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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원래 성격이 이런 걸까요. 그날도 큰일은 아니었어요.
직원이 그렇게 안내받으신 기록이 없다고 하는 순간 귀가 확 뜨거워졌고
목소리가 저도 모르게 커져서 매장 사람들이 다 저를 쳐다봤어요.
나와서 차에 앉았는데 손이 한참 떨렸습니다."
삼십 대 후반의 여성분이 상담을 시작하며 처음 꺼낸 말이었습니다. 휴대폰 요금제를 바꾸러 간 날이었다고 합니다. 전화로 안내받은 내용과 매장 화면에 나온 내용이 달라 이를 말했더니, 그런 기록은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분이 정말 궁금했던 것은 왜 화가 났느냐가 아니었습니다. 화가 날 만했다는 것까지는 본인도 이해했습니다. 납득되지 않는 것은 그 정도였습니다. 상대는 한마디를 했을 뿐인데, 그분의 화는 며칠이 지나도록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주변에서는 늘 성격이 급해서 그렇다, 조금만 참았으면 될 일이라고 했습니다. 본인도 오랫동안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일이 계속 반복되면서 그 설명만으로는 납득이 되지 않았고, 결국 분노조절장애 증상을 찾아보기 시작했습니다.
화를 낸 장면마다 같은 말이 있었다
성격 탓으로 넘기기 전에 한 가지를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격이 급한 사람은 줄 서는 일도 답답해하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도 힘들어하는 등 여러 상황에서 두루 조급하게 반응합니다. 그런데 다른 일은 웬만하면 잘 참으면서 유독 한 종류의 상황에서만 크게 화를 낸다면, 단순히 성격이 급해서라고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최근 크게 화가 났던 일을 서너 개 떠올려 보면 도움이 됩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보다, 화가 터지기 직전에 상대가 어떤 말을 했는지만 적어 보는 것입니다.
사건은 서로 달라도 그 직전의 말은 비슷한 뜻으로 모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분도 그랬습니다. 적어 놓고 보니 모두 “그런 적 없다”, “그런 말 한 적 없다”, “잘못 아신 것 같다”처럼 결국 자기 말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순간들이었습니다.
그 말은 왜 다르게 들렸을까
분노조절장애 증상을 이해하려면 바로 이 지점을 봐야 합니다. 사람에게는 세상과 사람을 해석하는 일정한 틀이 있고, 심리학에서는 이를 심리도식이라고 부릅니다. 그중 “사람들은 내 말을 믿지 않고 나를 부당하게 대할 것”이라고 굳어진 틀을 불신 도식이라고 합니다.
이런 틀이 작동하면 상대가 한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워집니다. 휴대폰에 스팸 차단을 걸어 두면 아무 문제가 없는 번호로 걸려 온 전화까지 자동으로 걸러지는 것과 비슷합니다. 전화를 건 사람에게 문제가 없어도 받는 쪽의 설정 때문에 걸러지는 것입니다.
상대가 단지 확인하려고 한 말도 “나를 못 믿겠다는 뜻”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면 사건의 크기에 비해 훨씬 큰 화가 납니다. 지금 들은 한 문장에, 비슷한 순간마다 참아 왔던 억울함까지 한꺼번에 따라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참는 연습이 쓸모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화가 치미는 순간을 넘기는 방법을 익혀 두면 큰 사고를 막는 데 도움이 됩니다. 다만 이런 방법은 이미 올라온 화를 가라앉히는 데 초점이 있기 때문에, 왜 유독 그 말에 그렇게 크게 반응하는지는 그대로 남습니다.
왜 그런지 머리로 이해했다고 해서 반응이 바로 달라지는 것도 아닙니다. 이유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게 된 뒤에도 다음번 같은 상황에서는 또 같은 식으로 화가 납니다. 이렇게 같은 반응이 반복되는 이유는 그 반응은 지금 생긴 것이 아니라, 기억도 나지 않는 어린 시절에 만들어져 반복되는 무의식의 자동반응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지금 느끼는 감정을 실마리로 삼아 그 감정이 처음 만들어진 경험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리고 당시 어린 나이에 혼자 내렸던 결론을 그 장면 안에서 다시 다룹니다.
최면 속에서 떠오른 놀이터 모래밭
깊은 최면에 들어가자 매장에서 귀가 뜨거워졌던 느낌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그런데 함께 떠오른 장소는 매장도 회사도 아니었습니다. 놀이터의 모래밭이었습니다.
어린이집에 다니기 전, 아직 혼자 신발도 신지 못하던 무렵이었습니다. 아이가 노란 삽으로 모래를 파고 있는데 다른 아이가 다가와 삽을 가져갔습니다. 아이가 손잡이를 붙잡자 그 아이는 엉덩방아를 찧으며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어른이 달려와 우는 아이부터 일으켜 세운 뒤, 이 아이를 내려다보며 왜 밀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먼저 쓰고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거짓말하면 못쓴다는 꾸중이었습니다.
아이는 다시 말했지만, 말을 할수록 어른의 표정은 더 굳었습니다. 결국 손목을 잡힌 채 모래밭 밖으로 끌려 나왔고, 신발 안에는 모래가 그대로 들어 있었습니다.
모래밭 밖에 서 있던 아이는 속으로 결론을 내렸습니다. 말해도 소용없다는 것, 그러니 먼저 세게 나가지 않으면 내가 뒤집어쓴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른들에게는 놀이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실랑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자신을 충분히 설명할 말이 부족했던 아이에게는 다른 것이 남았습니다. 내 말은 믿어 주지 않는다는 것, 억울한 일을 당해도 아무도 대신 확인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뒤 아이는 비슷한 기색을 남들보다 빨리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자기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는 낌새만 보이면, 설명보다 목소리가 먼저 나갔습니다. 어른이 된 뒤에도 그 순서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깊은 최면 안에서 그분은 다시 그 모래밭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아이가 혼자 내렸던 결론을 하나씩 확인했습니다. 말해도 소용없다는 결론은 그날 그 어른 앞에서 생긴 것이지,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아이 옆에 앉아 그때 네가 한 말은 사실이었고, 다만 그 어른이 보지 못했을 뿐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아이가 신발에 든 모래를 털고 다시 모래밭으로 들어가는 것까지 본 뒤에야 그 장면은 끝났습니다.
다시 비슷한 말을 들은 어느 날
요즘에도 비슷한 일은 생깁니다. 한번은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이 다른 색으로 왔습니다. 전화를 했더니 주문 내역에는 그 색으로 되어 있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분은 화면을 캡처해서 보내 드리겠다고 말했습니다. 통화를 마치고 저녁을 차리다가 걸음이 멈췄다고 합니다. 방금 전 그런 말을 듣고도 아무렇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차린 것입니다.
예전 같으면 그런 통화 뒤에는 한참 손이 떨려 아무것도 못 하고 앉아 있었을 것입니다. 남편이 “그거 당신이 안 챙긴 거 아니냐”고 물어도 이제는 목소리가 올라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어디 뒀는지 같이 찾아보자”는 말이 그냥 나온다고 합니다.
분노조절장애 증상으로 힘든 경우와 단순히 성격이 급한 경우를 가르는 것은 화의 크기만이 아닙니다. 어떤 말이나 상황에서 유독 크게 반응하는지를 봐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