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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르면 안 되는 줄 알아요. 아는데 손이 먼저 눌러요.
그 직전에는 가슴이 조여들고 손끝이 저릿저릿하면서 가만히 있질 못하겠어요.
그러다 결제가 끝나면 그게 확 꺼집니다.
그리고 삼 초쯤 뒤에 아, 또 했구나 싶어요."
서른을 갓 넘긴 직장인 남성의 이야기입니다. 그날도 자정이 넘은 시간, 침대에 누워 있었다고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문자가 와 있었습니다. 내역을 확인하고 나면 하루가 무겁게 시작됐습니다. 필요해서 산 것도, 사고 싶어서 산 것도 아니라는 말을 여러 번 하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물건을 살 때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회의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하지 않는 편이 나은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어느새 이미 입 밖으로 나가 있었습니다.
말을 뱉는 순간에는 속이 시원했습니다. 하지만 회의실을 나오면서 후회가 시작됐습니다. 물건을 살 때와 똑같은 순서였습니다.
충동조절장애를 찾아보는 분들이 가장 이해하기 어려워하는 지점이 바로 여기입니다. 몰라서 한 행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알았고, 심지어 하는 도중에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자제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한 번도 마감을 어긴 적이 없었고, 새벽 운동도 몇 년째 거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그 순간에만 멈추지 못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생각보다 먼저 나오는 행동
심리학에서는 이렇게 판단보다 행동이 먼저 나오는 것을 조건화라고 부릅니다. 어떤 행동이 특정한 결과와 반복해서 짝지어지면, 다음부터는 따져 보는 단계를 거치지 않고 그 행동이 곧바로 나온다는 뜻입니다.
잔디밭 한가운데 흙길이 생긴 모습을 보신 적 있을 겁니다. 처음에는 모두 포장된 길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누군가 잔디를 가로질러 더 빨리 목적지에 닿기 시작하면 다음 사람도 같은 길을 택합니다. 계속 밟힐수록 풀은 눕고 흙이 드러납니다.
길이 뚜렷해지면 더는 어느 쪽으로 갈지 고민하지 않습니다. 생각하기도 전에 발이 그 길로 향합니다. 충동도 이런 식으로 굳어집니다. 답답함이 올라올 때 무언가를 확 해 버리고 그 순간 답답함이 사라지는 경험이 반복되면, 그 시원함 때문에 같은 행동이 더 빨리 나오게 됩니다.
그분도 그제야 짐작이 갔다고 하셨습니다. 물건이 정말 사고 싶어서가 아니라, 결제 직전의 저릿한 느낌을 빨리 끄고 싶어서 버튼을 눌렀던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무엇을 샀는지는 며칠만 지나면 기억도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나를 막자 다른 행동이 늘어났다
그분도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결제 앱을 지우고, 카드는 서랍 안쪽에 넣어 두고, 밤에는 휴대폰을 거실에 두고 잤습니다.
이런 방법은 분명 도움이 됐습니다. 손이 닿기까지 시간을 벌어 주었고, 실제로 결제 횟수도 줄었습니다. 그런데 줄어든 만큼 다른 쪽이 늘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회의에서 하지 않는 편이 나은 말을 더 자주 내뱉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단서를 짚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를 막았더니 다른 행동이 늘어났다면, 문제는 막은 행동 자체에 있지 않습니다. 행동은 바뀌었는데 그 전에 올라오던 느낌이 같다면, 살펴봐야 할 것은 그 느낌입니다.
그분도 결제가 줄어든 대신 다른 행동이 늘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두 가지가 같은 문제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충동조절장애를 두고 흔히 생기는 오해가 하나 더 있습니다. 크게 후회하면 다음에는 덜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후회 역시 답답한 감정이라, 그 답답함도 빨리 없애고 싶어집니다. 그래서 후회가 클수록 그날 밤 다시 결제 버튼을 누르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그 느낌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문제는 답답함이 올라올 때 왜 하필 그 행동만 떠오르는지 본인도 설명하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그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에는 다른 방법을 떠올릴 여지조차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안방 문 앞에 서 있던 아이
이런 반응은 대개 의식이 기억을 남기기 전에 몸에 익습니다. 그래서 아무리 따져 봐도 이유가 나오지 않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이유를 계속 캐묻기보다, 지금 올라오는 감각을 붙들고 같은 감각이 처음 생겼던 무렵으로 찾아갑니다.
최면 상태가 깊어졌을 때 그분이 붙든 것은 결제 직전 손끝에 올라오던 저릿함이었습니다. 그 감각을 따라가자, 전에는 한 번도 떠오른 적 없던 장면이 나타났습니다.
말을 배우기도 전쯤으로 보이는 어느 저녁이었습니다. 집 안에서 아이는 안방 문 앞에 서 있었습니다. 문 안에서는 어른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고, 곧 무언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습니다. 이어 문이 쾅 닫혔습니다.
갑자기 집 안이 조용해졌습니다. 아이는 그 조용함 속에서 숨을 죽인 채 서 있었습니다. 잠시 뒤 문이 열리고 어른이 나왔지만, 표정은 이미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그 어른이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는 끝내 나오지 않았습니다.
아이가 반복해서 본 것은 이유가 아니라 방식이었습니다. 안에서 무언가 차오르면 한 번에 크게 터뜨리고, 그러면 곧 조용해지는 순서였습니다. 아이는 그 모습을 여러 해에 걸쳐 되풀이해서 봤습니다.
그러니 어른이 되어 가슴이 조여들 때 떠오르는 방법이 하나뿐인 것은 당연했습니다. 결제 버튼을 누르는 행동이든, 하지 말았어야 할 말을 뱉는 행동이든, 그 순간 안에 차오른 것을 즉시 없앤다는 점에서는 같은 일이었습니다.
최면 안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문 앞의 아이 옆에 앉았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함께 있었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리는 동안에도 곁에서 기다렸습니다. 아이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두근거림이 조금씩 내려가는 것을 처음 겪었습니다.
장바구니를 그대로 둔 밤
밤늦게 다시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은 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장바구니에 담아 둔 채 화면을 껐습니다. 아침에 다시 열어 보니 왜 그 물건을 담았는지 잘 모르겠어서 그냥 지웠다고 합니다.
회의에서도 달라진 점이 있었습니다. 하려던 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그대로 지나갔습니다. 이를 악물고 참은 것이 아니라, 굳이 그 말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고 하셨습니다. 회의가 끝난 뒤 옆에 앉은 동료가 요즘 무슨 좋은 일 있느냐고 물었다고 합니다.
후회하면서도 멈추지 못했다는 것은 의지가 모자란 증거가 아닙니다. 안에서 차오르는 것을 처리하는 방법을 하나밖에 배우지 못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그 한 가지 행동만 막는 것으로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막아 놓은 길 옆으로 다른 길이 나기 때문입니다. 필요한 것은 더 단단한 차단이 아니라, 차오른 것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저절로 내려가는 경험을 몸이 새로 익히는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