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하나, 둘까지는 셉니다. 그런데 셋에서 이미 제 목소리가 나가 있어요.
세고 있었다는 것도 소리를 지르면서 알았습니다.
뒷목이 확 뜨거워지고 귀가 먹먹해지면서 앞이 좁아져요.
다 지나가면 턱이 얼얼하고 손이 떨립니다.”
아이 둘을 키우며 회사에 다니는 삼십 대 후반 여성이 첫 상담에서 꺼낸 이야기입니다.
그날은 아침부터 몸이 무거웠습니다. 오후에는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별말 없이 일을 마쳤습니다. 저녁을 차리다가 큰아이가 국그릇을 엎었고, 행주를 집으러 돌아서는 순간 남편이 지나가며 말했습니다.
“뭘 그런 걸로 그래.”
그다음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정신을 차렸을 때 아이는 굳은 얼굴로 서 있었고, 손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밤에도 늘 하던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다음에는 꼭 참아야지.’
그렇다고 참으려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닙니다. 이미 여러 가지 화 다스리는 방법을 써 보고 있었습니다.
화를 다스리는 방법은 언제 도움이 될까
그분이 해 본 방법은 여러 가지였습니다. 화가 올라오면 숫자를 세고, 길게 숨을 내쉬고,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말을 더 하기 전에 잠깐 자리를 피했습니다. 화가 난 일을 적어 보기도 했습니다.
각 방법에는 저마다의 역할이 있습니다.
숫자를 세거나 천천히 호흡하면 바로 반응하지 않고 몇 초라도 멈출 시간을 만들 수 있습니다. 물을 마시거나 잠시 자리를 벗어나면 말과 행동이 더 커지는 것을 막고, 서로 진정할 시간을 벌 수 있습니다. 지나간 일을 기록하면 어떤 상황에서 화가 자주 올라오는지 패턴을 확인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그분도 컨디션이 괜찮거나 화가 크지 않은 날에는 이런 방법으로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숫자 세기나 심호흡이 안 통했다고 해서 방법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방법을 쓸 수 있을 만큼 시간과 여유가 남아 있었느냐입니다.
화가 이미 크게 올라온 뒤라면 숫자를 세는 동안에도 목소리가 커질 수 있고, 자리를 피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는 이미 말을 쏟아낸 뒤일 수도 있습니다.
브레이크는 필요하지만, 비탈까지 없애 주지는 않습니다
숫자 세기와 심호흡을 비탈길에서 움직이는 차의 브레이크에 비유해 볼 수 있습니다.
차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할 때 브레이크를 밟으면 멈추기 쉽습니다. 비탈이 완만하다면 브레이크에 잠시 발을 올려놓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경사가 매우 가파르고 차가 이미 빠르게 굴러가기 시작했다면 같은 브레이크를 밟아도 훨씬 힘이 많이 듭니다.
화를 다스리는 방법도 비슷합니다. 그 순간의 반응을 늦추고 상황이 더 커지는 것을 막는 데는 도움이 됩니다. 그러나 왜 어떤 말에는 화가 조금 올라오고, 어떤 말에는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크게 올라오는지까지 대처법 자체가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분에게도 숫자 세기가 잘 통하는 날과 전혀 통하지 않는 날이 있었습니다. 차이는 숫자를 얼마나 성실하게 셌느냐가 아니었습니다.
남편의 “뭘 그런 걸로 그래”라는 말을 들은 날에는 그 한마디가 실제 상황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습니다. 국그릇을 엎은 일보다 ‘내가 힘든 것을 또 별것 아닌 것으로 넘긴다’는 억울함이 훨씬 오래 남았습니다.
그래서 화가 난 일이 끝난 뒤에도 감정이 오래 가라앉지 않는다면, 무엇 때문에 그런지 구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눈앞의 일 때문에 생긴 화인지, 아니면 그 일이 이전부터 남아 있던 감정까지 함께 건드린 것인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 원인을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반복해서 써도 유독 같은 종류의 상황에서 실패한다면 살펴볼 만한 단서가 됩니다.
대처법이 반복해서 실패한다면, 왜 그렇게 크게 올라오는지를 봅니다
그분에게 화를 낸 뒤마다 떠오르는 말이 있었습니다.
“내가 왜 그것까지 참아 줘야 해?”
하지만 무엇을 그렇게 오래 참아 왔는지는 바로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상담에서는 숫자를 더 오래 세는 연습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말을 다시 떠올렸을 때, 왜 그 한마디가 그렇게 크게 느껴졌는지를 살펴봤습니다.
가장 또렷하게 남은 것은 “내가 힘든 것을 또 별것 아닌 것으로 넘긴다”는 서운함과 억울함이었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그런 반응이 언제부터 반복되어 왔는지 살펴봤고, 그 과정에서 오래된 장면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최면 원인치료의 전체 과정은 별도의 「최면 원인치료」 글에서 자세히 설명하고 있으므로, 여기서는 대처법이 반복해서 실패하던 이 사례에서 확인된 연결만 살펴보겠습니다.「최면 원인치료」
“너는 괜찮잖아”라는 말이 남았던 아이
최면 상태에서 현재 느끼는 서운함을 따라가던 중, 그분에게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이가 마당에서 넘어져 무릎을 다친 채 집으로 들어왔습니다. 어른에게 보여 주려고 다리를 들어 올리는 순간 동생이 먼저 울었고, 어른은 동생을 안아 올리며 말했습니다.
“너는 괜찮잖아.”
아이는 들어 올렸던 다리를 내렸습니다. 무릎은 아팠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상담에서는 그 장면에서 드러난 ‘내가 아프거나 힘든 것은 별것 아닌 일로 여겨진다’는 감정이 남편의 말을 들었을 때 느낀 서운함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펴봤습니다.
그 장면이 실제 과거의 모든 세부와 정확히 일치한다고 단정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장면에서 드러난 감정과 반응이 현재 반복되는 반응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최면 상태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아이 앞에 앉아 아픈 무릎을 먼저 들여다봤습니다. “괜찮다”고 넘기지 않고 많이 아팠겠다고 말했습니다. 아이는 그제야 울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다룬 것은 숫자를 세는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숫자를 세어야 할 만큼 화가 커지는 데 작용하고 있던 오래된 감정과 자동반응이었습니다.
방법을 더 잘 쓰는 것과, 방법이 덜 필요해지는 것은 다릅니다
상담 이후에도 화가 날 만한 일은 생겼습니다.
작은아이가 놀이터에서 무릎을 깨고 들어온 날, 예전 같으면 “별거 아니야”라고 말하며 반창고부터 붙였을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은 아이를 먼저 앉히고 어디가 가장 아픈지 물었습니다.
주말에 가족과 차를 타고 나갔다가 길이 막혀 두 시간 넘게 차 안에 갇혀 있던 날도 있었습니다. 예전처럼 숫자를 세거나 일부러 숨을 고르려고 애쓴 기억은 없었다고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야 그날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익혀 두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 순간 말과 행동이 더 커지는 것을 막아 주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같은 방법이 정작 중요한 순간마다 반복해서 실패한다면, “나는 왜 이것도 못하지?”라고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때는 방법을 하나 더 추가하기보다, 왜 그 상황에서는 화가 그렇게 크게 올라오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숫자 세기와 심호흡은 브레이크처럼 필요합니다. 다만 계속 같은 비탈에서 힘겹게 브레이크만 밟고 있다면, 그 비탈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함께 볼 필요가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