목이 뻐근했습니다
화는 원래 밖으로 나가야 하는 감정입니다. 부당한 일을 겪으면 화가 올라오고, 그것을 말이나 표정으로 표현하고 나면 감정은 제 할 일을 마치고 가라앉습니다. 문제는 화를 밖으로 내보내지 못할 때입니다. 이렇게 처리되지 못한 감정이 몸의 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신체화라고 부릅니다.
말은 어렵지만 뜻은 단순합니다. 마음에서 처리되지 못한 감정이 몸의 증상으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참는다는 것은 화를 없애는 일이 아니라 물길을 막는 일에 가깝습니다. 물은 막는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나갈 데가 없으면 벽 안쪽으로 스며들었다가 한참 뒤 벽지에 얼룩으로 나타납니다. 목에 덩어리가 걸린 듯한 느낌, 명치의 답답함, 갑자기 치미는 열이 그런 얼룩과 같습니다.
그분도 생각나는 일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참고 넘긴 날이면 저녁 내내 목이 뻐근했는데, 그동안은 그저 목이 안 좋은 줄로만 알았다고요.
스스로 가늠해 볼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몸 자체의 문제에서 오는 답답함은 대개 먹은 것이나 자세, 시간대에 따라 나름의 규칙이 보입니다. 반면 삼킨 감정과 이어진 답답함은 특정한 사람을 만나거나 특정한 말을 들은 날 저녁에 유난히 심해집니다. 일주일만이라도 증상이 언제 심해지는지 적어 보면 그 차이가 눈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진단이 아니라 가늠일 뿐이니, 먼저 신체 검사를 받아 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병원에서 처방받은 약도 도움이 됩니다. 위장약은 쓰린 속을 달래 주고, 신경을 안정시키는 약은 곤두선 몸을 가라앉혀 힘든 시기를 견디는 데 도움을 줍니다. 다만 그동안 삼켜 온 화가 왜 몸의 증상으로 이어졌는지까지 약이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이번에는 꼭 말하겠다고 다짐했지만
화를 참지 말고 표현하라는 조언도 자주 듣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런데 오래 참아 온 분들은 일부러 참기로 마음먹어서 참는 것이 아닙니다. 말을 하려는 순간 목이 먼저 잠기고 입이 먼저 다물립니다. 그래서 감정을 표현하는 연습만으로는 잘 바뀌지 않습니다.
그분도 여러 번 다짐했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꼭 말하겠다고 아침부터 마음먹었지만, 막상 그 사람 앞에 서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그냥 웃으며 넘겼다고요. 그러고는 집에 돌아와 하지 못한 말을 밤새 혼자 되뇌었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반응이 마음먹는 것만으로 잘 바뀌지 않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지금 화를 삼키는 반응은 어른이 되어 예의를 배우며 생긴 것이 아니라, 훨씬 오래전부터 몸에 익은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의식으로는 이번에는 말하겠다고 준비해도, 막상 그 상황이 오면 익숙한 반응이 한발 먼저 나옵니다. 그래서 최면상담에서는 지금의 답답함과 이어진 오래된 감정, 그리고 삼키는 반응이 처음 만들어진 경험을 함께 다룹니다.
최면 속에 떠오른 오래전 거실
그분도 그 과정을 거쳤습니다. 최면이 깊어지자 목에 무언가 걸린 듯한 느낌이 먼저 또렷해졌고, 그 느낌을 따라가던 중 본인도 예상하지 못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은 아주 어린 시절, 집 거실의 모습이었습니다.
동생이 먼저 밀어 아이가 넘어졌습니다. 억울해서 울음부터 터졌는데, 돌아본 어른은 네가 언니니까 그만하라고만 했습니다. 아이는 동생이 먼저 그랬다고 말하려고 입을 열었다가, 그러면 더 혼날 것 같아 그대로 다물었습니다. 하려던 말은 목까지 올라왔다가 그대로 삼켜졌습니다.
한 번의 일로 사람이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비슷한 순간이 여러 해에 걸쳐 되풀이되면 아이는 하나를 익힙니다. 억울해도 말하면 더 나빠지니 삼키는 편이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이런 배움은 생각으로만 남지 않고, 비슷한 상황에서 저절로 반복되는 반응이 됩니다. 어른이 되어 부당한 말을 들었을 때 목부터 잠기는 것도 그 반응입니다.
최면 속에서 그분은 그 거실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이번에는 아이가 하려던 말을 끝까지 했습니다. 동생이 먼저 밀었고, 나는 억울했다고요. 그리고 그 아이는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조용해진 것은 네가 참았기 때문이지, 네가 잘못해서가 아니었다는 말을요.
그 무렵의 일이 실제로 어땠는지는 지금 와서 확인할 방법이 없습니다. 본인도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어 둘 것이 있습니다. 화가 없는 사람과 화가 올라오는 것을 알아차리기도 전에 눌러 온 사람은 겉으로 잘 구분되지 않습니다. 화병 상담이 화를 가라앉히는 일부터가 아니라, 무엇을 눌러 왔는지 살펴보는 일부터 시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회사에서 일이 또 그분에게 넘어온 날
회사에서 다른 사람이 미뤄 둔 일이 또 그분에게 넘어온 날이 있었습니다. 예전 같으면 아무 말 없이 받아들고 밤늦게까지 일을 붙들고 있다가, 집에 와서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앉아 명치를 눌렀을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이건 제가 할 일이 아닌 것 같다’는 말이 바로 나왔다고 합니다. 목이 잠기지도 않았고 얼굴이 달아오르지도 않았습니다.
그분은 정시에 회사를 나와 저녁을 차려 먹었습니다. 그날 밤에는 그 일을 한 번도 다시 떠올리지 않았다고 하셨습니다.
참는 사람은 대개 착한 사람입니다. 문제는 그 착함 자체가 아니라, 삼킨 것이 사라지지 않고 몸에 남는다는 사실입니다. 목이 막히고 명치가 답답하며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은 몸이 약해서도, 마음이 모자라서도 아닙니다. 그동안 하지 못한 말이 그만큼 쌓였다는 신호에 가깝습니다.
검사에서 아무 이상이 없다는 말을 듣고 병원 문을 나서는 길이 유난히 허전하셨다면, 이제 들여다볼 것은 몸이 아닙니다. 그동안 무엇을 삼켜 왔는지, 그리고 언제부터 삼키는 반응이 몸에 익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더 잘 참는 법을 배운다고 풀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