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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 중에 이름이 불립니다. 아직 일어서기도 전인데 귀 뒤부터 뜨거워집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바라보는 사이, 열이 목덜미를 타고 뺨까지 올라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요. 얼굴이 빨개졌다는 것만 기억나요.
손은 차가운데 얼굴만 뜨겁고, 다들 그걸 봤겠구나 싶으면 그다음부터는 말이 안 나옵니다.
회의 끝나고 화장실에 가서 거울부터 봤어요."
이 말을 하신 분은 서른아홉 살 여성이었습니다. 같은 회사의 같은 팀에서 오 년을 일했고, 아는 얼굴들 앞인데도 매번 그렇다고 하셨습니다. 안면홍조를 검색해 보고 피부과에도 한 번 다녀왔지만, 피부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더 답답했습니다. 혼자 일하거나 친한 동료 한 명과 이야기할 때는 얼굴이 빨개지는 일이 전혀 없었습니다. 사람이 세 명만 넘어가고 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이면, 얼굴은 매번 같은 순서로 달아올랐습니다.
짚고 갈 것이 하나 있습니다. 사람이 있든 없든 얼굴이 늘 붉어 있거나, 화끈거림과 함께 오돌토돌한 것이 올라온다면 피부과에서 먼저 살펴보시는 편이 좋습니다. 이 글에서 다루는 것은 피부에 별문제가 없다고 확인된 뒤에도 시선이 모일 때 나타나는 붉어짐입니다.
시선이 모이는 순간 먼저 일어나는 일
얼굴이 붉어지기 전에 먼저 일어나는 일이 있습니다. 뇌 안쪽의 편도체가 지금 상황을 위험한 상황으로 분류하는 것입니다. 편도체는 눈에 들어온 것을 아주 빠르게 훑어, 대비가 필요한 상황인지 아닌지를 정하는 부위입니다. 위험하다고 분류되면 심장이 빨리 뛰고, 피가 흐르는 양도 몸의 부위마다 달라집니다. 얼굴과 목의 피부 쪽으로 피가 몰리면 그 부분이 붉어지면서 뜨거워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순서입니다. 얼굴이 붉어진 다음에 긴장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하다는 판정이 먼저 나고 그 결과로 얼굴이 붉어집니다.
밤에 복도를 지나면 저절로 켜지는 센서등을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스위치를 누른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무엇인가 지나갔다는 것만으로 불이 켜지고, 한번 켜진 뒤에는 손을 흔든다고 바로 꺼지지 않습니다. 시선이 모일 때 얼굴이 달아오르는 반응도 이와 비슷합니다. 사람들의 눈이 자신을 향했다는 신호만으로 몸의 반응이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을 스스로 알아차리는 순간, 주의가 온통 자기 얼굴로 쏠립니다. 지금 얼마나 빨간지, 어디까지 번졌는지, 앞사람이 눈치챘는지를 확인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 얼굴을 살피는 동안 몸의 긴장 반응은 가라앉지 않고 오히려 더 오래 이어집니다.
찬물로 세수하고 나와도
그분도 나름의 방법을 다 써 보셨습니다. 회의 전에 화장실에서 찬물로 손목을 적시고, 숨을 길게 내쉬고, 머리를 한쪽으로 내려 목덜미를 가렸습니다. 붉은 기를 눌러 준다는 화장품도 바꿔 봤습니다.
이런 방법들이 소용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오른 열을 어느 정도 식히고, 그 상황을 견디는 데 도움을 줍니다. 다만 모두 반응이 시작된 뒤에 낮추는 방법이라, 시선이 모이는 순간 몸이 반응하는 것 자체는 다음번에도 남습니다.
자기 얼굴이 왜 붉어지는지 가늠해 볼 단서가 하나 있습니다. 언제부터 뜨거워지기 시작하는지를 되짚어 보시면 됩니다. 아직 아무도 자신을 보지 않았는데 이름이 불리는 순간 이미 열이 올랐다면, 실제 시선을 받은 뒤 붉어진 것이 아닙니다. 곧 시선이 자신에게 모일 것이라는 예고만으로 몸이 먼저 반응한 것입니다.
이 반응은 마음을 다잡아서 멈출 수 있는 종류가 아닙니다. “별일 아니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해 본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언제나 얼굴이 이미 뜨거워진 다음에 나옵니다. 무엇을 위험으로 볼지 정하는 판단은 그 말보다 먼저 끝나 있고, 그 판단에는 의식이 끼어들지 못합니다.
최면상담에서 다루는 것이 바로 이 판단입니다. 시선 앞에서 올라오는 느낌을 그대로 따라가면, 남의 반응을 위험 신호로 받아들이던 무렵의 경험과 그때의 감정이 함께 드러납니다. 최면상담에서는 그때의 감정과 지금까지 남아 있는 반응을 함께 다룹니다.
무엇을 하기 전에 어른의 표정부터 살피던 아이
그분에게는 얼굴이 뜨거워지기 전에 먼저 나타나는 행동이 하나 있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려고 하면 자기도 모르게 앞에 앉은 사람들의 얼굴부터 훑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나를 보고 있나?’
‘저 사람 표정이 왜 달라졌지?’
무슨 말을 할지 생각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부터 확인했습니다. 최면이 충분히 깊어진 상태에서 그때의 긴장감과 사람들의 표정을 살피는 느낌에 집중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평소에는 기억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아직 말을 능숙하게 하지 못하던 때였습니다. 아이는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 한 장을 들고 거실 벽 앞에 서 있었습니다. 자기 그림을 벽에 붙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발끝을 세우고 종이를 벽에 대려는 순간, 소파에 앉아 있던 어른의 표정이 굳었습니다. 어른은 소리를 지르지도 않았고 야단을 치지도 않았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곧바로 손을 멈췄습니다. 벽에 대고 있던 그림을 내린 뒤 어른의 얼굴을 바라봤습니다. 다시 그림을 붙이려다가 또 어른의 표정을 확인했습니다. 결국 그림은 벽에 붙이지 못했습니다.
왜 그 어른의 표정이 굳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실제 이유가 무엇이었느냐가 아니라, 그 순간 아이가 어떻게 반응했느냐였습니다.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그대로 하기보다 먼저 어른의 얼굴을 보고 '지금 해도 되는지'를 확인했습니다.
아직 어른에게 “왜요?”라고 묻거나 상황을 충분히 이해하기 어려운 나이였습니다. 그런 아이에게는 주변 어른의 표정이 지금 행동을 계속해도 되는지를 판단하는 중요한 신호가 되었을 수 있습니다.
이 장면은 성인이 된 뒤의 모습과 닮아 있었습니다. 회의에서 말을 시작하기 전에 앞사람들의 표정을 살피고, 누군가의 얼굴이 조금만 달라져도 ‘내가 뭔가 잘못했나?’ 하고 긴장했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그림을 붙여도 되는지 알기 위해 어른의 얼굴을 살폈고,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계속해도 괜찮은지 확인하듯 주변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던 것입니다.
최면 상태에서 어른이 된 그분은 그림을 들고 서 있는 어린 자신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말해 주었습니다. 어른의 표정이 조금 달라졌다고 해서 네가 잘못한 것은 아니라고, 무엇을 할 때마다 다른 사람의 얼굴부터 확인할 필요는 없다고요.
아이는 다시 그림을 들어 벽에 붙였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어른의 얼굴을 확인하지 않고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자신이 붙인 그림을 바라보았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예전처럼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상담 뒤 어느 회의에서 그분이 설명을 이어 가자 회의실에 있던 열몇 명의 시선이 한꺼번에 자신에게 모였다고 합니다. 예전 같았으면 그 순간부터 얼굴이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지고, 앞에 앉은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씩 살폈을 거라고 했습니다. 회의가 끝나면 사람들이 흩어지기 전에 화장실부터 찾아가 거울로 뺨을 확인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예전처럼 그 시선 하나하나가 신경 쓰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얼굴이 빨개졌는지 확인하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하던 설명을 마친 뒤 그대로 회의실을 나왔다고 합니다. 그분이 가장 크게 느낀 변화도 바로 이것이었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모여도 예전처럼 긴장이 먼저 올라오지 않았고, 얼굴이 달아오르는 일도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합니다.
얼굴 홍조가 사람들의 시선에 대한 오래된 긴장 반응과 연결되어 있다면, 얼굴의 열만 식히는 것으로는 같은 상황에서 반복되는 반응까지 바꾸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최면상담에서는 사람들의 시선에 몸이 왜 그렇게 빠르게 긴장하게 되었는지 그 원인과 연결된 감정을 찾아 다룹니다. 그 반응이 달라지면 여러 사람 앞에 서는 상황이 예전처럼 부담스럽지 않게 되고, 그와 함께 반복되던 얼굴 홍조도 줄어들 수 있습니다.










